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悲慾(비욕) - 15

헤스톤 2023. 9. 16. 10:14

 

15. 찬바람을 전하며

 

   그 해 11월이 되면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벌어놓은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계속되는 적자에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직원은 없었다. 세계적인 경제불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상해 법인의 큰 불량까지 겹쳐 경영상황이 크게 악화되면서 무너지기 시작한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손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없이 생산하는 품목수도 자꾸만 늘어났다. 대부분의 회사가 그렇듯이 이럴 경우 비용을 줄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인원을 줄이는 것이다. 하나케이시(주)도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갔다.

   차가운 바람이 자꾸만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날씨마저 전형적인 11월의 을씨년스러운 날들이다. 차가운 늦가을 비가 내린 뒤 맑고 파란 가을하늘이지만 따뜻한 기운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여기저기 젖은 낙엽들이 흩어져 있다. 어느 것은 반쯤 얼음 속에 있고 반은 너덜거린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미래전략부문은 약간 다르지만, 영업, 생산, 품질 부문들에서 많은 인원을 대상으로 선정했다.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을 가지고 있는 구매부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제원 이사는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된 2명의 부하직원에게 통보를 해야 했다. 물론 부문장들끼리 어느 정도 조율한 명단이다. 오 이사는 심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질이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작금의 상황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마음이 아프고 우울해진다. 악역은 괴로운 것이다. 오제원은 많이 심란하였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과 다르게 나쁜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참으로 곤혹스럽다. 

   임원회의를 마치고 구매부문 사무실로 들어오니 거의 전 직원이 전화를 붙들고 협력업체를 상대로 일을 하고 있었다. 전화를 하지않고 PC에서 발주서를 작성하고 있는 현지선 과장이 눈에 띄었다. 다행히 현 과장은 이번 구조조정대상이 아니다. 현 과장은 구매부문에서 가장 오래된 직원이다. 약 10여 년 전에 주자재인 필름을 일본에서 구매했었는데, 당시 무역을 전공으로 하고 일본어를 부전공으로 한 이력과 타 회사에서 구매를 담당한 경력으로 입사를 한 직원이다. 

   "현 과장~ 저기 통화하고 있는 김 과장과 유 대리 통화 끝나면 내 방으로 들어오라고 전해줘~"

   "예~ 알겠습니다. 이사님~"

 

 

   나쁜 소식을 전하는 오 이사는 매우 심란히지 않을 수 없었다. 통보를 하는 사람이 이리 심란한 데, 구조조정 대상으로 통보를 받은 직원은 별 생각이 다 들 것이다. 내가 누구한테 밉 보였나? 업무처리가 맘에 안 들었나? 요즘 잠자리가 뒤숭숭하더니 어젯밤 꿈을 잘 못 꾸었나? 억울할 수도 있고, 하소연을 하고도 싶을 것이다. 5분쯤 있으니 김 과장과 유 대리가 들어온다.

 

   "나쁜 소식을 전하려고 해~ 최근 회사가 매우 어렵다는 것은 알 것이고, 그래서 일부 직원들을 내보내기로 경영진에서 결정을 했어. 우리 구매부문은 모두가 필수인력이기 때문에 보낼 직원이 없다고 했지만, 최소 2명은 보내야 한다고 하여 김 과장과 유 대리를 보내기로 했네."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말을 들은 김 과장과 유 대리는 얼굴이 굳어지며 말이 없다. 그나마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눈치다. 같은 부서의 퇴직 동기가 있다는 것이 조금은 위안이 되는 듯하다. 

   "위로의 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회사의 앞날을 볼 때, 어쩌면 일찍 나가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야. 왜냐하면 이번에 나가는 사람에게는 퇴직금을 일찍 주기로 했고, 통상하는 대로 1개월 급여를 얹어주기로 했거든."

   둘은 여전히 말이 없다, 내가 왜 퇴직 대상이냐고 볼멘 소리라도 할 줄 알았는데, 계속 말이 없다. 

   "다시한번 위로의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회사가 계속 이 상태로 간다면 앞으로 아마 더 많은 직원들을 내보내는 날이 올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그때는 퇴직금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지" 

   "그래서는 안되지요. 어떻게 해서든지 회사를 살려야겠지요."

   그래도 선임이라고 김 과장이 한 마디 한다.

   "물론 남아있는 직원들이 열심히 해서 회사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면 이번에 나가는 직원들을 다시 불러오겠다는 말도 임원회의에서 있었다네. 곧 퇴직일자를 비롯한 구체적인 지침이 내려오면 그때 다시 알려 주겠네 "

  그들은 '내가 왜 구조조정 대상이냐'고 화풀이를 할 수도 있었는데, 그저 순하게 길들여진 양처럼 침울한 상태로 나갔다. 어쩌면 그들도 어느 정도는 짐작을 했는지 모른다. 어차피 결정된 사항이라면 그냥 좋은 뒷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들이 떠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며 멋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여운이라도 오래 남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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