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늘의 시작
박호진 상무 입장에서는 회사 내에서 입지를 확고하게 굳힐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고, 본연의 업무인 영업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사내의 비밀연애들을 조사해 나갔지만, 천 상무의 방해공작은 집요하였다. 아무리 허 회장의 지시를 받아서 시작하였다고 하지만, 박 상무보다 더 큰 신임과 권한을 갖고 있는 천 상무의 방어막을 뚫고 나가는 것은 무리였다. 또한 회사 내에는 창업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천 상무와 가까운 직원들이 많았던 탓으로 협조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입사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박 상무와 가까운 직원들은 별로 없었던 탓도 있다. 그리고 여자문제에 있어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허 회장 자신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비조(사내 비밀연애 조사) 팀이 완전 해체되지는 않았다. 팀장과 팀원들을 대폭 교체하였다. 팀장엔 미래전략부문장인 김권일 이사가 담당을 하게 되었고, 팀원들도 주로 미래전략부문안에 있는 GOC(Global Operation Center)직원들로 구성을 하였다.
그러는 중에 상해법인에서 사건이 터졌다. 주제품인 FLDC(Flexible Light Drive Cable)가 아무리 유연성(Flexibility)이 있는 제품이라도 실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다른 부품에 연결을 하기 위해서는 각도를 90도나 135도로 틀기도 해야 하는데,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제품 특성상 전부 수작업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메인 머시인을 거친 이후의 후공정은 완전 자동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때 제품을 효율적으로 틀기 위해 지그(jig)를 사용하는데, 상해 법인으로 발령받은 서미순 과장의 주도로 새로운 지그가 만들어졌다. 실용 여부에 대하여 본사에서 의문을 품은 직원들도 있었지만, 천 상무라는 권력자를 애인으로 둔 서 과장의 말에 대놓고 반기를 드는 직원은 없었다. 좀 더 간편하게 접기 위한 도구 사용으로 발표 내용만 보면 반대할 수가 없었다. 서 과장의 말대로라면 개선된 지그 사용 시 후공정 인원을 약 2/3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기술파트에서는 수차례 회의를 거친 이후 일단 상해 법인에서만 시범적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베트남이나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법인에서는 반신반의하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천 상무의 서 과장 칭찬은 지겨울 정도였다. 천 상무가 하는 일에 푹 빠져 있던 허 회장도 천 상무의 말을 여러 사람에게 그대로 전하며 서 과장을 특별 승진시킨 것도 잘한 것이고, 벌을 주는 대신 상해 법인으로 발령 낸 것도 신의 한 수이었던 것처럼 떠벌리고 다녔다. 그러나 이로 인해 회사의 탄탄한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만약 새로운 지그로 만들어진 완성 제품이 거래처로 가서 곧바로 불량이 되었거나 사용에 적합하지 못한 제품으로 일찍 판명이 났다면 회사가 그렇게 큰 대미지를 입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약 6개월이 지난 후부터 불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상해법인의 주거래처인 L 전자의 중국 법인에서도 처음엔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가 수개월이 지난 후에야 하나케이시(주)의 FLDC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약 6 개월 동안 납품한 제품을 모두 폐기처분해야 함은 물론이고, 큰 손실을 입은 L 전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해주어야만 했다. 이로 인한 손실은 그 해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의 절반을 넘었다.
문제는 회사에 큰 손실을 끼치게 된 원인 제공자인 서미순 과장에 대하여 사표수리 등을 비롯한 문책이 당연히 있을 줄 일았는데,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오히려 잘못을 엉뚱한 사람에게 덮어 씌웠다는 것이다. 분명 지그 개발 잘못으로 인한 것임에도 도면과 조금 다르게 만들었다는 트집을 잡았고, 또한 후공정 라인에서 지침대로 접기를 안 했다는 죄를 씌워 생산기술 파트의 안기용 차장과 후공정 책임자인 이은배 과장에게 벌을 주었다.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말이 회사 내에서 돌았다. 제일 큰 잘못을 한 서미순 과장에게 아무런 벌도 주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회사의 이인자 더 나아가 일인자의 대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천 상무의 입김에 따른 것이었다. 결국 정직과 감봉의 벌을 받은 안 차장과 이 과장은 회사에 침을 뱉으며 사표를 제출했다. 안 차장과 이 과장이 회사를 나간 후 이들이 차린 회사도 훗날 하나케이시(주)를 무척 힘들게 하였다.
안기용 차장과 이은배 과장은 기술파트의 주요 인력과 후공정의 핵심들을 데리고 상해 법인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똑같은 제품을 만드는 회사를 창업하였다. 일단 메인머시인 2대로 시작하였기 때문에 규모는 매우 작았다. 하지만 그들이 창업한 경쟁회사 창신디씨(주)의 제품은 품질면에서 뒤지 않았으며, 가격경쟁력에서 크게 앞섰기 때문에 하나케이시(주)의 기존거래처들을 쉽게 공략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됨에 따라 주변의 S 전자나 L 전자의 중국 공장들도 점점 창신디씨(주)의 제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5천만 불 이상하던 상해 법인의 매출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오제원이 이사대우로 입사하기 직전에 있었던 상해 법인의 이런 상황은 결국 회사 전체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오제원은 입사 3 개월이 지날 무렵 어떤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자신이 맡은 구매 업무 이외에는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찬 바람이 자꾸만 회사의 약한 곳을 찾아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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