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문장

白雲路(백운로)

헤스톤 2023. 10. 15. 09:29

(여기서부터 북한산 둘레길 4구간을 지나 3구간인 흰구름길로 들어서는 구간이다.)

 

나는 주로 북한산 흰구름길 구간을 산책한다. 빨래골까지는 집에서 약 1Km이고, 華溪寺(화계사)까지는 약 2Km이다. 따라서 왕복으로 계산하면 짧게는 2Km, 길게는 4Km가 된다. 산책길 코스로 난이도는 경사가 심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서 中(중) 정도이다. 

 

흰구름길을 여기서는 한자로 白雲路(백운로)라고 부르고자 한다.  

 

 

白雲路(백운로)는 집 뒤로 이어진 길이기에 자주 걷는 북한산 둘레길의 하나이지만, 계절 따라 변하는 탓인지 매일매일 다르게 느껴진다. 오늘은 집 뒤로 오르는 계단 옆에 하얀 꽃들이 피어있다. 꽃 모양으로 봐서는 들국화 종류이다. 찬 바람이 불어도 꽃 한번 피워보고 가겠다는 그 일념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국화는 아버지가 좋아한 꽃이다. 나도 겨울이 오기 전에 여기에 핀 꽃처럼 작게라도 한번 피워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글을 끄적거려 보기도 하고, 서예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최근엔 나무들이 곱게 단장하였던 옷을 벗고 있다. 떨어진 나뭇잎들이 길에 많이 쌓여있다. 매달려 있는 나뭇잎들도 대부분 떨어지기 직전이다. 시간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권력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사람의 생명도 마찬가지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등으로 둘러쌓인 강북지역의 모습에서 옛 모습을 읽는다. 그러다가 빨래골에 이르면 끊임없이 흐르는 물소리가 옛날을 떠올리게 한다. 북한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의 양이 많아 '무너미'라고 하며, 궁궐의 무수리들이 빨래를 하러 오던 곳이라는 설명이 있다. 사실 빨래가 목적이라면 이곳은 궁에서 제법 먼 거리이다. 인터넷으로 거리를 조회해 보니 9Km가 넘는다. 당시 좋은 길도 아니었음을 감안할 때 최소 2시간 반 이상은 걸렸을 것이고, 왕복으론 거의 한나절이 걸렸을 것이다. 빨래하고 노닥거리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아침 먹고 궁을 나서서 점심은 빨래골에서 해결하고, 늦은 저녁 혹은 어둑해질 무렵에야 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거리로 볼 때 고등학교 시절의 소풍 수준 정도가 된다.

무엇보다 궁에서 가까운 청계천도 있는데, 무수리들은 왜 이곳까지 왔을까? 궁에서 나오는 수많은 빨래 중 자신의 속곳같은 경우 다른 이들의 옷들과 함께 빨기가 좀 꺼렸기 때문이라는 기록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왕복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할 때 마치 병사가 외출허가라도 받는 것처럼 그렇게 허락을 받아 답답한 궁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물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왠지 웃음소리같기도 하고, 울음소리 같기도 하다. 조선시대 궁녀들은 빨래를 하면서 울음이 더 많았을까? 웃음이 더 많았을까? 선임 언니 무수리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와 노동 강도만 더 늘었다고 생각하는 궁녀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이곳에 나오는 것을 소풍삼아 일하러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탓인지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는 깔깔거리는 소리로 들린다. 분명한 것은 이곳에 오면 햇빛도 부드러워 새들의 노래가 장조로 들린다. 우울할 땐 역시 장조가 제격이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잠시 몸을 맡긴다. 

 

 

 

빨래골

 

흰 구름이 느릿느릿 다니는 숲 속

쉼 없이 흐르는 물 속으로 

빨래 짐을 이고 온 궁녀들이 보인다

 

저 멀리 화계사의 종소리가

장조의 새 울음을 섞으면 

속곳 두드리는 방망이질이 들린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춘 바람 한 줌이

바위 사이의 개울로

곱게 물든 잎 하나를 내려 놓는다

 

또 하나의 인생이 스름스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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