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悲慾(비욕) - 1

헤스톤 2023. 3. 20. 18:54

나의 지난 삶 중 일부였던 50대 후반부의 경험을 토대로 장편소설 하나 씁니다.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점과 간접경험을 토대로 하여 쓰겠습니다만,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픽션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즉, 사실보다는 재미나 교훈을 위해 상상을 가미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즉, 소설이기 때문에 등장하는 인물은 실제 인물이 아닙니다. 가공의 배경과 인물입니다.

 

서둘지 않고 천천히 써 나갈 것입니다. 향후 이 소설이 나 스스로 정한 어느 기준에 도달한다면 나의 제3 문집에 실을 것입니다. 

 

 

悲慾(비욕)  

 

1.  사표를 내고

 

  오제원 상무는 책상 위에 있는 명함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방금 전 채권추심회사 직원들이 왔을 때 그들에게 나눠주다 남은 자신의 명함이다. 사표를 낸 지는 이미 오래됐고, 사표를 처리해 주기로 한 내일부터는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명함이다. 방금 전에 왔던 채권추심회사 직원들은 D 자재공급업체가 보낸 사람들이었다. 사실 D 업체는 자재업체 중에서 비중도 별로 크지 않고 고분고분하던 일반테이프 공급업체이었는데, 그 업체까지 떼인 돈을 받아준다는 소위 해결사들을 이렇게 보낼 줄 몰랐다. 얼마나 힘들고 답답했으면 추심업체에게 돈 받아달라고 일임했을까를 생각하니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험악한 말을 부드럽게 포장하여 겁을 주는 그들과 입씨름을 하였더니 어깨에 힘이 쭉 빠진다. 명함에 박혀있는 "(주)하나케이시 상무이사 오제원"이라는 글자가 자신을 비웃고 있는 듯하다.

 

  협력업체들에게  물품대금을 주지 못해 직접 혹은 간접으로 독촉이나 통첩을 받으며 지낸 지 벌써 6개월 이상이 지났다. 많이 밀린 업체는 1년 전의 자재대금을 주지 못한 곳도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앞이 캄캄하다. 고객사로부터 받을 돈을 다 받는다 해도 협력업체들에게 줄 돈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다. 갚아야 할 돈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회사의 자금사정은 이렇게 엉망인데 날씨는 우라지게 좋다.

 

 

 

 

   정말 화창한 봄날이다. 오천평이 넘는 회사내의 사무실과 사업장을 연결하는 도로 양옆에 가로수로 심어놓은 벚나무에서는 꽃을 피워 저마다 크기를 자랑하고 있고, 주변 곳곳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노란 개나리들도 가느다란 허리를 흔들며 유혹하고 있다. 오 상무는 우울한 마음을 달래려고 사업장 안에 만들어놓은 연못가로 갔다. 수양버들이 얼굴을 살살 간지럽힌다. 벤치에 앉아 수첩을 꺼내 詩語(시어)들을 정리해 본다. 봄은 정말 詩(시) 쓰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봄이라는데 왜 이러지

 

  따스한 봄 내음이 스며들어  

  하얀 벚꽃들이 쏘다녀도

  즐겁지 않다

 

  노란 개나리가 손짓하고

  빨간 진달래가 유혹해도

  흥이 나지 않는다

 

  활짝 핀 꽃들을 보고도

  적절한 시어가 떠오르지 않고

  연두색의 어린 나뭇잎들이

  천진난만한 웃음을 흘려도

  어울리는 글귀가 생각나지 않는다

 

  하늘거리는 수양버들이

  연못에서 손짓해도

  깊이 있는 단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얼마나 그리워하던 봄이던가

  계절의 봄은 이렇게 어김없는데

  수년동안 얼어붙은 마음은

  풀릴 기미가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꽃피고 새우는 봄과 관계없이

  어두침침한 미로속에서

  빠져나올 줄 모르고 있다

 

  이상하게 꼬여버린 삶은

  차디찬 겨울만 고집하고 있으니

  봄날들은 답답해 죽겠다고

  난리를 피우고 있다

    

  약 1시간 이상을 벤치에 앉아 봄 내음과 함께 보내다 일어서려고 하는데, 저 멀리서 오 상무를 발견하고 구매팀의 김명혜 주임이 달려온다. 

  "상무님! 여기 계신 줄 모르고~ 다른 곳을 헤맸습니다. 핸드폰을 자리에 놓고 가시는 바람에 처음엔 화장실에 가신 줄 알았습니다.  아까부터 부회장님이 찾으세요."

  "부회장? 천 부회장이 나를 찾는다고?"

  "예~ 진작부터 찾았어요. 빨리 가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천태운 부회장은 실질적으로 이 회사의 모든 것을 총괄하며 경영하는 CEO이다. 오 상무는 부회장이 찾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괜히 쪼그라든다. 왜 쪼그라드는 것인지 자신한테 화가 나면서 오늘 겪은 채권추심회사의 빚 독촉 등이 떠오르며 열불이 난다. 사표를 내고 나서도 경영자 대신 창피와 협박을 당했다는 생각에 김명혜 주임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저절로 욕이 나온다.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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