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봉합시도 2
허 회장은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었다. 자기 나름대로 종업원들에게 상당히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종업원들의 눈빛이나 태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 최근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직원들을 구조조정시키고, 그로 인해 남아있는 직원들의 업무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애써온 것을 생각하니 분노가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 중소기업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학교까지 직원 자녀 학자금 지급, 직원 결혼시 임대주택 제공, 격지 근무자나 미혼인 직원들에게 기숙사 제공, 철마다 양질의 근무복 지급 등 직원들을 위한 각종 복지혜택에 힘써 온 것들을 생각하니 배신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직원들의 급여가 비슷한 업종의 다른 중소기업들에 비해서는 약 1.5배 수준이다. 이렇게 직원들을 우대하며 양질의 직원들만 뽑아서 근무시키고 있다고 여겼는데, 오늘 기업주인 자신을 대하는 현장 직원들의 태도는 자신을 마치 적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그동안 그놈들을 어떻게 대우하며 살았는데, 정말 열불이 나는군."
"물론입니다. 직원 월급 등을 비롯하여 엄청나게 대우를 잘해준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회사의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직원들의 업무가 늘어났고, 이로 인해 모두들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도 이해를 해 주셔야 합니다. 더구나 회장님의 속 마음은 아니겠지만, 간혹 직원들에게 직접 말씀을 하는 과정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기들을 그야말로 종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고 봅니다."
"참 어이가 없군. 그동안 내가 직원들을 얼마나 존중하며 어떻게 회사를 경영해 왔는지 그렇게 모른단 말인가. 그리고 종이라고 자꾸 말하게 된 것은 큰 부담 없이 열심히 일하라는 뜻으로 말한 것인데, 정말 그들은 혼네와 다테마에의 차이도 모른단 말인가?"
"직원들의 깊은 이해를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그들은 현재와 과거를 비교하여 과거보다 못하다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은 저도 이야기를 들어서 대충 알고 있는데, 회장님께서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미셔야 될 것 같습니다. 회사야 망하든 말든 상관없고, 회장님께서 그동안 쌓아오신 명예, 인간관계 등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먼저 손을 내밀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회사고 뭐고 다 엎어버리고 싶지만, 오 이사가 그리 말하니 생각 좀 해보리다."
"화해는 되도록이면 빠를수록 좋다고 봅니다."
이번 사건에 오 이사 자신이 나설 위치에 있지는 않았지만, 왠지 본인이 이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임원들을 접촉하며 설득했다. 우선 임원이란 자들이 허 회장이나 천 사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종업원의 입장에서 그들을 선동하여 파업으로 인도한다면 회사는 그냥 문을 닫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미래전략부문의 김권일 상무, 영업부문의 박호진 상무, 품질부문의 조상인 이사 등은 우선 회사부터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 즉, 우선 나라가 있어야 백성도 있듯이 회사 자체가 없어진다면 회사원도 없어지고 마는 것이기 때문에 급한 대로 부문장들이 노사가 협조할 수 있도록 다리(bridge) 역할을 하기로 결의했다. 오 이사는 이들의 의견을 모아 직원들과 수시로 회의를 가졌다. 일부 직원들은 이 기회에 천태운 사장을 내보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지만,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는 직원들도 많았다. 그만큼 천 사장이 자기의 사람들을 많이 심어놓은 탓이었다.
여하튼 오 이사는 약 일주일 동안 열심히 직원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날 이후 회사에 나오지 않는 한대교 이사의 집에도 찾아가 설득을 하였다. 열심히 뛰어다니며 화해 시도를 한 덕분에 어느 정도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었다.
"회장님! 직원들과 대화의 시간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오후 4시 회의실입니다. 지금은 많은 직원들이 회장님을 원망하고 있지만, 그 원망을 희망으로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예전의 존경받는 회장님 모습을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 하리다."
어렵게 마련된 대화의 시간에서 허 회장은 머리를 수그렸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웅변 솜씨로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직원들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알아달라고 울먹이면서 호소할 때는 여직원들과 일부 남직원들이 울었다. 허 회장은 사표를 낸 한대교 이사에게도 미안하다고 하면서 함께하자고 울먹였다. 이에 한 이사는 무릎을 꿇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한 이사도 부양해야 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쉽게 떠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회사에서 강제로 내보내지 않는 한 나갈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각종 복지혜택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 회사보다 월급을 더 많이 주는 중소기업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날 이후 회사는 다행스럽게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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