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悲慾(비욕) - 5

헤스톤 2023. 4. 30. 15:13

 

5.  권력다툼(2)

 

 

   그렇게 정신없이 오제원은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새로운 용어들과 접하며 때로는 지루하게, 때로는 답답하게, 때로는 공부하며, 때로는 멍청하게 보냈다. 나이나 경력에 비해 낮은 직위로 입사했다는 것도 힘들게 했지만, 더 힘든 것은 시스템이나 조직자체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으로 방향 자체를 쉽게 그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은행에서는 주로 중소규모의 기업만 상대하였지만, 그 범주를 벗어난 덩치가 큰 기업에서 근무한다는 새로움과 근무 환경이 좋은 회사로 출근한다는 장점이 없었다면, 답답한 마음을 견디지 못해 일찍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우선 허방진 회장의 수차레에 걸친 요청으로 입사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둔다면 허 회장의 체면에 손상이 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깔려 있기에 좀 더 참아보기로 했다. 또한 업종이 공해나 소음과는 거리가 먼 전자부품 관련 제조업체라는 것도 마음에 든다. 다만 부담이 되는 것은 회사에서 기대하고 있는 성과와 관련한 것이었다. 따라서 기존의 임직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빨리 회사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하여 보답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더 많았다. 우선 몇몇 임원들은 서로 파벌을 형성하였다. 서로 합심하는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제일 큰 원인은 회사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허방진 회장이 이를 방관하면서 은근히 즐기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입사한 이후 처음에 느낀 것은 너무 자주 회의를 한다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최소 3일은 임원회의가 있었다. 현지법인들(해외 5개 법인)을 포함한 화상회의도 있었고, 기술연구소 주관의 기술회의도 있었으며  기획부문 주관의 3월 실적분석과 4월계획 회의도 있었다. 그 외 부문 간이나 팀 간 회의는 수시로 있었다. 한마디로 회의가 참 많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비효율적이다. 물론 정보공유나 전사적 차원의 방향인식과 더불어 업무지시 및 의견교환 등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필요 이상의 회의는 업무능률을 떨어뜨릴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의 때마다 큰 소리가 오고 가면서 임원들끼리의 알력을 볼 수 있었다. 16명의 임원 중 누구는 사장과 가깝고, 누구는 전무와 가까우며, 누구는 중립이라는 것도 대충 알 수 있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모두 허방진 회장의 눈에 들기 위하려고 안달이 난 사람들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허방진 회장의 오른 팔이라고 할 수 있는 천태운 상무(총무 및 자금부문장, CFO)의 입김이 제일 센 편이었다. 

 

 

    회사의 조직은 허방진 회장 아래 신대홍 사장이 있고, 그 밑에 연구소장을 겸한 손천식 전무가 별도로 있다. 그리고 사장 아래 6개의 부문이 있는데, 총무 및 자금부문, 미래전략부문, 영업부문, 생산부문, 구매부문, 품질부문으로 나뉘고, 천태운은 총무 및 자금 부문, 김권일 이사가 미래전략부문, 박호진 상무가 영업부문, 한대교 이사가 생산부문, 조상인 이사가 품질부문, 오제원은 구매부문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직급은 이사대우이지만, 호칭은 오 이사 내지는 구매담당 이사로 불리어지는데, 특색으로는 다른 부문에 비해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이 상당히 적다. 영업부문 같은 경우는 60명이 넘는데 비해 구매 직원 숫자는 12명에 불과하였다.

 

   그동안 회의를 여러차례 하면서 느낀 것은 가장 파워가 센 천태운 상무가 신대홍 사장과 전략적으로 한편이고, 손천식 전무와 품질의 조상인 이사가 서로 말이 통하는 사이이며, 영업부문의 박호진 상무는 왔다 갔다 하며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거나 실리를 취하려는 입장이었다. 한대교 이사는 말을 많이 아끼는 스타일로 천태운의 눈치를 살피는 존재였다. 

  직위로 구분한다면 본사에는 회장아래 사장, 그바로 밑이면서 옆으로 기술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손 전무, 상무가 둘, 이사가 셋, 이사대우는 오제원과 영업과 품질의 부부문장들을 합하면 셋이 있고, 해외의 5개 법인장 중에서 상무가 1명, 이사가 2명, 이사대우가 2명으로 임원 숫자는 총 16명이다.

   이 임원들이 서로 협심하려는 자세보다는 남보다 자신이 튀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못마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의만 하면 싸우는 그런 회의를 왜 하는지 오제원은 부정적인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오제원은 많은 회의에 참석하다보니 얻은 것도 많게 되었다. 주고받는 말과 모르는 용어들이 점점 귀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부장급 이상이 모인 해외 출장 경영전략회의에서 크게 한 판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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