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悲慾(비욕) - 40

헤스톤 2025. 4. 12. 22:50

 

 

 

40.  쌍두(雙頭) 갈등

 

허 회장은 단단히 화가 났다. 그동안 천 부회장이 자신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온갖 비리와 범법을 끌어안고 헌신하였던 것은 지난 세무조사 사건으로 이미 물거품이 되었기 때문에 그가 그동안 저질러온 과(過)들만이 떠올랐다. 최근까지도 곧 정상화시키겠다는 천 부회장의 사탕발림 말만 믿고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던 자신에 대하여 화가 났다.   

"천 부회장! 나를 어디까지 속일 작정이었오? 도대체 지금까지 내 눈과 귀를 가려 가며 회사 경영을 어떻게 한 것이오?"

"회장님! 무슨 소리인지요?"

"품질의 전 이사가 보낸 출장복명서를 보면 불량률이 5% 미만이 아니고 거의 60%라고 하는데, 도대체 왜 이 지경까지 몰고 왔단 말이오? 만약 전 이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모든 공장을 멈추고 폐업신고를 하는 편이 낫지 않겠소."

이때까지만 해도 천 부회장은 아직 메일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이었기에 무슨 소리인지 그냥 멍할 뿐이었다.

"저는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습니다. 확인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천 부회장은 곧바로 허 회장을 제외한 확대 간부 회의를 소집했다. 화상 회의를 통해 품질의 전 이사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을 비롯하여 직원들을 한 시간 이상 달달 볶았다. 위계질서가 무너졌다는 말도 수차례 했다. 어떻게 경영자인 자신을 통하자 않고 그런 메일 내용이 허 회장에게 먼저 보고가 되었는지에 대하여 길길이 날뛰었다. 오 상무는 뜨끔하였지만 침묵으로 견디다가, 치닫는 그의 분노가 어느 정도 내려갈 때쯤 허 회장이 그런 내용을 먼저 알게 된 사유를 설명했다. 그런데 천 부회장은 그런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그 후 전  이사는 대기발령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 사건 이후 조금씩 금이 가던 허 회장과 천 부회장의 사이는 더 이상 멀어지기 힘들 정도로 멀어졌다. 이 사건 이후 오 상무는 더 바빠졌다. 두 사람 모두 오 상무에게 와서 서로의 험담을 늘어놓기 바빴고, 비생산적인 험담을 들어주는 시간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오 상무는 수십 년 동안 끈끈하게 이어져 왔던 두 사람의 관계를 알기에 중간에서 이들을 이어주려고 애를 썼다. 머리가 둘이 있는 회사는 언제 사단이 나도 반드시 사단을 불러온다. 팔이나 다리는 둘이 아니라 셋이 있어도 괜찮지만, 머리가 두 개 있다는 것은 없는 것보다도 못하다. 다만 회사가 잘 나갈 때와는 다르게 너무 어렵다 보니 회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았다. 

 

천 부회장도 전 이사의 출장복명서 사건 이후 불안감이 다가왔다. 매일매일의 회사 상황판을 보고 있노라면 속이 자꾸만 타들어간다. 최근 들어 담배 피우는 양도 많아져 하루에 두 갑이 모자랄 때도 있다. 담배를 많이 피운 탓인지 가래도 계속 끓는다. 이렇게 어려울 때 열심히 뛰는 직원이 별로 없다는 것도 우울하게 한다. 전 직원들을 상대로 메일을 보냈다.

 

 

 

직원 여러분! 천태운 부회장입니다.

올해도 벌써 3개월이 그냥 지나갔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회사가 2년 이상 힘든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작금의 상황을 정리해 보면

재무상태 악화로 자재수급이 원활하지 못해 기 발주오더 물량도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익구조 역시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어 이대로는 몇 개월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또한 생산성 저조, 불량사고, 기술력 확보, 직원들의 근무상태 등 어느 한 가지라도 원만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재무구조 악화에서 기인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소임을 다했느냐는 의문이 남습니다.

작년부터 제가 그렇게 요구를 하였건만 실망스럽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의 지혜를 모아 이 위기를 극복하자고 호소합니다.

기대를 걸었던 마닐라 법인에서의 대출은 자꾸만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달 수금되는 금액으로 지난달 미지급한 임금과 자재대금 일부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각 법인은 다음 달 3주째에 필리핀에서 대출이 나온다고 보고 모든 금액을 본사로 송금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달 임금은 1/2만 지급할 계획입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주시기 바랍니다. 이 어려운 환경을 벗어나면 또 다른 세계가 우리를 기다릴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메일을 직원들이 받았다고 해서 나아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메일 내용도 직원들이 체감하는 것과 너무 다르다. 우선 실제로 미지급된 입금은 지난달 것만 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 부회장의 계산법은 일반 직원들의 계산과 많이 다르다. 전 달 월급을 다음 달 15일에 지급하기 때문에, 시간상 차이가 많은 것이 감안되지 않은 탓이다. 위 메일에 의하면 1월 급여를 2월 15일에 지급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지급하지 못했고, 이를 4월 초에 가서야 반만 지급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직원 입장에서 보면 지금이 4월인데, 2월과 3월은 말할 것도 없고, 1월 급여도 반만 지급을 받게 된다는 것이기에 일할 기분이 솟아나질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 또한 생산직 직원들에 한한 것이고, 관리직 직원들의 급여는 최소  4개월 이상 밀려있다 보니 직원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임원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밀려있는지, 월급 받는 것을 잊고 지낸 지 계절이 3번은 바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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