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悲慾(비욕) - 37

헤스톤 2025. 3. 24. 20:47

 

 

37. 때늦은 후회

 

 

회사는 회장이 구속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으로 한동안 뒤숭숭했다. 오 상무는 몇 개월에 걸쳐 법원을 들락거리며 허 회장의 변론 답변서 작성에 많은 시간을 사용했다. 담당 변호사는 오 상무가 작성한 글에 앞면만 붙여서 제출하곤 했다. 소송 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고, 결론은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으로 선고되었다. 감옥에 가지 않게 된 것에 대하여 허 회장은 오 상무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허 회장은 개인적으로 너무 많은 시련을 겪은 탓인지 그동안 많이 늙어 있었다. 무엇보다 그를 더 힘들게 한 것은 각종 세무조사와 더불어 검찰 및 법원 등을 오가면서 그 많던 재산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약 10년 이상 각종 리베이트 형식으로 엄청난 돈을 모았지만, 결국 각종 세금과 추징금 등으로 날아갔다. 돈이란 것이 버는 것은 힘들어도 쓰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리고 더 서글픈 것은 아직도 갚아야 할 체납금이 갚은 금액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재산이란 것이 그렇다. 젊을 때와는 다르게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후에 재산이 없다는 것은 정서적 불안을 겪게 한다. 허 회장의 주머니에는 정신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이 언제나 들어 있었다.  

 

지방에 소재하고 있던 빌딩 2개, 제주의 호텔 지분, 리조트 분양권 3개, 골프회원권 5개 등이 개인의 추징금 내지는 소송비용 등으로 사라졌다. 거주로 소유하고 있는 강남의 펜트하우스는 은행에 담보로 잡힌 후 그 대출로 생산직 직원들의 밀린 급여를 일부 변제했을 뿐, 많은 체불임금과 자재대금의 연체 등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관계로 예상보다 수입이 많아지게 됨에 따라 생산직 직원들의 급여는 간신히 충당할 수 있었다. 자재 대금도 예상보다는 조금 더 변제를 할 수 있었다. 매출 대금을 전액 달러로 결제를 받는 구조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이득을 보게 된 것이다.   

 

 

 

오 상무는 이제 회사를 떠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기분이 착잡할 때마다 가게 되는 회사의 연못가에 있다가 사무실로 돌아오니, 허 회장이 오 상무의 방에 왔다 갔다고 정수미 대리가 알려준다. 평소에도 간혹 오 상무의 방에 와서 지난 일이나 서로 알고 있는 이에 대한 칭찬 내지는 험담을 주고받곤 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예의상 오 상무는 회장실로 올라갔다.

 

"어~ 오 상무~ 어서 와요. 구매부문도 직원이 많이 줄어서 힘들지요."

"좀 힘들긴 하지만, 그보다도 협력업체들에 대한 대금을 결제해 주지 못해 그것이 더 힘듭니다. 그에 따라 필요한 자재를 제때 공급하지 못해 생산에 차질을 가져오는 것이 더 힘들지요."

허 회장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한때 돈을 너무 많이 벌어 주체를 못 했던 옛날이 그리울 뿐이다.

"아까 오셨다고 하기에 무슨 하실 말씀이 있나 해서 올라왔습니다."

"아니, 그런 것은 없고, 가슴이 답답해서 오 상무와 말이나 섞으면 좀 나아질까 해서 들렸습니다."

"사실 저도 회장님에게 드릴 말씀이 있기에 이렇게 올라왔습니다.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계셨겠지만, 저도 이제 회사를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회장님 덕분에 은행 퇴직하자마자 이 회사에 들어와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지난번의 내 개인 소송 건이 마무리되면 오 상무가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가신다니 섭섭하군요. 무엇보다 떠난다고 해도 붙잡을 수 없는 내가 한심하네요."

오 상무도 착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느덧 하나케이시(주)에 발을 들여놓은 지 6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그동안 기쁘거나 즐거운 일도 많았고, 슬프거나 괴로운 일도 많았다. 

 

 

 

"오 상무~ 내가 참 후회가 많이 돼요. 오 상무를 내가 이 회사로 데려온 것은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었는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가 됩니다. 오 상무를 처음부터 자금 총괄 업무를 맡겼어야 되는데.."

"사실 저도 처음에 CFO로 근무하는 줄 알고 이 회사에 발을 들여놓았었는데 의외였습니다."

"그때 오 상무로 하여금 이 회사의 CFO를 맡겼다면 오늘날 이런 일은 없었겠죠."

"제가 CFO를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는 가지 않은 길이라 누구도 모르지요. 그나저나 이젠 다 지나간 일입니다."

 

"두 번 째는 2 년 전 상무로 승진시라도 CFO를 맡겼어야 되는데, 당시 운만 띄워 놓고는 실행하지 못한 것이 더 후회가 됩니다. 당시 천 부회장이 해외법인을 통하여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에게 주는 곶감이 달콤해서 천 부회장에게 모든 것을 맡긴 것이 너무 후회가 됩니다."

"당시 저에게 자금관리를 맡겼다고 해서 무엇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제 성격상 빨리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면서 어느 정도의 회장님 재산을 지켜주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약 1년 여전에 오 상무가 은행 대출받는 것을 우려하면서 신규 사업장 건설을 반대한 것과, 기존 사업장 매각을 제안했을 때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가 됩니다. 더구나 천 부회장이 해외법인을 통하여 자꾸만 장난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금액 자체가 크지 않다는 판단으로 주의만 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던 것이 자금 이렇게 큰 화근이 될 줄 몰랐습니다. "

허 회장은 회한에 젖어 눈물을 머금었다. 

"오 상무를 CFO 자리에 앉히는 것에 대하여 3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그 타이밍을 다 놓쳐버렸다는 것이 오늘날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하니 후회가 많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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