서예 육조체 명색이 시인이라고 하면서 시(詩)를 써본지가 너무 오래 되었다. 칼도 너무 쓰지 않으면 녹이 슨다. 간혹 숫돌에 갈아줘야 한다. 서예 육조체 날카롭지 못하면 시작도 하지 마라 부드러운 곡선은 필요없다 칼같이 각을 잡는다 각이 잡히지 않으면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으며 존재 자체를 .. 나의 시 문장 2019.02.14
만추의 노래 만추의 노래 가을은 그림이다 다른 계절도 좋지만 가을이야말로 시어(詩語)이다 가장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고 사랑을 뿌리는 가을에 시 한편 건지지 못하면 시인도 아니다 곱게 감싼 옷을 훌훌 벗어버리는 알곡들로 가슴 찡한 가을이 되면 나비도 그림을 그리고 잠자리도 노래를 부른.. 나의 시 문장 2018.10.26
말복을 앞두고 말복을 앞두고 오늘같은 날은 사색의 비에 흠뻑 적셔도 좋으련만 약이 바짝 오른 태양으로 생각이란 것이 죄다 말라비틀어졌다 고단한 영혼이 그늘을 찾아 떠나려해도 끈적거리는 여름이 감옥을 만든다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더니 한줌의 바람도 없는 오늘 한톨의 생각도 무겁다 나의 시 문장 2018.08.15
주인이 바뀌더니 주인이 바뀌더니 꽃이 피었다쳐다보고 또 쳐다봐도 분명 꽃이 피었다하루종일 바람도 없고햇볕도 놀러오지 않아잡초도 자라지 않는 곳인데나비가 달려오고벌들이 모여든다꽃씨를 뿌린 것도 아닌데 응달에서 꽃이 피었다 주인이 바뀌었다고꽃이 피었다꽃들은 지금 할 말이 너무 많다 * 시작노트 : 주인이 바뀌니 많은 것이 변한다. 음지에 강하다는 꽃을 아무리 심어도 얼마가지 못해 죽기만 했었는데, 식물도 국가를 비롯한 조직의 분위기를 아는가 보다. 권위가 겸손으로 바뀌니 땅이 웃는다. 나의 시 문장 2018.07.24
골프장 바위 골프장 바위 제발 때리지 좀 마라 이런 모습으로 태어났기에 맞는 것은 참을 수 있다지만 때려놓고 해대는 욕이 너무 아프다 왜 하필 여기 있냐고 말하지 마라 이곳에 자리잡은 것은 내탓이 아니다 기분나쁘다고 침뱉지도 마라 이렇게 태어난 것을 죄라고 한다면 원죄에서 자유로운 자 어디 있으랴 제발 때리지 좀 마라 푸른 잔디위로 보내지 못해 놓고 투덜대는 소리가 너무 지겹다 나도 맞으려고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맘대로 살 수없는 세상 그것이 세상인 걸 어쩌란 말인가 그래도 간혹 어떤 공은 나 때문에 더 좋은 곳으로 가지도 않는가 지금까지 나 싫다고 하는 바람을 본 적이 없다 잔디들도 내 주위로 모여 춤을 춘다 지금은 비록 여기에 있지만 언제 또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 사람도 꼭 이런 사람이 있다. .. 나의 시 문장 2018.07.11
봄이 왔다 봄이 왔다 봄이 겨울을 만나 져 본 적이 없다 무슨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고 따뜻한 마음 하나로 당당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감싸고 내주면서 살다보면 어떤 세상을 만나도 질 수가 없다 겨우내 무디어진 속살 언저리를 꽃향기가 훑고 지나간다 사랑의 깃발을 펄럭이며 승리의.. 나의 시 문장 2018.04.02
아버지 눈물 아버지 눈물 겨울 산은 아버지를 닮았다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하다 겨울이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산이 울고 있다 아버지가 울고 있다 평생을 서리같기만 하던 아버지 병원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던 날 지난 삶에 대한 만감으로 아쉬움이 넘실거렸을 텐데도 알맞게 살았다 알맞게 살았.. 나의 시 문장 2018.03.21
그리운 녹음 그리운 녹음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젊다는 것은 이런 것이라며 온 산이 초록으로 물컹거린다 아주 잘 익은 여름이다 그런데 왜 낯설은 것일까 나도 분명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그땐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고민을 짊어지고 아픈 척이나 하며 보낸 것은 아닌지 커다란 나뭇잎 사이.. 나의 시 문장 2017.08.08
공중전화 공중전화 오래전 오랜 세월 좁은 공간 안에서 세상 어느 곳보다 북적거리며 불이 타오르곤 했는데 이젠 하루종일 심심하다 몸을 깨끗이 하고 유혹해봐도 거들떠 보는 이 하나 없어 부끄럼과 창피함으로 얼굴은 화끈 달아오르고 지금 여기서 이렇게 자리를 차지해도 되는 것인지 서 있는 .. 나의 시 문장 2017.07.12
종들의 반란 종들의 반란 그럴 줄 알았다어제와 오늘의 말이 다르고말과 행동이 따로 놀던 오너가겸손을 멀리하면서거만하고만 가깝게 지내더니결국은 그럴 줄 알았다 왜 몰랐을까정말 몰랐을까어른도 사람이고 아이도 사람이듯이직원도 사람이라는 것을 종놈들은 밟을수록 꼬리를 흔든다면서노예처럼 부려먹기만 하였으니태풍으로 변한 종들의 분노로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그럴 줄 알았다충언은 내치고감언하고만 친하게 지내던 오너가대가를 지불하는 것에는 아까워하며직원들을 편가르기 하고험담으로 꽉꽉 누르면서사람취급을 하지 않더니결국은 그럴 줄 알았다 * 대개 사람이 쓰러지기전에 어떤 전조 증상이 있듯이 기업도 어느날 갑자기 쓰러지는 경우는 드물다. 여러가지가 쌓이고 쌓여서 넘어진다. 지나온 역사를 볼 때 멸망한 나라도 그런 경우가 많다. 국가.. 나의 시 문장 2017.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