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悲慾(비욕) - 3

헤스톤 2023. 3. 30. 11:35

 

3. 실망스러운 첫날 

  

   오제원 상무는 자기 방으로 가면서 처음 출근했을 때의 일을 떠올려본다. 약 6년 전의 일로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깨끗이 하고 성모님 앞에서 기도를 올렸다. 기도 말미에 본인의 이름 앞 자를 넣어 중얼거렸다.

 

   "늘도  하는 일이 모두 이루어지게 하소서!"

   

  평소보다 좀 일찍 일어났더니 조간신문의 사설도 다 읽을 수 있었다. 새로운 직장에 첫 출근하는 날이다. 약간은 긴장된 얼굴을 풀면서 스스로에게 다짐을 한다. "그래. 잘할 수 있어. 제원이는 무엇이든지 잘할 수 있다!"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을 침착함과 자신감으로 눌러본다. 나름대로 어느 정도 설렘을 안고 집을 일찍 나선 오제원은 업무시작 1시간 전에 도착하였더니 아무도 없다. 처음 맞이하게 되는 분위기가 어색하다. 지난 30년 동안 다녔던 은행과는 출근 분위기부터 다르다. 은행에서는 업무 시작 1시간 전쯤 이미 대부분의 직원들이 출근한 상태였는데, 이곳은 한 사람도 출근한 사람이 없다. 회사를 한 바퀴 돌면서 화장실을 비롯한 시설위치부터 파악해 보았다. 규모가 있는 중견 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생각보다 큰 건물이다. 이 건물에 근무하는 인원수만도 약 300명이 된다고 하니 중소기업으로써는 규모가 큰 편이다. 일반적인 제조업체와 비교한다면 청소상태도 매우 양호하고 책상이나 소파 등도 고급이다. 업무시작 시간 20분 전이 되니 직원들이 오기 시작한다. 오는 순서대로 악수를 나누며 오늘부터 근무하게 된 "오제원 이사"라고 하면서 인사를 나눴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게 될 직원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회사의 기본 자료와 팸플릿 등을 보면서 오전을 보냈다.

  

   그런데 아니 이게 무슨 미꾸라지 둘이 껴안다가 미끄러질 소리인가. 분명히 한 달 전 면접을 볼 때만 해도 "理事(이사)"로 입사해 달라고 해 놓고는 막상 출근하니 "이사대우"라고 한다. 갑자기 '대우'자를 왜 붙였는지 모르겠다. 물론 직위가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깨끗하게 다듬어 왔던 기분의 한쪽이 더러워지는 것 같다.   

   분명 약 1개월 전에 면담할 때는 직위를 "이사(理事)"로 하기로 했었는데 이제 와서 "이사대우"로 근무하라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점심시간에 출근한 이 회사의 대주주인 허 회장은 힘도 들이지 않고 말한다. 

  "회사 방침으로 처음엔 '이사대우'의 직위를 주기로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정도 경력이 되면 '이사'가 되고 또 더 승진도 할 수 있으니 그런 줄 아세요." 

  "회사에 대한 기본 사항이나 궁금한 것은 천태운 상무에게 듣도록 하세요." 

   양해를 구하면서 하는 말도 아니다. 그냥 일방적인 통보다. 더 비약해서 들으면 입사하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왜 먼저 손을 내밀며 자기 회사에 들어와 달라고 지난 몇 개월 동안 간청했었는지 모르겠다. 왜 그런 결정을 하였는지 잘 모르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기분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 말 한마디에 그만두겠다고 하는 것도 너무 경솔한 것 같아 오제원은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변했다.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회사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어찌 보면 덤으로 주어진 회사생활이다. 그리고 만약 정 견딜 수 없다면 그만두리라고 마음먹으니 조금은 편해진다. 그래도 그렇지 첫날부터 한 계급 강등에 월급은 약 50만 원이 적다고 하니 꿀꿀해진다. 

   한 달 전에 면접볼 때는 분명히 이사로 입사해 달라고 했는데 말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약 1년 전에 어느 정도 고위 경력을 갖고 입사한 사람들은 모두 이사 이상의 직위를 주었다. 나이나 경력이 오제원보다 훨씬 못한 사람들도 모두 이사 내지는 상무 직위를 가졌다. 회장옆에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째려보던 천태운이 조금은 얕잡아 보는 투로 말을 건다. 

  "오 이사님! 앞으로 잘해 봅시다."

  "아~ 예~ 많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한 마디로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처음부터 "이사대우"로 입사하라고 했으면 이렇게 기분이 저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직위를 한 단계 내려서 입사시킨 원인은 천태운의 요청에 의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솔직히 허 회장도 그렇다. 아무리 천태운이 요청했어도 본인이 직접 간청하여 입사시킨 사람을 이렇게 기분 잡치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여하튼 새카만  얼굴에 눈을 날카롭게 굴리고 있는 천태운의 첫인상이 왠지 첫날 기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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