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悲慾(비욕) - 4

헤스톤 2023. 4. 14. 22:05

 

4. 권력다툼(1)

 

 

 

 

  입사 첫날의 언짢은 기분을 가라앉히며 하루를 정신없이 보낸 다음 날이다. 무엇보다 회사현황과 업무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기에 첫날과 비슷하게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출근하였다. 어제 구이재 구매부장이 준 최근의 구매현황과 자재 재고 현황 및 현안문제들을 대학노트에 메모하다 보니 숫자의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사실 메모하는 이유는 자신의 글씨체가 눈에 더 잘 들어오면서 기억에 오래 남기 때문이다. 오랜 은행생활에서 몸에 밴 것이다. 새로운 업무를 담당하거나 새로운 지점에 발령받으면 언제나 직접 노트에 주요 사항들을 기재하며 파악하곤 했던 습관을 살려 이 회사의 구매와 관련된 현황을 직접 작성하며 머리에 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선 연결된 자료들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숫자들이 너무 많다. 무슨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이해하기 힘든 것이 너무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구 부장을 포함한 몇몇 직원들은 숫자에 많이 약했다. 끝자리가 잘못된 경우는 다반사이고 환율이나 원가계산을 잘못하여 전일 구매금액 자체를 여러 번 수정시킨 날도 있었다. 숫자라고 하는 것은 고무줄이 아니라 스틸자 보다도 더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오제원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다른 장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숫자관념이 약한 사람들이 어떻게 구매 업무를 담당할 수 있는지 답답할 때가 수시로 있었다. 어느 경우는 직접 설명을 하고 수정하여 준 것도 다음 날 보면 또 틀리게 보고를  올리곤 하는 것들로 인해 오제원을 힘들게 하였고, 업무 지체의 능률을 크게 저하시켰다.

 

  

  여하튼 이 날은 출근 이틀째로 업무파악 차원이긴 하지만 어느 곳에서 잘못이 있는지 앞뒤 좌우로 숫자를 맞춰보며 잘못된 곳을 체크하고 있는데, 구 부장이 이사실로 급하게 들어온다. 

   "회의에 참석하셔야 되는데요." 

   "무슨 회의요?"  

   "언제나 화요일 아침에는 부장급 이상이 참석하는 주간회의가 있습니다."

   참 일찍도 알려준다. 그런 것이 있으면 진작에 알려주어야지 회의시간이 다 되어서야 알려준다. 일부러 그런 것 같다. 왠지 첫 인사를 나눌 때부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마음에 안 들게 행동한다. 아무래도 자기가 임원이 못 되고 구매업무에 대한 경력도 없는 사람이 자기의 직속 상사로 온 것에 큰 불만이 있는 것 같다. 구 부장은 어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눌 때 눈도 잘 마주치지 않으며 건성으로 악수를 하던 만년 부장이다. K 자동차라는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이 회사의 구매부장으로 스카우트되어 근무한 지 8년째라고 하는데, 이 날도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는지 출근 후 씩씩거리기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마치 오제원 이사대우가 자기 자리를 뺏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인상을 쓰고 있다. 오제원은 구 부장이 텃세를 부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왠지 전쟁터의 기운이 흐른다.   

  

   시계를 보니 벌써 회의 시작 2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구 부장을 탓할 여유도 없다. 급하게 5층 회의실로 올라갔다. 신대홍 사장이 오프닝멘트를 하고 있었다. 늦게 회의실로 들어오는 오제원과 구 부장을 일부는 못마땅하게 쳐다본다.  

   참석인원만 40명이 넘는다. 물론 해외법인들의 부장급이상도 포함된 숫자이다. 해외법인은 5개가 있는데 중국에 2개,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에 각 1개씩 있다. 그들은 화상회의로 참석하였다. 봉급을 많이 받는 고위직 인력이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이미 중소기업을 졸업했어야 할 인원과 규모이다. 이사대우 이상만 16명이나 된다고 하니 이제 갓 입사한 오제원의 서열을 굳이 매긴다면 16번째라고 하여야 할 것 같다.

  

   먼저 각 법인장들이 지난 주 실적 및 금주계획을 발표하는데, 오제원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는 절반도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실적이 부진했다고 여긴 탓인지 아니면 군기를 잡으려고 그러는 것인지 신 사장은 법인장들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마치 도둑놈 다루듯이 한다. 손천식 전무가 그건 그런 것이 아니고 이런 것이라고 하면서 법인장을 대변하며 설명을 하면 신 사장은 그런 식으로 감싸지 말라며 면박을 준다. 몇 번 그러더니 크게 붙었다.

   "전무님은 아무 말 하지 마세요. 지금 우리 회사의 실적저조나 기강해이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은 바로 전무님이에요. 좀 더 미래를 보고 기술개발을 했다면 지금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니, 사장님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사장님이 법인장들을 닦달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정말 역사도 모르고 기초도 모르고 하시기에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모르긴 뭘 모릅니까. 나도 이 회사에 들어온 지 1년이 되다 보니 거의 다 압니다. 그런 식으로 회의 분위기를 흐리려고 한다면 아예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것은 아예 회사를 그만두라고 하는 소리와 같다. 싸늘한 분위기이다. 아니 전쟁터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입사 이틀째 회의를 한번 참석하고, 대충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우선 모두가 허방진 회장에게 잘 보이려고 안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 처음 시작할 때도 언급했지만 이 글은 소설입니다. 즉 픽션입니다.

  물론 오제원이라는 주인공을 통하여 나의 일부 경험을 바탕으로 쓰고 있습니다만,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가공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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