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지마 너무 늦지마 게으른 나비 한 마리가 꽃이 필 때는 눈길도 주지 않더니 밤새도록 비가 내려 꽃이 다 떨어진 후에야 꽃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 밑에서는 꽃에 취했는지 뒤로 넘어진 개구리가 저만치 가고 있는 봄을 이제서야 찾겠다고 큰 눈을 껌벅거린다 사랑도 때가 있고 농사도 때가 있.. 나의 시 문장 2016.04.17
삼월의 가막골 삼월의 가막골 햇볕도 다른 곳을 들렸다 오고 새도 오기 힘들어 하는 골짜기 늙은 집 몇 채가 아무렇게나 널려 있고 밥때를 놓친 연기가 불륜을 들킨 것처럼 금방 자취를 감추는 이곳 구름이 세상 눈치를 보다가 바람을 몰아서 데리고 온 날 겨우내 꽁꽁 얼었던 골짜기가 벗기 힘들었던 .. 나의 시 문장 2016.04.03
입춘을 보내며 (동림 진종한 님의 작품) 입춘을 보내며 입춘이라고 시서화에 능한 친구가 "立春大吉"이라고 써서 보냈기에 큰 吉을 담을 만한 그릇이 못돼 吉을 조그맣게 나눠서 줄 수 없겠느냐고 물으니 겨울을 덜어내고 받으란다 여기저기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고 아우성이다 계절 저쪽에 있는 소리를 듣다니 참말로 귀도 밝다 나는 귀를 세워도 들리지 않아 어디서 오고 있는지 하루종일 까치발로 서성거렸더니 봄 냄새는 나지 않고 저만치서 겨울이 훌쩍거리며 짐을 쌌다 풀었다 하고 있다 (말러 임성환님의 작품) 나의 시 문장 2016.02.04
스크래치 스크래치 누구나 살다 보면 삶의 살갗에 몇 개는 생길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한창때 당한 깊은 것들은 가끔씩 생각의 고개를 찾아와 혼잣말을 내뱉게 하거나 주먹을 불끈 쥐게 한다 지나온 길의 이곳저곳에 달라붙은 얼룩이나 녹들은 강풍에 날라가기도 하고 폭우에 씻겨 내려가기도 하.. 나의 시 문장 2016.01.19
좀 괜찮은 인간 좀 괜찮은 인간 좀 괜찮게 산다는 것은 건강을 사랑하듯이 아픔도 사랑하면서 슬픔도 즐길 줄 알고 때로는 돈이 날라와도 쓱 피하면서 웃을 줄 아는 것 간혹 손가락질이 쌓여서 먹구름이 드리워도 기어코 한줌의 햇빛을 찾아내어 떳떳하게 길을 열어 가며 흰 머리와 주름살이 늘어도 하.. 나의 시 문장 2016.01.04
지하철 시 지하철 시 지하철 스크린 도어엔 하늘도 있고 바람도 있고 고향도 있다 이러저러한 삶들을 뿜어내면서 어디선가 맞닥뜨렸을지도 모를 기쁨과 행복들이 콕콕 박혀 있다 어색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열차가 들어 오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도 있지만 처음부터 마치 그곳이 자기.. 나의 시 문장 2015.10.28
장년실업(長年失業) 장년실업(長年失業) 햇빛이 방안을 휘젓고 다니거나 참새들이 흔들어 대지만 않는다면 그림자가 더 짧아지지 않을 때까지 몸을 일으키지 않아도 된다 낮과 밤을 구분할 필요도 없고 밥 세끼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비가 내리면 당연히 공치는 날이고 날씨가 좋으면 좋은대로 뒹굴면서 어.. 나의 시 문장 2015.10.17
목숨값 목 숨 값 국가 유공자는 얼마이고 사고 사망자는 얼마이던가 군인 자식은 얼마이고 세월호 자식은 얼마이던가 어디에서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착한 금액이 될 수도 있고 개(犬)죽음이 될 수도 있다 매스컴의 조명 크기에 따라 롤러코스트가 되기도 하고 얼만큼 떼를 쓰느냐에 따라 변하.. 나의 시 문장 2015.09.17
베풀지 못한 아픔 베풀지 못한 아픔 초등학교 3학년 가을 소풍가는 날 짝꿍이었던 그 애는 왜 비오는 날 번개가 치면 가슴을 한번씩 후비고 가는지 모르겠다 소풍만 가면 비가 왔던 그 옛날 땟국이 흐르는 손을 내밀며 먹을 것 하나 달라고 보채던 그 애를 왜 그렇게 매몰차게 뿌리쳤을까 사탕 하나 주었다.. 나의 시 문장 2015.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