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悲慾(비욕) - 21

헤스톤 2024. 3. 11. 11:13

 

21. 서러운 날

 

 

오 이사가 입사한 지 3년이 지나면서부터는 회사의 지금 사정이 더 악화되었다. 납품대금을 3개월 이상 받지 못하고 있는 업체는 커넥트를 납품하는 P사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 2~3 개월의 대금을 연체하게 되었다. 주요 원자재 업체로 도체를 공급하고 있는 (주)보우도의 경우는 더 심각했다. 거의 5개월 이상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다 보니 (주)보우도의 김경문 회장은 대금결제를 독촉하려고 하나케이시(주)로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구매부문 직원들은 대부분의 협력업체들의 아우성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상황이 되었다. 일부 부재재 공급업체와 판지 등 소모품을 납품하는 영세업체 몇 곳은 거의 부도 상태였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매일 찾아와 결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구매부문의 업무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직원 모두 협력업체들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오 이사는 착잡한 마음이 되어 회사 정원으로 나왔다. 몇 시간전에 만났던 F 업체의 K 사장 모습이 자꾸만 어른거린다. 그의 하소연이 자꾸만 귓전을 맴돈다. 이제는 종업원도 다 내보내고, 혼자서 기계 한대로 생산도 하고 영업도 하는  그의 하소연이 떠나질 않아 그의 입장이 되어 끄적거렸 보았다.

 

 

 

 

어느 을(乙)의 서러운 날

 

 

밀린 월세도 내고

이자도 갚아야 한다

수시로 연체를 하다보니

속이 시커멓고

신용도가 바닥이다

 

오늘은 

미루고 미루던 甲이 

꼭 주겠다고 약속한 날

한두 번 어긋난 것이 아니기에

트리에 달려있는 전구들처럼

모든 신경 세포에 불을 켠다

 

하루종일 잔액확인을 해봐도

찍히지 않는 통장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받는 것인데도

죄인아닌 죄인이 되어

굽신거리며 조심스럽다

"오늘 안됩니까?"

甲의 대답은 칼보다 날카롭다

"안됩니다!"

 

그냥 막

나가고 싶은 마음이지만

떠오르는 애들의 얼굴

날씨도 좋고 꽃들이 합창하니

外食이라도 하고 싶은 날

"안됩니다!"

그 소리가 너무 무거워

털썩 주저앉는다

 

 

 

오 이사는 그동안 회사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각 업체들에 대한 원가분석을 하고 가격을 네고하며 자재가격들을 사정없이 깎았던 일들이 부끄럽게 다가온다. 

 

오 이사는 착잡한 마음이 되어 전무에서 후선으로 물러난 손천식 고문의 방을 자주 들락거렸다. 아무도 찾지 않는 그를 위로한다는 명분이지만,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려고 함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허 회장이나 천 전무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눈치를 주는 것을 알면서도 자주 그의 방에 찾아갔다. 회사에 출근해도 말할 상대가 없던 손 고문으로써는 크게 환영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둘은 가슴을 터놓고 얘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오 이사는 손 고문으로부터 회사 창업부터 현재까지 있었던 야사들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지난 인사에서 아웃된 신대홍 사장의 불륜이야기는 놀랄만한 스토리였고, 회사 내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아직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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