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悲慾(비욕) - 33

헤스톤 2025. 2. 21. 06:20

 

 

33. 업무분장 갈등 (3)

 

 

오 상무는 구매부문의 김명혜 대리도 저녁 식사 장소에 데리고 갔다. 왜냐하면 정수미 대리와 김 대리는 회사 내에서 가장 친한 친구로 자주 만나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 상무가 정 대리와 단 둘이 만난다고 하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염려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정 대리가 먼저 입을 연다.

"상무님!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무님이 '별빛포엠'이라는 월간지에 매월 발표하는 시는 잘 읽고 있습니다. 상무님 시는 어렵지 않은 시어들로 가슴에 다가와 감명을 줍니다."

시 이야기가 나오니 한때 문학소녀이었다는 김 대리도 거든다.

"저도 상무님 시를 엄청 좋아하지만, 수미는 완전 찐팬이에요. 상무님 시를 거의 줄줄 외운다니까요."

"허~ 부끄럽군. 내가 생각해도 아직 덜 익은 상태의 시들인데, 그런 시들을 빼놓지 않고 읽고 있다니 고맙군"

"'천호대교의 잡초'나 '부도의 전언' 그리고 '수건'같은 시는 자주 암송한 탓으로 다 외우고 있답니다."

"허~ 그래~ 앞으로 시를 지을 때는 정성을 더 기울여야 할 것 같군. 그보다도 업무 분장과 관련하여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여 이렇게 시간을 가졌으니,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잘못하면 시(詩) 이야기만 하다가 많은 시간을 보낼 것 같기에 오 상무는 화제를 돌렸다. 시 이야기를 할 때는 그렇게 표정이 밝던 정 대리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다.

 

"상무님! 저 좀 구해 주세요. 요즘 너무 힘듭니다."

"무슨 소리인가? 회장님 비서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수많은 직원들이 그 자리에 못 가서 난리 아닌가? 비서도 그냥 비서가 아니고 회장님 비서이니 다른 직원들이 경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나?"

"상무님도 아시다시피 수년 전부터 회장님께서 중,장기 플랜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인 경영을 직접 챙기지 않다 보니, 회장님 비서가 할 역할이 별로 없습니다. 주로 하는 일이 회장님의 주말 혹은 공휴일 골프 부킹이나 회장님 댁과 관련된 자질구레한 심부름뿐이지요."

"지금 그런 것이 힘들어서 하는 말은 아닐테고~"

 

 

 

오 상무도 그동안 김명혜 대리로부터 들은 말이 있어서 대충 짐작은 하고 나왔다.

정 대리의 입사 자체가 정상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약 6년 전 외국어에 능통한 자격 조건으로 5명 모집 시 지원자가 300 명이 넘었었다. 당시 이 회사의 급여는 말할 것도 없고, 근무 조건이나 복지수준이 일반 대기업보다 훨씬 좋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원자들 중에는 엄청난 학벌 혹은 토익 성적이 거의 만점에 가까운 지원자들도 많았다. 따라서 정 계장의 학벌이나 토익 점수로는 지원자 중 30% 안에 들기도 힘들었다. 이국적인 미모가 뒷받침이 되긴 했지만, 그것도 10% 안에 드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수많은 경쟁자들을 뚫고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은 천 사장의 친척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정 계장은 천 사장의 큰처남 딸이었다. 이는 오 상무가 김 대리를 통하여 최근에 알게 된 것이고, 이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몰랐다. 정 대리가 입사 후 천 사장은 허 회장에게 어떻게 어필을 했는지, 당초 영업직으로 입사한 그녀를 회장 비서실로 발령을 냈던 것이다. 회장 비서라는 무게로 다른 사람들보다 승진도 빨리 하였다. 정수미는 입사 동기 중 제일 빨리 계장을 거쳐 대리로 승진을 하였다. 당연 천 사장의 입김이 작용한 탓이다.  

 

문제는 이런 이유 등으로 천 사장이 정 대리를 마치 자신의 수족처럼 부린다는 것이었다. 회장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하고 매일 사소한 것까지 보고를 하게 했다. 주로 천 사장이 듣기를 원하는 것은 돈과 관련된 것으로 빼돌린 비자금을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비서라고 해도 세세한 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천 사장은 정 대리를 닦달하였고, 심지어 허 회장의 단점을 잡기 위해 온 몸을 던질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 탓도 있지만, 회사내에서는 정 대리가 회장님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오 상무를 비롯한 일부 직원들은 헛소문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허 회장도 그렇지만, 정 대리의 몸가짐을 알기에 그런 소문은 금방 수그러들었다.

 

"상무님~ 저 좀 상무님이 있는 구매부문으로 데려가 주시면 안 될까요?"

"나야 정 대리가 오겠다면 대 환영이지. 그런데 허 회장이나 천 사장이 허락을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일단 저를 환영한다니 고맙습니다. 회장님의 허락과 관련해서는 제가 어느 정도 말을 해 놓은 상태입니다. 상무님께서 힘을 보태주시면 어려울 것도 없을 것 같아요. 회장님은 다른 누구보다도 상무님 말이라면 잘 듣는 편이니까요."

 

그 다음 날 오 상무는 허 회장을 만나서 정 대리가 천 사장의 친척이라는 말부터 시작하여 업무와 관련된 말을 조심스럽게 건네며 구매부문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허 회장도 사전에 정 대리로부터 들은 말이 있었는지 천 사장에게 지시하여 정 대리의 업무를 바꿔주게 하였다. 천 사장은 매우 화를 냈다. 회장의 지시이고, 정 대리 본인이 원했기에 어쩔 수 없이 따랐지만, 이 사건 이후 오 상무와 천 사장의 갈등은 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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