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悲慾(비욕) - 10

헤스톤 2023. 6. 25. 09:50

 

10. 승진의 그림자(2)

 

    이렇게 싸우는 소리는 상무의 부속실에 있는 담당 비서 이혜진 계장의 귀로 쏙쏙 전달이 되었다. 이제 입사 2개월밖에 되지 않은 이혜진 계장은 듣기 민망하여 자리에 앉아있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떠날 수도 없어 안절부절못하였다.

   이혜진 계장은 약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입사한 직원이었다. 당시 영업, 생산관리, 경리 등의 신입사원 20명을 뽑는데, 약 2,000이 지원했다. 입사지원자 중에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 출신도 있었고, 학업 성적도 우수하고 스펙이 매우 좋은 지원자도 많이 있었다. 다른 기업들에 비해 월급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이름도 알지 못하는 시골 대학 출신의 이혜진 계장이 뽑힌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미모가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외모가 좋은 지원자들이 많았지만, 이 계장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이었다. 천 상무의 선택을 받기에 너무 충분한 신체적 조건을 갖고 있었다. 천 상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런 탓으로 당초 경리업무를 담당할 직원으로 채용하고서는 약 1개월의 수습기간이 지난 후 천 상무는 자신의 비서로 발령을 낸 것이다. 자신의 비서이었던 안수진 계장을 대리로 승격시키면서 영업부문으로, 영업의 김명혜 계장은 구매부문으로, 구매의 김계남 대리를 경리담당으로 돌려 막기 인사를 하면서까지  자신의 비서로 앉혔던 것이다. 지금 김 대리와 싸우고 있는 천 상무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바로 이혜진 계장한테 쪽팔리는 것이었다. 

 

   "해고"라는 소리가 나오자 김 대리는 아까 들었다 놓았던 천 상무의 명패를 다시 한번 들었다가 쾅 소리가 나게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해고요? 나를 해고시킨다고? 정말 나하고 한번 해보자는 거요? 서미순이가 나를 해고시키라고 합디까? 솔직히 그 여자는 한때 내 여자이었습니다. 구멍동서로 말하면 내가 형님이오. 상무님~ 나한테 형님이라고 한번 해보시오~"

   천 상무는 구멍동서라는 말까지 나오면서 소리가 올라가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갔다. 평소의 경우라면 폭력이라도 행사했어야 하는데, 지금 이 순간엔 새로운 쾌락을 찾아 내심 공을 들이고 있는 이혜진 계장의 귀에 그 말이 들어가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주먹을 올려 언성을 낮추라는 신호를 보내는 중에 이혜진 계장이 들어왔다.

   "상무님! 회장님이 찾으십니다. 같이 있으면 김 대리님도 함께 오라는 지시입니다."

   

   허방진 회장이 생산부문의 자동화코너를 순시하다 부자재인 커넥터(connector)의 멀티조인트(Multi Joint) 원리와 부작용 등을 물어보는데, 담당자인 김 규진 대리가 없어서 아무도 대답을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수행을 하고 있던 한대교 생산부문장이 급히 수소문하다 보니 천 상무 방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회장님께 보고하였던 것이다.

 

 

   회장님이 찾는다는 말에 둘은 갑자기 잠시 침묵이 흐른다. 허방진 회장은 말 그대로 회사 직원 모두에게 지존이고 절대자이었다. 둘은 매무새를 다듬더니 함께 급히 5층에 있는 회장실로 갔다. 천 상무는 김 대리와 언성을 높이다 보니 기분이 꿀꿀하고 윗사람으로써 체면이 구겨졌지만, 회장님이 찾는다는 말에 자세를 바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법인기업이라고 하지만, 거의 회장의 개인 회사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이다. 대개의 기업이 비슷하지만, 최대주주인 회장은 회사 내에서 절대권력자이다. 회장의 말은 곧 법이고 규칙이었다. 천 상무가 회사에서 최고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도 허 회장의 허락 내지는 방조하에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회장이 출근할 때의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허 회장이 어쩌다 아침 일찍 출근을 하는 날에 경비가 정문을 통과했다는 말을 전하면 부장급 이상의 직원들이 양옆으로 도열하여 맞이하곤 하였다. 

 

   오 이사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중국의 선전법인에 회장을 따라갔을 때 의전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법인장이 그곳 시의 관계자나 경찰서를 어떻게 섭외했는지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출국장을 거의 무사통과로 나올 수 있더니 리무진에 올라탔다. 더 놀란 것은 경찰백차를 앞세우고 사이드카 6대의 호위를 받으며 약 1시간 남짓 거리인 공장으로 향했다. 앞자리엔 법인장이 타고, 오 이사는 회장 옆자리에 타고 가면서 난생처음 백차와 사이드카 호위를 받으며 도로를 달렸다. 시내에서도 미리 연락을 받은 교통들이 신호를 조작하여 한 번도 신호등에 걸리지 않고 통과하였다. 공장 정문에 도착하니 약 5백여 명의 직원들이 양옆으로 도열하여 회장을 맞이하는데, 이 또한 익숙하지 않은 모습인 탓으로 오 이사는 전율이 일었다. 그곳 총직원이 약 2천 명인데, 전 직원을 도열시키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오 이사의 머리를 스치는 것은 이게 과연 올바른 의전인가에 대하여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기계는 많은 부분 자동화가 되어 있어서  24시간 가동이 된다고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회장 방문의 환영행사를 한다는 것이 제대로 된 회사인지에 대하여 의심이 들었다. 정말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그 법인장 놈의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오 이사는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다음 정기 인사에서 이사 직위이었던 선전 법인장은 상무이사로 승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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