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21

悲慾(비욕) - 21

21. 서러운 날 오 이사가 입사한 지 3년이 지나면서부터는 회사의 지금 사정이 더 악화되었다. 납품대금을 3개월 이상 받지 못하고 있는 업체는 커넥트를 납품하는 P사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 2~3 개월의 대금을 연체하게 되었다. 주요 원자재 업체로 도체를 공급하고 있는 (주)보우도의 경우는 더 심각했다. 거의 5개월 이상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다 보니 (주)보우도의 김경문 회장은 대금결제를 독촉하려고 하나케이시(주)로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구매부문 직원들은 대부분의 협력업체들의 아우성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상황이 되었다. 일부 부재재 공급업체와 판지 등 소모품을 납품하는 영세업체 몇 곳은 거의 부도 상태였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매일 찾아와 결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구매부문의 업무가 제..

장편소설 2024.03.11

悲慾(비욕) - 20

20. 헝클어진 머리 오 이사는 회사의 앞날을 그려보며 착잡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회의 때마다 주장하는 것 중의 하나는 "get back to the basics"이었다. 현재의 상태로 가면 회사가 얼마 못 가 망하는 것은 뻔하기 때문에 기본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하였다. 그렇지 못하면 남아있는 자들도 결국 모두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자고 임원 회의 때마다 말하곤 하였다. 우선 오 이사는 자신이 맡고 있는 구매부문부터 자세를 바르게 하도록 하였다. 약 80여 개에 이르는 자재공급 업체들에 대하여 오 이사는 원가분석을 하였다. 그러한 원가절감 노력과 부하 직원들의 헌신으로 구매부문은 그해 약 120억원의 원가절감을 할 수 있었다. 이에 따..

장편소설 2024.02.24

悲慾(비욕) - 19

19. 골프장 바위 오제원 이사는 거의 주말마다 이들과 골프를 치러 다녔다. 휴일마다 골프를 치게 된 이유는 허 회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허 회장의 제일 큰 취미가 골프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잘하는 것을 자신의 취미로 삼는다. 허 회장의 골프 실력은 싱글 수준이었기 때문에 일반 주말 골퍼 수준이 아니었다. 직장인 기준으로 보면 상위 중에서도 상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탓으로 그와 담화를 나누다 보면 골프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평일에는 회사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골프 치러 가지 않지만, 휴일엔 어김없이 함께 어울려 골프를 치러 다녔다. 당연히 허 회장의 비서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골프 예약이었다. 거의 매주 주말은 물론이고, 연휴시에는 제주도나 강원도 등으로 ..

장편소설 2024.01.26

悲慾(비욕) - 18

18. 계속 부는 바람 박호진 상무는 천태운의 전무 승진 소식을 접하고 허방진 회장실로 갔다. 박 상무는 그동안 허 회장과의 관계를 그려보며, 자신이 실질적으로 이 회사의 2인자라고 여겨왔던 것을 확인해보고자 하였다. 우울해진 기분을 최대한 숨기고, 얼굴에 특유의 미소를 띠며 말했다. "회장님! 천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키셨더군요. 잘하셨습니다. 공석인 자리를 빨리 채운 것은 매우 잘하신 일이라고 봅니다. 저도 천 전무와 더불어 좀 더 큰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저의 친정 업체인 S전자가 저를 바라보는 눈도 있고 하니 저에게도 적절한 명함이 있었으면 합니다." 한마디로 자신도 승진을 시켜달라는 말로 천태운을 전무로 승진시켰으니 자신도 최소 전무는 시켜달라는 말이었다. 더 나아가 비어있는 사장 자리에 탐을 ..

장편소설 2024.01.04

悲慾(비욕) - 17

17. 해고의 바람 2 어느 조직이나 1등과 2등의 차이는 크다. 서열상으로만 본다면 허 회장과 신 사장은 회사 내에서 1위와 2위이지만, 가지고 있는 권력의 차이는 엄청나다. 크기의 차이가 된장 항아리와 간장종지 정도는 될 것이다. 의사결정시 사장을 포함한 임원 전체의 의견보다 회장 1인의 말에 더 무게가 있다. 더구나 하나케이시(주) 같은 경우 신 사장의 힘은 천 상무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허 회장과 보내는 시간이 신 사장은 천 상무의 1/5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 중 허 회장과 보내는 시간만 놓고 볼 때 신 사장은 오 이사보다도 적다. 조직에서 갖고 있는 힘이란 누가 최고 권력자와 지내는 시간이 많은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신 사장은 회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오 이사 방..

장편소설 2023.12.18

悲慾(비욕) - 16

오래간만에 15장에 이어 16장의 장편소설을 써봅니다. 지난 9월 중순에 15장까지 올리고 상당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앞에 무엇을 썼는지도 가물거립니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을 겪으며 소설을 쓰지 못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도 이 장편과 오래전에 준비하였던 "선민화옥"이라는 단편소설을 향후 3년 이내에 완성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앞으로는 더 이상 저의 몸이 고장 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16. 해고의 바람 1 직원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다음에는 임원들에 대한 구조조정도 시작되었다. 임원 중에서도 CEO인 신대홍 사장을 내보내는 작업이 먼저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회사의 대주주인 허방진 회장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영입한 사장이기에 경영을 좀 더 잘해주길 ..

장편소설 2023.12.10

悲慾(비욕) - 15

15. 찬바람을 전하며 그 해 11월이 되면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벌어놓은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계속되는 적자에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직원은 없었다. 세계적인 경제불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상해 법인의 큰 불량까지 겹쳐 경영상황이 크게 악화되면서 무너지기 시작한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손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없이 생산하는 품목수도 자꾸만 늘어났다. 대부분의 회사가 그렇듯이 이럴 경우 비용을 줄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인원을 줄이는 것이다. 하나케이시(주)도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갔다. 차가운 바람이 자꾸만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날씨마저 전형적인 11월의 을씨년스러운 날들이다. 차가운 늦가을 비가 내린 뒤 맑고 파란 가을하늘이지만 따뜻한..

장편소설 2023.09.16

悲慾(비욕) - 14

14. 더미필름 오제원 이사는 입사 첫날의 실망을 접어두고 나름 자기 몫을 하려고 애썼다. 협력업체들에게 각종 분석자료를 내놓으며 자재 가격을 내려서 회사 이익의 극대화를 위래 작전을 짜고 실행에 옮겼다. 그렇지만 회사 전체의 결과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불량으로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해 법인은 다른 법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회사의 수익구조는 시간과 비례하여 악화되고 있었다. 오제원 이사가 담당한 구매에서 열심히 원가 절감을 한 보람은 빛이 나지 않았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제품의 판매원가는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제품수도 늘어났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임원은 물론이고 부, 차장급 직원들끼리도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어느덧 회사의 색깔이 되었고, 경쟁업체나 협력업..

장편소설 2023.08.17

悲慾(비욕) - 13

13. 그늘의 시작 박호진 상무 입장에서는 회사 내에서 입지를 확고하게 굳힐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고, 본연의 업무인 영업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사내의 비밀연애들을 조사해 나갔지만, 천 상무의 방해공작은 집요하였다. 아무리 허 회장의 지시를 받아서 시작하였다고 하지만, 박 상무보다 더 큰 신임과 권한을 갖고 있는 천 상무의 방어막을 뚫고 나가는 것은 무리였다. 또한 회사 내에는 창업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천 상무와 가까운 직원들이 많았던 탓으로 협조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입사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박 상무와 가까운 직원들은 별로 없었던 탓도 있다. 그리고 여자문제에 있어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허 회장 자신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비조(사내 비밀연애 조사) 팀이 완전 해체되지..

장편소설 2023.07.31

悲慾(비욕) - 12

12. 私愛(사애) 만연 허 회장이 어느 정도 교통정리를 했다고 하지만, 천 상무나 김 대리 모두 불만을 가졌다. 천 상무는 자신의 권위에 상처를 준 김 대리를 잘라내지 못해 불만이고, 김 대리는 당장 승진을 시켜주지 않아 불만이었다. 영업부문의 박호진 상무는 천 상무에게 아무 벌도 주지 않아 불만이고, 서미순 과장은 중국의 상해법인으로 쫓겨나서 입을 삐죽 내밀고 갔다. 이 사건들은 오제원이 이사대우로 입사하기 약 1년 전에 발생한 것이었는데. 이 사건은 결국 회사의 내리막을 제공하는 단초가 되었다. 그리고 천 상무가 허 회장의 약점을 차곡차곡 기록하며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고 마음먹은 것도 아마 이때부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천 상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이용하여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

장편소설 2023.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