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업무분장 갈등(2)
"아니, 오상무! 내 회사의 어떤 업무를 내 맘대로 맡기지도 못한단 말이오?"
"제 말씀은 인사 등을 비롯한 경영을 천 사장에게 맡겨 놓은 상태이니, 업무 분장은 그와 먼저 협의가 먼저일 것이고, 더구나 CFO는 오래전부터 천 사장이 직접 맡고 있는 것이기에 그리 말씀드린 것입니다. 오해는 말아 주십시오."
회사 내의 파워는 인사, 조직, 자금 등 회사의 주요 업무를 많이 하고 있는 자에게로 쏠리게 되어 있다. 허 회장이 아무리 회사의 주인이라곤 하지만, 경영을 천 사장이 하고 있기에 천 사장의 동의 없이 CFO를 오 상무에게 맡긴다는 것은 분란을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제원 상무로써는 당연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천 사장이 CFO업무를 남에게 맡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허 회장도 잘 알면서 하는 말이다. 허 회장의 속셈은 자신이 뒷받침이 되어줄 테니 오 상무가 천 사장을 설득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약 2년 전부터 시작된 구조조정을 할 때도 그랬지만, 허 회장은 언제나 자신의 손에 피 묻히기를 싫어한다. 따라서 오 상무가 노사 간 화합 노력으로 어느 정도 회사를 안정시킴으로써 많은 직원들로부터 신임을 얻고 있으니, 그 힘을 이용하여 자기의 역할을 대신하면 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내가 그동안 너무 한 사람에게만 의지를 한 것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의 대충 계산으로도 해외법인으로부터 들어오는 금액이 너무 맞지 않아요. 이는 해외법인장들이 빼돌렸거나, 아니면 천 사장이 장난을 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 상무에게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오 상무는 한숨을 지었다. 약 4년여 전, 허 회장이 자신을 이 회사로 데려올 때 당연히 CFO를 맡기는 줄 알았었다. 그런데 엉뚱하게 생각지도 않은 구매업무를 담당시키더니, 왜 이제 와서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국내는 그렇지 않지만, 중국에서 우후죽순처럼 경쟁업체들이 생기는 바람에 약 2년 전부터 악화된 자금 사정으로 속은 텅 비고 겉만 번지르르한 재무구조이다. 차라리 빈 공터 수준이라면 그래도 해볼 만하겠지만, 엄청난 쓰레기부터 치워야 할 큰 규모의 구조물 상태이기에 오 상무는 망설였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만, 먼저 천 사장과의 협의가 우선인 듯 합니다. 회장님이 말씀하시기 곤란하면 제가 천 사장과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만, 그전에 한 가지 다짐을 받고자 합니다."
"그게 무엇이오?"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까지 법이나 규정, 그리고 도덕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으며 살아왔습니다. 약 30년의 은행원 생활도 그러했지만, 지난 약 4년 동안의 구매 업무도 정도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쓰며 지냈습니다. 그동안 천 사장은 어떻게 해왔는지 자세히 모릅니다만, 저는 법이나 규정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회장님에 대한 비자금 공여 등 음성적인 자금흐름도 없을 것이고, 탈세 같은 것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탈세나 범법 행위 등 정도에 어긋난 것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먼저 해주시기 바랍니다."
비자금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허 회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 기업이라는 것은 공자나 맹자같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오. 절세는 말할 것도 없고, 음성적으로 필요한 자금도 합법화시키는 것, 회계나 경리에서 합법의 포장지를 잘 씌우는 것이 능력이라고 봅니다."
"물론 세상을 살면서 타협을 하지 않으며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기업의 본질인 이익을 극대화하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만, 그전에 인(仁)과 의(義)가 우선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교통이 없다고 해서 빨간 신호등에 길을 건너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히 파란 신호등인데도, 엉뚱한 곳만 쳐다보고 있거나 머뭇거리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또다시 침묵이 잠시 흘렀다. 오 상무는 침묵이 불편하여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교사(巧詐)는 졸성(拙誠)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교묘한 거짓은 서툰 성실만 못한 것입니다. 국가 경영뿐만 아니고,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정도(正道)가 아니면 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허 회장은 이마에 '성실'이라고 쓰여 있는 이런 사람과 함께 근무한다는 것에 대하여 기분이 좋은지 잠시 미소를 지었다. 오 상무의 반듯함을 크게 칭찬하면서도,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더니 한마디 툭 던진다.
"오 상무! 업무 분장과 관련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해 보기로 합시다."
오 상무가 가볍지 못한 발걸음으로 회장실을 나설 때, 회장 비서인 정수미 대리가 특유의 밝은 미소를 지으며 수줍게 접지 않은 조그만 쪽지를 건넨다. 아마 말을 하면 유난히 귀가 밝은 회장님이 들을까 봐 글로 쓴 듯하다. 그곳엔 "오늘 저녁에 업무 분장과 관련하여 상담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오 상무는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를 붙이고 나머지 손가락을 펼쳐 OK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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