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문장 141

悲景殘像(비경잔상)

내 나이 이십 중반, 군대 제대하고 복학한 후 남은 학창 시절을 보낼 때였다. 당시 사랑하는 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듬성듬성 가깝게 지냈던 또래의 여자가 있었다. 이름은 나의 소설 "구멍난 행로"에 등장하는 "선자"~ 육군본부가 신도안으로 이전하면서 지금은 사라진 절, "龍華寺(용화사)"라는 절이 있었다. 용화사 산책길을 늦가을에 함께 걸었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을 밟기도 하고,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에 뺨을 맞기도 하면서 걸었다. 지금 당시 풍경이 아른거리며 젊은 날 기억의 고샅길 향기가 쓸쓸함으로 다가온다. 절도 가고 젊음도 가고 사람도 갔다. 이제 40년 이상이 흘렀고, 그 뒤 "선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11월만큼 그 시절은 너무 짧게 지나갔다. 풋풋하던 시절의 가을날이 지금 왜 이렇게 ..

나의 시 문장 2022.11.28 (27)

竹中顧品(죽중고품)

漢詩(한시) 한수를 읊어 보았습니다. 竹中顧品(죽중고품) 竹林挑明笑(죽림도명소) 淸香停行步(청향정행보) 高節募瑞氣(고절모서기) 惟朋效直道(유붕효직도) 대나무 속에서 돌이켜보는 품성 밝은 웃음을 끌어낸 대나무 숲의 맑은 향기가 가는 길을 멈추게 한다 높은 절개가 상서로운 기운을 모으니 친구를 생각하며 올바른 도리를 본받는다 직역을 하면 위와 같이 풀이가 되겠습니다. 나름 운을 맞추려고 위와같이 썼습니다만, 나의 의도대로 의역을 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대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밝은 웃음소리에 걸음을 멈추니 맑은 향기가 가득하구나 그 향기에서 상서로운 기운을 가진 높은 성품의 벗이 생각나 그를 본받아 곧은 길을 가겠노라 죽림, 청향, 고절이라는 단어도 그렇지만, 5언절구에서 가장 중요한 기, 승, 결의 글자를 ..

나의 시 문장 2022.06.22

나의 詩書畵(시서화)

壬寅年(임인년) 3월도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간혹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감에 깜짝 놀라곤 한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마음에 쏙 드는 글이나 글씨, 그림 등 내세울만한 작품 한점 없는데, 어느덧 적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그냥 슬프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낸 것은 아니다. 임인년 3월도 글씨와 그림에 매달리며 그렇게 보냈다. 詩人(시인)의 본분은 무엇일까? 당연히 시를 짓는 일일 것이다. 시인이 시 쓰기를 게을리 한다면 본분을 망각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봄을 맞이하여 漢詩(한시) 한수 읊어 보았다. 제목은 迎春自覺(영춘자각)으로 "봄을 맞이하여 본분을 깨닫는다"는 글이다. 迎春自覺 梅鵲傳春信(매작전춘신) 微風促作詩(미풍촉작시) 萬物見美觀(만물견미관) 受任歌眞氣(수임가진기) ..

나의 시 문장 2022.03.30

동이 튼다

동이 튼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성큼성큼 무대가 등장하며 삼바의 휘스크처럼 붉은빛들이 휘젓고 있지만 왜 이렇게 고요한 것일까 구름도 길을 멈추고 새들도 조용하고 향기도 숨을 죽인다 예술과는 거리가 멀지만 예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 사자관체의 글씨처럼 강직을 넘어 자연스럽건만 왜 이렇게 소름이 돋는 것일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바꾸려 해도 바꿔질 수 없는 새로운 시작이다

나의 시 문장 2022.03.04

낙엽을 밟으며

낙엽을 밟으며 서러워마라 서러워마라 밟히는 것이 어디 너뿐이더냐 밟힌다고 서러워마라 밟히면서 모두들 그렇게 살고 죽는다 나라를 세워도 밟히고 배불리 먹게 해 줘도 밟히고 국민을 주인으로 해줘도 밟히고 부자한테 돈 거둬도 밟히고 가난한 사람에게 돈줘도 밟히고 죽으면 왜 빨리 죽었냐고 밟히고 살아 있으면 왜 빨리 안 죽냐고 밟힌다 이렇게 저렇게 밟히고 밟히고 밟히고 또 밟히는 것이 자연이로다 그러니 서러워마라 결국엔 밟는 사람도 낙엽이 될테니

나의 시 문장 2021.11.09

小紅花(작고 빨간 꽃)

작고 빨간 꽃 조용한 숲 속 잡초들의 자리다툼이 심한 곳에서 작은 꽃 하나가 고개를 간신히 내밀더니 바람 소리에 놀라 모습을 감춘다 억센 숨 고르는 산 중턱 더 이상 자라지 않는 키를 원망하며 파란 풀 속에서 빨갛게 숨을 죽여 구름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낙화를 독촉함에 서러움이 크지만 누구를 원망하랴 이렇게라도 피었음에 고개 숙이며 다가올 이별에 눈이 시리지만 좀 더 버티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계절 지나가는 슬픔이 묻어난다 七言節句 漢詩(한시)로도 써 보았습니다. 小 紅 花 紅花小笑中雜草(홍화소소중잡초) 苦育險生着山腰(고육험생착산요) 驚風姿隱待雲通(경풍자은대운통) 季去哀感非落表(계거애감비락표) 빨간 꽃이 잡초들 사이에서 조그맣게 핀 것을 보니 힘들게 자라 온 험난한 삶이 산 허리에 붙어 있구나 비람에 놀라 ..

나의 시 문장 2021.09.17

냉담을 풀면서

냉담을 풀면서 고통없이 하느님을 볼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느님 보기 힘들다고 우기며 발길을 뚝 끊고 지냈더니 성당 가는 길이 잡초로 우거져 보여도 보이지 않았다 수없이 바뀌는 계절 속에서 십자고상을 보고도 못 본 척 기도서와 묵주를 서랍 속에 가둬두고 세심의 시간을 묻어둔 지 몇 해던가 하얗게 보이는 머릿속을 피 흘리며 문신으로 채우던 날 젊어졌다고 다시 보고 또 보며 고통없이 젊어질 수 없음을 안 그날 영세받을 때의 마음가짐으로 십자가 앞에 무릎 꿇었다 고통없이 하느님을 볼 수는 없겠지만 그 이상으로 기쁨과 영광 있기에 사랑의 모습으로 살지 못하는 바보보다 더 큰 바보는 없기에 굳게 닫아놓았던 빗장을 열고 당신의 모습으로 살리라고 다짐하며 두손을 가지런하게 모은다

나의 시 문장 2021.06.18

시멘트 바닥의 민들레

시멘트 바닥의 민들레 제남 박 형 순 왜 이런 곳에 뿌리를 내렸냐고 묻지 마라 왜 이렇게 사냐고 탓하지 마라 소쩍새 우는 사연 어찌 다 말하랴 멀리서는 볼 수 없고 가까이 다가서도 보기 힘들며 자세를 낮추어야 겨우 볼 수 있는 구석진 곳에 웅크려 자리 잡았으니 그냥 지나쳐도 상관없다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다고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쳐다보지 마라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비를 맞다가 언제 뽑혀 나갈지라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다 누구나 꽃은 한순간이다

나의 시 문장 2021.04.12

기울어진 나무

모던포엠사와 영상시를 6편 제작하기로 합의하였고, 이번이 그 2번째입니다. 이 시도 오래전 발표된 시로 제가 등단의 문턱을 넘게 해 준 시입니다. 수년 전 태안에 갔을 때 발코니에서 기울어진 나무들을 보았습니다. 바닷바람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나무들이 심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한참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사실 영상에 기울어진 나무들이 자주 보였으면 하는데, 역시 이런 것도 내 마음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적은 비용으로 더 잘 만들 수도 있지만, 열악한 잡지사의 운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조금 넓혀봅니다. youtu.be/PasyGmVCxgg

나의 시 문장 2020.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