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문장 153

세반성회(歲半省懷)

6년 전(2019년)에 지은 "칠월 욕망"이라는 시를 읽어보았다. 내가 쓴 시이지만, 나 스스로 감동한다.먼저 그 시를 옮겨본다. 칠월 욕망 절반이 훅 가버렸다 눈이 부시게 맑은 하늘초록빛 물이 줄줄 흘러무슨 짓을 해도 아무 죄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칠월 절반을 또 훅 보낼 수는 없다 나뭇잎에 누운여름 햇살 길게 뽑아가슴을 뚫는 한줄기 바람처럼짜릿한 무언가를 하나쯤은이 칠월에 남기고 싶다 위 시를 바탕으로 을사년 일 년의 절반을 돌아보며 漢詩(한시) 한수를 읊어 보았다. 세반성회(歲半省懷) 光陰如箭不容遲(광음여전불용지)半載浮生夢似馳(반재부생몽사치)欲效炎暉勤不息(욕효염휘근불식)留痕心處動天知(유흔심처동천지) 절반을 보내며 품는 생각 세월은 화살과 같아서 지체를 허용하지 않으니반년의 뜬 삶이 ..

나의 시 문장 2025.07.01

모란을 그리며

나는 요즘 모란을 그리고 있다. 붓을 잡고 서예를 하다가 지루해지면 그림을 그리곤 한다. 당초 모란이란 이름은 중국의 모단(牡丹)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우리말의 활음조 현상으로 단이 란이 되어 모란이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牧丹(목단)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 스님이 모단(牡丹)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 비슷한 모양의 한자인 목(牧)으로 잘못 적어서 발생한 오류라고 한다. 그러므로 목단이란 말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쓰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와전된 용어이다. 목단은 많은 사람들이 널리 사용해 왔기 때문에 지금은 둘 다 표준어로 인정받고 있지만,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는 모란만 정명으로 인정하고 있다. 모란을 화투에서는 六月(6월)로 하지만, 5월초에서 중순까지 피는 꽃(참고로 나의 고..

나의 시 문장 2025.06.08

팰리스에서의 아침

지난주 (4. 15 ~ 4. 19) IBK 퇴직동기들 5쌍 부부가 베트남에 다녀왔다.나트랑과 달랏에 3박 5일로 갔다 왔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이틀 밤을 보낸 달랏 팰리스 호텔이다.그곳에서 아침을 맞으며 詩(시) 한수 읊어 보았다. 팰리스에서의 아침 베트남 달랏 팰리스은빛 베일을 드리운 안개속에소나무가 귀족처럼 서 있으니달랏의 언덕 위 시간들이 조용히 걷는다샹들리에의 숨결은백 년 전 정원의 숨소리를 닮았고벽난로 옆 오래된 의자는고요 속에서 귀족의 목소리를 품고 있다고풍한 벨벳 커튼을 젖히고창문 너머 피안 같은 정원을 바라보며마시는 차 한 잔 속엔 베르사유의 그림자와인도차이나의 햇살이 녹는다세월에 묻혀도 잊히지 않는 호텔의 향기,금빛 벽지 위를 흐르는역사와 낭만, 그리고 정적달랏 팰리스는 ..

나의 시 문장 2025.04.27

도로에 핀 민들레

도로에 핀 민들레  어쩌다 이런 곳에 뿌리를 내렸지만기어코 꽃을 피웠다노랗게노랗게소음과 먼지가 떠나지 않고 있지만누구나 짧게 왔다가는 나들이이기에미움도 없고 원망도 없다 운이 좋아 햇살의 도움으로하얀 머리가 될 때까지 삶이 이어지고더 운이 좋아바람을 충분히 먹게 된다면다음엔다음엔더 좋은 곳에서멋있게더 멋있게 꽃 피우리라

나의 시 문장 2024.06.15

우이천 벚꽃을 보며

우이천 벚꽃을 보며  봄바람을 타고 난리가 났다 백옥처럼 하얗고새색시 볼 같은 연분홍의 웃음이촘촘하게 하늘을 가리니 파랗게 질린 구름이 가던 길을 잃었다 시냇물도 가기 싫어 뒤틀고 뒤돌아보며뒷물결에 밀려 마지못해 지나가고새들도 재잘거림을 멈추고 숨바꼭질하기 바쁘다 만개가 가져간 눈을 돌려주지 않아한참을 서 있노라니 그 속에내가 있고 네가 있고 우리가 있더구나 그래그래푸른 잎 돋아나서청춘들이 자리 잡을 때까지매혹적인 이 모습 이대로 가보는 거다

나의 시 문장 2024.04.08

가을을 보내며

가을을 보내며 지난날을 나무 끝에 매달고 바람이 슬프게 울어대니 고운 단풍잎 하나 삶을 내려놓고 멀어져 간다 정이란 무엇이고 인연의 끝에는 무엇이 남는 걸까 나무에 어린잎으로 매달려 초록으로 살다가 고운 빛깔로 사라지는 잎새 고우면 고울수록 쓸쓸함은 더 깊어진다 높은 하늘의 가을을 걷다가 걷다가 주저앉으니 조그만 꽃 하나가 웃고 있다 단풍에 묻힌 초라한 꽃 그래도 기어이 피고 마는 꽃 정말 그렇게라도 피고 싶다 크지 않아도 상관없고 화려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하늘이 나의 이름을 부르는 날 세상 참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도록 그렇게라도 한번 폼나게 폼나게 피운 흔적을 남기고 싶다

나의 시 문장 2023.11.16

白雲路(백운로)

나는 주로 북한산 흰구름길 구간을 산책한다. 빨래골까지는 집에서 약 1Km이고, 華溪寺(화계사)까지는 약 2Km이다. 따라서 왕복으로 계산하면 짧게는 2Km, 길게는 4Km가 된다. 산책길 코스로 난이도는 경사가 심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서 中(중) 정도이다. 흰구름길을 여기서는 한자로 白雲路(백운로)라고 부르고자 한다. 白雲路(백운로)는 집 뒤로 이어진 길이기에 자주 걷는 북한산 둘레길의 하나이지만, 계절 따라 변하는 탓인지 매일매일 다르게 느껴진다. 오늘은 집 뒤로 오르는 계단 옆에 하얀 꽃들이 피어있다. 꽃 모양으로 봐서는 들국화 종류이다. 찬 바람이 불어도 꽃 한번 피워보고 가겠다는 그 일념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국화는 아버지가 좋아한 꽃이다. 나도 겨울이 오기 전에 여기에 핀 꽃처럼 작게라..

나의 시 문장 2023.10.15

待心(대심)

기다리는 마음 가을산에 올라 지나온 길 돌아보니우거졌던 신록이 마른 잎으로 덮여있네바위에 걸터앉아 푸른 하늘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구름이 편안히 쉬길 기다린다  待心(대심) 汗登秋山去道解(한등추산거도해)茂綠變色乾葉蓋(무록변색낙엽개)石上背坐視靑天(석상배좌시청천)流雲描畵安息待(류운묘화안식대) 한시를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땀흘리며 가을산에 올라 지난 길 돌아보니우거졌던 신록의 색깔이 변하여 마른 잎으로 덮여있네바위위에 등대고 앉아 푸른 하늘 바라보며그림을 그리고 있는 구름이 편안히 쉬길 기다리노라     지나온 길 돌아본다고개 한번 숙이고 허리 한번 굽혔다면좀 더 위치도 높아질 수 있었던 시절이자꾸만 눈에 밟힌다한 발만 더 다가섰더라면 손에 닿을 수도 있었지만나의 심성이 어려서부터 배운 세상과 어긋날 ..

나의 시 문장 2023.09.10

書體斷想(서체단상)

書體斷想(서체단상) 墨香起靑心(묵향기청심) 舊體潤懷深(구체윤회심) 難知書藝內(난지서예내) 得道何處尋(득도하처심) 먹의 향기가 푸른 마음을 일으켜 세우니 오래된 법칙이 깊은 그리움으로 젖누나 서예의 속은 정녕 알기 어려워라 이치를 깨닫는 것은 어디가서 찾으리오 侵운으로 심이란 글자인 "心, 深, 尋"을 韻目(운목)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墨香과 舊體, 難知와 得道를 對句로 했습니다. 당초 이 詩를 짓기 전에 머리속 그렸던 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먹의 향기가 초심자를 서예의 길로 인도하니 書家들이 피땀흘려 세운 법칙에 젖어보고 또 젖어본다 그렇지만 서예의 오묘한 이치를 깨닫는 것이 이리 어렵단 말인가 경지에 다다르고 싶은 갈증을 어디에 가서 해소할 수 있으려나 위의 자작시를 行書體(행서체)로 써 보았습니다.

나의 시 문장 2023.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