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22

悲慾(비욕) - 12

12. 私愛(사애) 만연 허 회장이 어느 정도 교통정리를 했다고 하지만, 천 상무나 김 대리 모두 불만을 가졌다. 천 상무는 자신의 권위에 상처를 준 김 대리를 잘라내지 못해 불만이고, 김 대리는 당장 승진을 시켜주지 않아 불만이었다. 영업부문의 박호진 상무는 천 상무에게 아무 벌도 주지 않아 불만이고, 서미순 과장은 중국의 상해법인으로 쫓겨나서 입을 삐죽 내밀고 갔다. 이 사건들은 오제원이 이사대우로 입사하기 약 1년 전에 발생한 것이었는데. 이 사건은 결국 회사의 내리막을 제공하는 단초가 되었다. 그리고 천 상무가 허 회장의 약점을 차곡차곡 기록하며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고 마음먹은 것도 아마 이때부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천 상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이용하여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

장편소설 2023.07.23

悲慾(비욕) - 11

11. 교통정리 천태운 상무와 김규진 대리가 싸우고 있는 그 시각에 영업부문의 박호진 상무는 베트남 영업과 관련된 보고를 하기 위해 회장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업장을 둘러보고 온 허 회장을 맞이했다. 박 상무는 대기업인 S전자의 영업부장으로 있었는데, 허 회장의 눈에 들어 스카우트해온 인물이었다. 하나케이시(주)가 아직 소규모의 회사일 때 박 상무는 甲(갑)의 위치에서 허 회장을 잘 대우해 준 탓으로 허 회장이 좋게 본 것이다. 그 뒤 하나케이시(주)가 큰 기업으로 발돋움하면서 높은 연봉을 제시하고 데려왔다. 회장이 직접 S 전자를 수시로 드나들 때 박호진 상무가 인간적으로 잘 대우해 주며 많은 조언을 하였던 것이 큰 인연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사실 박 상무는 S전자에서 영업부장으로 잘 나..

장편소설 2023.07.12

悲慾(비욕) - 10

10. 승진의 그림자(2) 이렇게 싸우는 소리는 상무의 부속실에 있는 담당 비서 이혜진 계장의 귀로 쏙쏙 전달이 되었다. 이제 입사 2개월밖에 되지 않은 이혜진 계장은 듣기 민망하여 자리에 앉아있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떠날 수도 없어 안절부절못하였다. 이혜진 계장은 약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입사한 직원이었다. 당시 영업, 생산관리, 경리 등의 신입사원 20명을 뽑는데, 약 2,000이 지원했다. 입사지원자 중에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 출신도 있었고, 학업 성적도 우수하고 스펙이 매우 좋은 지원자도 많이 있었다. 다른 기업들에 비해 월급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이름도 알지 못하는 시골 대학 출신의 이혜진 계장이 뽑힌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미모가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외모..

장편소설 2023.06.25

悲慾(비욕) - 9

9. 승진의 그림자(1) 약 30년의 은행생활에서 오제원이라고 욕심이 없었겠는가. 임원도 되고 더 높은 곳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비굴과 거리가 먼 성품은 언제나 걸림돌이 되었다. 그보다 자신이 힘든 상황에서도 남들의 어려운 사정을 앞세우는 자세는 언제나 마이너스로 작용하곤 했다. 그저 착하게 사는 것이 오제원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또 은행 생활의 마지막 점포에서 허방진 회장을 만나 (주)하나케이시에 입사하게 된 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오제원은 회사에 이사대우로 입사하여 약 2년 후의 정기인사에서 '대우'자를 떼고 이사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2년이 지날 무렵 상무로 승진을 하였다. 은행원 생활을 할 때와 다르게 때로는 착함을 비굴함으로 바꾼 덕택이다. 대개 은행이나 대기업에서 생활하..

장편소설 2023.06.17

悲慾(비욕) - 8

8. 비굴의 모습 지난 약 10년 동안 회사가 수 백배로 성장하면서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거만이라는 것이었다. 우선 기업주인 허방진 회장부터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그의 오른 팔인 천태운 상무는 실세의 지위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일부 직원에 대한 비난과 멸시, 그리고 협력업체를 협력하는 업체로 취급하지 않는 무시와 건방짐은 회사에 구멍을 내고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회사 규모에 맞춰 고급인력을 데려온 결과, 임원은 어느덧 16명이 되었고 부장이나 차장급은 3배로 늘어났다. 물론 규모에 맞춰 각지의 인재들을 데려온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너무 많은 사람을 영입했다는 것도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듯이 서로 잘난 ..

장편소설 2023.05.25

悲慾(비욕) - 7

7. 전환의 시절 허방진 회장은 회장대로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기에 다른 발표자들의 시간을 축내면서 그렇게 화를 냈을 것이다. 나름대로 인재라고 할 수 있는 직원들을 어렵게 채용했지만, 각자 개인플레이에만 능숙한 수재들로 꿰기 힘든 구슬들이었다. 한편 생각하면 허 회장 자신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놓고 왜 그리 됐는지 본인만 모르는 듯했다. 누구보다 인화를 도모해야 하는 허 회장의 책임이 제일 컸음에도 오히려 자신에 대한 충성 경쟁만을 유도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여하튼 오제원이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을 때 가졌던 상해에서의 확대 간부회의는 첫날부터 험악한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다음 날도 분위기는 전운이 감돌았다. 그래서 오제원은 구매부문 전략 발표 시 분위기 전환용으로 회의 ..

장편소설 2023.05.14

悲慾(비욕) - 6

6. 권력다툼(3) 미래전략부문에 GOC(Global Operation Center)팀이 있는데, 이곳 인원들은 모두 학벌도 좋고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뛰어나다. 신대홍 사장이 전에 근무하던 회사에서 김권일 이사를 비롯하여 뛰어난 인재 5인을 스카우트해 온 덕분이다. 신 사장도 미국의 H대학 출신이지만, GOC 팀의 인원들은 대부분 외국의 명문대학 출신들이다. 부장급 이상이 참석하는 회의 등에서 느낀 것이지만, 각종 자료수집 및 분석과 방향제시능력 등이 대기업 수준을 능가한다는 것이다. 오제원이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그해 4. 7.부터 3일간 중국 상해에서 2/4분기 전략회의가 있었는 데, 진행내용이 은행의 전국 영업점장 회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이 회사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장편소설 2023.05.06

悲慾(비욕) - 5

5. 권력다툼(2) 그렇게 정신없이 오제원은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새로운 용어들과 접하며 때로는 지루하게, 때로는 답답하게, 때로는 공부하며, 때로는 멍청하게 보냈다. 나이나 경력에 비해 낮은 직위로 입사했다는 것도 힘들게 했지만, 더 힘든 것은 시스템이나 조직자체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으로 방향 자체를 쉽게 그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은행에서는 주로 중소규모의 기업만 상대하였지만, 그 범주를 벗어난 덩치가 큰 기업에서 근무한다는 새로움과 근무 환경이 좋은 회사로 출근한다는 장점이 없었다면, 답답한 마음을 견디지 못해 일찍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우선 허방진 회장의 수차레에 걸친 요청으로 입사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둔다면 허 회장의 체면에 손상이 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깔려 있기에 좀 ..

장편소설 2023.04.30

悲慾(비욕) - 4

4. 권력다툼(1) 입사 첫날의 언짢은 기분을 가라앉히며 하루를 정신없이 보낸 다음 날이다. 무엇보다 회사현황과 업무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기에 첫날과 비슷하게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출근하였다. 어제 구이재 구매부장이 준 최근의 구매현황과 자재 재고 현황 및 현안문제들을 대학노트에 메모하다 보니 숫자의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사실 메모하는 이유는 자신의 글씨체가 눈에 더 잘 들어오면서 기억에 오래 남기 때문이다. 오랜 은행생활에서 몸에 밴 것이다. 새로운 업무를 담당하거나 새로운 지점에 발령받으면 언제나 직접 노트에 주요 사항들을 기재하며 파악하곤 했던 습관을 살려 이 회사의 구매와 관련된 현황을 직접 작성하며 머리에 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선 연결된 자료들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숫자들이 너무 ..

장편소설 2023.04.14

悲慾(비욕) - 3

3. 실망스러운 첫날 오제원 상무는 자기 방으로 가면서 처음 출근했을 때의 일을 떠올려본다. 약 6년 전의 일로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깨끗이 하고 성모님 앞에서 기도를 올렸다. 기도 말미에 본인의 이름 앞 자를 넣어 중얼거렸다. "오늘도 제발 원하는 일이 모두 이루어지게 하소서!" 평소보다 좀 일찍 일어났더니 조간신문의 사설도 다 읽을 수 있었다. 새로운 직장에 첫 출근하는 날이다. 약간은 긴장된 얼굴을 풀면서 스스로에게 다짐을 한다. "그래. 잘할 수 있어. 제원이는 무엇이든지 잘할 수 있다!"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을 침착함과 자신감으로 눌러본다. 나름대로 어느 정도 설렘을 안고 집을 일찍 나선 오제원은 업무시작 1시간 전에 도착하였더니 아무도 없다. 처음 맞이하게 되는 분위기가 어색하다. 지난 ..

장편소설 2023.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