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悲慾(비욕) - 7

헤스톤 2023. 5. 14. 10:30

 

7. 전환의 시절

 

 

   허방진 회장은 회장대로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기에 다른 발표자들의 시간을 축내면서 그렇게 화를 냈을 것이다. 나름대로 인재라고 할 수 있는 직원들을 어렵게 채용했지만, 각자 개인플레이에만 능숙한 수재들로 꿰기 힘든 구슬들이었다. 한편 생각하면 허 회장 자신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놓고 왜 그리 됐는지 본인만 모르는 듯했다. 누구보다 인화를 도모해야 하는 허 회장의 책임이 제일 컸음에도 오히려 자신에 대한 충성 경쟁만을 유도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여하튼 오제원이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을 때 가졌던 상해에서의 확대 간부회의는 첫날부터 험악한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다음 날도 분위기는 전운이 감돌았다. 그래서 오제원은 구매부문 전략 발표 시 분위기 전환용으로 회의 분위기가 무서워서 제대로 발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로 시작하였다. 되도록이면 자신의 발표에 시비 걸지 말고, 못마땅한 것이 있으면 이렇게 공개석상이 아닌 개별 면담을 해주기 바란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리고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제대로 업무파악이 덜 된 점도 고려해 달라면서 그동안 겪은 소회를 잠시 피력하였다. 특히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오늘은 또 누가 누구하고 대판 붙을까를 염려하였고,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와 더불어 이런 염려 등으로 한 달 만에 몸무게가 6Kg이나 줄었다고 하였더니 미소 짓는 직원들도 보였다. 그리고 업무 관련 발표를 마무리하면서 회사가 오늘날 이렇게 성장하기 전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며 기본으로 돌아가자(get back to the basics)고 역설하였다. 

 

 

 

   우선 발전의 장애라고 하면서 과거의 사람으로 치부하는 손천식 전무에 대한 비난부터 거두어줄 것을 요청했다. 사실 손 전무는 회사를 크게 일으킨 공신 중의 공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10년 전 손 전무에 의해 생산할 수 있었던 FLDC(Flexible Light Drive Cable)라는 신제품은 정말 획기적이었다. 이 제품 하나로 연 매출을 크게 성장시키면서 돈을 주체 못 할 정도로 벌 수 있었다. 이 제품 개발은 정말 손 전무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못했다.

 

   손 전무가 이 제품을 개발하게 된 결정적인 근거는 일본의 B도금업체를 방문하면서 시작되었다. 그전에는 전 세계적으로 LDC만을 소량으로만 생산하던 중이었는데, MM(Main Machine) 공급업체의 소개로 B 도금업체를 방문하여 제품의 수명이 길어지는 것을 검토하던 중이었다. 그 업체의 쓰레기 더미에 일본 S 업체의 FLDC가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FLDC는 크게 상용화되어 있지 않았다. 이제 막 공급 시험 단계이었다. 손 전무는 혹시 이것이 큰돈을 벌게 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쓰레기 더미에서 몰래 몇 개를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국내에 돌아와 계속 뜯어보고 분석을 하였다. 회사에서는 아무 지원도 없었지만, 혼자 밤을 새워가며 분석하고 시험해 보았다. 그리고 메인 머시인에서 밤늦게 몇몇의 생산직 직원들에게 야식을 사주며 테스트를 하였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드디어 일본 S 업체의 제품과 동등한 성능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손 전무는 이 제품을 들고 국내의 최대 대기업인 S와 L 전자의 관련자들을 만났다. 처음엔 소량으로 사용해 보았지만, 점점 더 확대하게 되었고, 결국 대박을 터뜨렸다. 대기업들도 대만족이었고, 이로 인해 일본 S 업체의 절반가격만으로도 회사는 돈을 긁어모았다.

 

   이로 인해 당시 부도 직전이었던 회사는 크게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주 업종도 자연히 섬유 제조에서 전자부품 제조로 바꾸게 되었고, 모든 생산시설을 이에 맞춰 교체하였다. 회사 규모에 비해 주체 못 할 정도로 돈이 들어오면서 1년도 지나지 않아 빚쟁이들의 모든 빚은 물론이고, 은행 대출도 모두 상환할 수 있게 되었다.

   약 10년을 그렇게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이 낮이 오래되면 밤이 다가온다.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을 수밖에 없다. 판매가격의 10%밖에 되지 않는 원가의 이 제품 장사를 가만히 두고 볼 시장이 아니다. 우선 국내에서 경쟁업체들이 5개나 생겼다. 노동집약적이면서 기술도 있어야 하며 어느 정도 자본도 있어야 하기에 많은 업체가 생긴 것은 아니지만, 우선 국내에서 경쟁업체들이 생겼다는 것은 이제 국내 유일의 독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히 품질과 함께 가격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중에 이것이 돈 되는 사업이라는 것을 알게 된 중국에서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더니 약 100여 개 업체가 천진과 상해를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자연히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관련 대기업들은 휘파람을 불면서 원가를 절감할 수 있게 되었고, (주)하나케이시 회사는 점점 가격경쟁에서 밀리게 되었다. 어느 제품은 만들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로 전환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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