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悲慾(비욕) - 17

헤스톤 2023. 12. 18. 17:10

 

 

17. 해고의 바람 2

 

어느 조직이나 1등과 2등의 차이는 크다. 서열상으로만 본다면 허 회장과 신 사장은 회사 내에서 1위와 2위이지만, 가지고 있는 권력의 차이는 엄청나다. 크기의 차이가 된장 항아리와 간장종지 정도는 될 것이다. 의사결정시 사장을 포함한 임원 전체의 의견보다 회장 1인의 말에 더 무게가 있다. 더구나 하나케이시(주) 같은 경우 신 사장의 힘은 천 상무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허 회장과 보내는 시간이 신 사장은 천 상무의 1/5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 중 허 회장과 보내는 시간만 놓고 볼 때 신 사장은 오 이사보다도 적다. 조직에서 갖고 있는 힘이란 누가 최고 권력자와 지내는 시간이 많은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신 사장은 회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오 이사 방으로 갔다.

"오 이사님! 혹시 저와 관련된 이야기를 회장님한테서 들은 것이 있습니까? 회사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원인이 저 때문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회장님한테 들은 바는 없고, 천 상무님한테 작금의 경영에 대하여 임원 중 누군가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구조조정을 당한 직원들을 대할 수 있겠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왜 회장님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책임지라는 그런 말씀은 없었지만, 직원들 분위기를 잘 파악해 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어려운 회사를 발전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최근의 어려움이 저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장님을 뵙게 되면 말씀 좀 잘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보다는 천 상무나 김 이사하고 이야기를 나눠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신 사장은 그 나름대로 어떤 느낌을 받은 탓인지 어깨가 많이 내려갔지만, 더 열심히 일하겠다는 각오로 출근도 더 일찍 하고, 매출거래처들과의 약속도 더 많이 하며 며칠을 보냈다. 천 상무는 답답하였다. 회장이 제대로 의사 전달을 안 한 탓이라고 보고 천 상무는 다시 김권일 이사에게 사약을 전달하는 역할을 해줄 것을 권유했다. 김 이사가 이 회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신 사장 덕분이었지만, 그는 지금 이 상황에서 누구에게 줄을 서야 하는지 안다. 그래서 악역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면에서 그도 나약한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비굴함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삶 자체가 비굴함을 맛보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는 길일 것이다.

"사장님! 제 입으로 자꾸만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송구스럽습니다만, 회장님은 이미 사장님을 내보내는 것으로 마음 굳혔답니다. 그러하니 오늘 부로 사표 제출해 달라는 이야기를 전하러 왔습니다."

"아니, 회장님은 나에게 누군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했지, 나보고 책임지라는 말은 안 하던데."

"그 말이 그 말 아닙니까. 사장님은 그렇게 눈치가 없으신가요. 아니면 다 아시면서 버티시는 건가요. 솔직히 이런 말을 전하는 저는 괴롭습니다. 그냥 남자답게, 쿨하게 던지시고, 퇴직금을 조금 더 달라고 하던지, 혹은 이용하고 있는 차량 이전 같은 것이나 요구하시기 바랍니다." 

그 뒤 약간의 트러블은 있었지만, 그다음 날부터 신 사장의 얼굴을 회사에서 볼 수 없었다.

 

이렇게 신 사장을 물러나게 하였더니 그가 영입해 온 임원과 직원들 몇몇도 사표를 제출하였다.  그중 몇 명은 정말 아까운 인재들이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나가야 할 사람은 대부분 그대로 있고, 꼭 필요한 인재들이 빠져나갔다는 것이 큰 손실이었다. 그 후 손천식 전무도 후선으로 물러나게 하였다. 그리고 그 후 인사발령에서 천 상무는 전무로 승진하고, 김권일 이사는 상무로, 오제원 이사대우는 대우 자를 떼고 이사가 되었으며, 사장 자리는 일단 공석으로 두었다. 

어느 조직이나 인사라고 하는 것은 일부 사람을 즐겁게 하고, 많은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한다. 승진자는 좋을지 몰라도 불만을 가지게 되는 임직원은 꼭 생기게 되어있다. 대부분 잘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불만을 표시한 자는 영업부문의 박호진 상무였다. 그는 내심 공석이 된 사장 자리까지 욕심을 냈었는데, 사장은커녕 전무로 승진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천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킨 것에 대하여 서운함을 표시하였다. 그는 같은 상무라고 할지라도 천태운을 자신의 라이벌로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우선 학벌로도 천태운은 지방에 있는 상고 출신에 불과하지만, 자신은 대한민국 최고 대학인 S대 출신이고, 무엇보다 이 회사의 최대거래처 중 하나인 S그룹 출신으로 허 회장이 직접 영입해 왔다는 자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나이도 자기보다 아래로 자신과 비교도 안 되는 천태운에게 밀린다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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