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悲慾(비욕) - 34

헤스톤 2025. 2. 27. 09:31

 

 

34. 다시 부는 찬바람

 

 

노사 간 봉합으로 안정을 찾아가던 회사는 1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내리막길로 내달렸다. 경쟁업체들의 가격 인하 경쟁이라는 외부 요인도 있었지만, 회사의 고질적인 병이라고 할 수 있는 내부 불화가 더 큰 원인이었다. 더 결정적인 것은 부회장 겸 사장인 천태운의 공격적인 경영이 최선이라는 그의 오판이었다. 무리하게 중국과 베트남에 사업장을 증축 혹은 신축하면서 5개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허 회장의 묵인하에 천 사장이 건물을 짓는데 열을 올리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를 실행하면서 공사대금을 크게 부풀려 놓고, 건축업자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아 비자금을 조성하고자 함이었다.  약 5년 전만 해도 무차입 경영을 원칙으로 하던 회사는 수시로 은행 문턱을 들락거리며 대출 신청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신용으로 공여할 수 있는 한도를 초과하여 더 이상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허 회장은 당연히 대주주이기에 여신이 실행될 때마다 포괄 개인 보증을 하곤 하였다.

 

지난 일이지만 허 회장은 이때라도 중대한 결심을 하였어야 했다. 허 회장이 채무에 대하여 포괄근저당 내지는 포괄 보증인으로서 사인을 할 때마다 오 상무는 과거 은행에서 근무하였던 지식을 동원하여 조언을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허 회장은 얼굴을 찡그렸고, 천 사장의 감언이설에만 귀를 기울였다. 천 사장은 미국을 포함한 외국 학벌 위주인 그의 브레인들이 전해주는 장밋빛 그림만 쳐다보며 설비투자에 열을 올렸다. 매출 증대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설비 투자란 것은 회사에 자꾸만 족쇄를 채우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오제원 상무는 은행에서 수많은 기업들을 상대하며 쌓은 경험을 살려 수시로 브레이크를 걸었지만, 이는 오히려 천 사장과 오 상무의 갈등만 점점 더 악화시킬 뿐이었다.

 

 

 

업무분장 갈등 이후 오 상무를 따르는 직원들에 대한 핍박도 이어졌다. 구매부문의 김명혜 대리는 진작 과장으로 승진이 되었어야 함에도 순전히 오 상무와 가깝다는 이유로 매번 탈락되곤 하였다. 정수미 대리의 경우에도 과장 승진자 대상에서 누락되었다. 아마 회장 비서로 그대로 있었으면 틀림없이 과장이 될 수 있었을 것이기에 오 상무는 착잡하였다. 무엇보다 부문장을 잘못 만나 벌써 몇 년째 승진에서 탈락된 김명혜 대리에게 오 상무는 미안하였다. 김 대리를 상무 방으로 불렀다.

"김대리~ 이번 승진에서도 탈락되어 무어라고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군. 내가 천 부회장과 사이가 안 좋다 보니 우리 부문의 직원들이 다 불이익을 받는 것 같아서 미안해. 특히 우리 김 대리에게 제일 미안해."

"아니에요. 상무님! 저는 상무님과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는 것만으로도 족해요."

김 대리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치 나라를 잃은 듯한 얼굴이다.

"지난주에 내가 천 부회장에게 따로 얘기를 했는데도 결과가 이렇게 되어 어떻게 위로해야 될지 모르겠어~"

"상무님! 솔직히 저 너무 힘들어요.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 간신히 버티고 있어요. 오늘 저에게 위로주 한잔 사주실래요?"

그렇지 않아도 회사 내에서 오 상무와 김 대리가 가깝게 지내는 탓으로, 혹시 그런 사이가 아니냐고 수군거리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 상무는 망설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정수미 대리도 같이 가면 될 듯하여 정 대리도 함께 가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그랬더니 김 대리의 입이 삐죽 나오면서, 승진 탈락과 겹쳐 다른 감정이 솟구쳤는지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말한다. 

 

"정말 속상해요. 정 대리가 우리 구매부문으로 온 이후 상무님은 정 대리만 많이 예뻐해 주시는 것 같아 속상해요." 

오 상무는 순간 당황했다. 회장 비서로 있던 정 대리를 본인이 원해서 어렵게 데려오긴 했지만, 비서로 있을 때에 비하면 업무강도도 높아졌고, 더구나 접하지 못하던 업무를 하다 보니 힘들어하는 것 같아 자주 가서 토닥거려 주었던 것을 김 대리는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보다도 정 대리가 담당하는 국내의 부자재 업체들에 대한 정기적인 공정 점검차 출장을 갈 때  둘이 다정하게 다녔던 것을 김 대리는 다른 시각으로 본 것이다. 김 대리는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며 운다. 직장 상사 여부를 떠나서 남자는 여자의 눈물에 약하다. 오 상무는 기운을 내서 다시 일을 열심히 해보자고 가까이 다가가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그랬더니 김 대리가 오 상무의 품으로 안기며 계속 훌쩍거린다. 오 상무는 가슴에 뭉클한 것이 닿으며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고 있음을 알고 얼른 자세를 바로 했다. 

구매 부문의 직원 중 김 대리가 인사상 가장 불이익을 받은 것은 맞지만, 정 대리를 비롯한 다른 직원들도 모두 침울한 상태이기에 그날 회식은 부문 직원 모두가 함께 하며 일단락되었다.

문제는 회사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승진을 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었다. 회사가 어려우면 가장 쉽게 내미는 것이 구조조정이다. 지난 구조조정으로 18명 밖에 안 남은 구매부문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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