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悲慾(비욕) - 19

헤스톤 2024. 1. 26. 07:20

 

 

 

19. 골프장 바위

 

오제원 이사는 거의 주말마다 이들과 골프를 치러 다녔다. 휴일마다 골프를 치게 된 이유는 허 회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허 회장의 제일 큰 취미가 골프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잘하는 것을 자신의 취미로 삼는다. 허 회장의 골프 실력은 싱글 수준이었기 때문에 일반 주말 골퍼 수준이 아니었다. 직장인 기준으로 보면 상위 중에서도 상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탓으로 그와 담화를 나누다 보면 골프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평일에는 회사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골프 치러 가지 않지만, 휴일엔 어김없이 함께 어울려 골프를 치러 다녔다. 당연히 허 회장의 비서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골프 예약이었다. 거의 매주 주말은 물론이고, 연휴시에는 제주도나 강원도 등으로 1박 2일 혹은 2박 3일 골프를 치러 다녔다.

 

 

 

연휴가 이니라도 거의 주말마다 다니는 탓으로 박호진 상무는 가끔 투덜거렸다. 오 이사나 자기는 주 5일 근무가 아니고, 주 6일이나 7일 근무를 하는 셈이라고 투덜거렸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로부터 휴일 수당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술을 별로 즐기지 않는 허 회장의 취미 생활을 즐겁게 해 주는데 희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박 상무도 엄청 골프를 즐겼다. 왜냐하면 그도 허 회장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실력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남들과 비교시 자신이 잘하는 것을 할 때는 신난다. 어찌보면 박 상무의 주업무가 골프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였다. 오 이사는 그들에 비해 떨어지는 실력이었지만, 회사를 다니지 않을 생각이 없는 한 이에 호응하며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오 이사도 골프 치는 것을 싫어 하지는 않았다.  

 

그 외에 허 회장의 또 다른 취미는 고스톱이었다. 허 회장의 고스톱 실력은 매우 탁월하였다. 몇 번 패가 돌아가면 상대방이 대충 무엇을 들고 있는지 파악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 탓으로 확률적으로 허 회장이 돈을 잃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 이사나 박 상무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셈도 무척 빨랐다. 한마디로 그쪽 방면으로 머리가 비상하게 발달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천 전무가 간혹 허 회장의 맞수가 되곤 했다. 그런 탓으로 고스톱을 치면 박 상무와 오 이사는 언제나 허 회장과 천 전무의 밥이 되곤 했다. 오 이사는 도저히 그들의  수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오 이사는 이들과 어울려 낮에는 골프, 밤에는 고스톱을 치면서 그들의 투덜거림에 젖어들었다. 그러면서 지금 이렇게 시간을 보낼 때가 이니고, 좀 더 전략을 가다듬고 회사 제품에 대한 바른 소리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냥 수긍하며 그렇게 지냈다. 그러면서 자신을 볼 때 자신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겁을 회사에서 주는 월급의 대가(代價)로 여기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골프를 치는 중에 허 회장의 드라이버 샷이 잘 못 맞은 탓으로 페어웨이를 벗어나 바위를 맞고 공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 미스샷을 용납 못하는 허 회장은 바위 탓을 하며 스스로 멀리건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희한하게 또 그 바위를 맞고 오비가 되는 것이었다. 허 회장은 왜 그 바위를 그곳에 놓았느냐로부터 시작하여 약 두 홀에 걸쳐 계속 투덜거렸다. 허 회장의 투덜거림은 박 상무의 투덜거림과는 차원이 달랐다. 듣는 이의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갔다. 오 이사는 자신이 그 바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 이사는 바위가 되어 그 날 저녁 시심을 불러 일으켰다. 

 

 

골프장 바위

 

 

제발 때리지 좀 마라

이런 모습으로 태어났기에

맞는 것은 참을 수 있다지만

때려놓고 해대는 욕이 너무 아프다

왜 하필 여기 있냐고 말하지 마라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은 내 탓이 아니다

기분 나쁘다고 침 뱉지도 마라

이렇게 태어난 것을 죄라고 한다면

원죄에서 자유로운 자 어디 있으랴

 

제발 때리지 좀 마라

푸른 잔디 위로 보내지 못해 놓고

투덜대는 소리가 너무 지겹다

나도 맞으려고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맘대로 살 수없는 세상

그것이 세상인 걸 어쩌란 말인가

그래도 간혹 어떤 공은 나 때문에

더 좋은 곳으로 가지도 않는가

지금까지 나 싫다고 하는

바람을 본 적이 없다

잔디들도 내 주위로 모여 춤을 춘다

 

지금은 비록 여기에 있지만

언제 또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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