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悲慾(비욕) - 36

헤스톤 2025. 3. 9. 22:17

 

 

 

36. 몰아치는 태풍

 

 

세상사 대부분이 그렇듯이 좋지 않은 일은 겹쳐서 온다.

현재의 인력구조와 시스템으로는 살아남기 힘들겠다는 생각으로 연못가에서 한참 머물던 오 상무가 사무실로 들어오니, 구매부문뿐만 아니고 전 부문의 사무실이 어수선하다. 약 20명의 세무조사원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회장실을 비롯한 각 부문의 사무실로 들이닥친 그들은 모든 손을 멈추게 하고 외부 출입도 통제시켰다. 그리고는 닥치는 대로 책상 위나 책상 속에 있는 서류 혹은 USB 등을 가져온 빈 박스에 쓸어 담았다. 오 상무 방에 있는 각종 서류들도 모두 박스로 이동되었다. 국세청 조사 4국에서 나왔다고 한다. 대개 세무조사라고 하면 관할 지방청에서 나오는 것인데, 본청의 조사 4국에서 나왔다는 자체가 불길하다. 국세청 조사 4국은 주로 기업들의 탈세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를 포착하고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곳으로 엄격하게 비정기 세무조사를 진행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이곳에서 세무조사가 나왔다는 것 자체로 회사는 얼어붙었다.

 

쓸어간 자료들은 약 일주일 후 대부분 돌려받았지만, 그때부터 강도 높은 조사가 시작됐다. 조사는 당초 예정 기간을 연장하며 약 30일간 조사를 받았다. 오 상무는 왜 이런 조사를 받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짐작되는 것으로는 두 가지이다. 이 업체가 약 10년 전부터 암암리에 진행하여 온 탈세와 비자금 조성 등에 대하여 국세청에서 의심스럽다고 제출된 세무자료로 판단을 했거나, 아니면 누구로부터 제보를 받았을 것이다.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국세청 스스로 신고내용에 이의가 있다고 판단하여 조사를 진행하였다기보다는, 누군가의 제보를 받고 들이닥친 감이 짙었다. 그들은 건물 구조도 자세하게 파악하고 온 듯했다. 그렇기 때문에 세무 조사원들이 들이닥치자 마자 허 회장과 천 사장의 방 먼저 샅샅이 훑었던 것이다.  

 

내부 제보자로는 지난 구조조정시 거의 강제적으로 물러나게 된 영업의 박호진 상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한때 허 회장에게 자신을 CEO로 임명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었고, 천태운이 부회장 겸 사장으로 승진할 때는 가장 크게 반대했었다. 그런 이유 등으로 천태운과는 계속 좋지 않은 사이로 지냈다. 최근의 영업부진은 품질 불량에 따른 것임에도 실적 부진을 사유로 강제 해고당한 것이었다.

그를 의심하는 이유는 그가 허 회장과 천 사장만 아는 각종 비리를 속속들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임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해외법인에게 각종 부자재 대금을 부풀려 받아서 그 차액을 챙기는 것을 비롯한 해외 건물 신축시 그 업체로부터 받은 리베이트에 관해서도 약간은 알고 있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회사의 이런 내밀을 조금이라도 알만한 사람이 퇴직자 중에서는 없었다. 그는 한동안 매우 친밀하게 지냈던 허 회장과 대화 시 천 부회장의 험담을 주고받는 사이였으며, 허 화장이 해외로부터 들어오는 자금 부족분에 대한 불만을 자주 들었던 점 등을 감안할 때, 그 외에는 달리 의심을 살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젠 누가 제보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조사결과 국세청으로부터 추징된 세금은 무려 천억이 넘었다. 약 5년 전부터 조성된 비자금 금액만 해도 1,000천억이 넘는 것으로 조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자금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마당이기에 회사는 추징 세금을 납부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안 좋은 일은 계속 겹쳐서 온다더니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관세청에서도 감사가 들이닥쳤다. 이곳에서의 주 검사는 "해외 밀반출"과 관련된 것이었다. 관세청은 송금, 영수, 환전 내역 등의 외환 자료와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입수한 거래 정보 등을 분석하여 우범성 확인했다. 관세청의 조사도 거의 3주를 받았다. 추징된 세금은 약 300억 원이었고, 기업주인 허방진 회장은 검찰에 고발되었다. 검찰 조사는 약 5개월 동안 이루어졌다. 천 사장은 말할 것도 없고 오 상무도 각종 증빙자료를 만든다고 본연의 업무는 뒷전이었다. 이해 여름과 가을을 이렇게 태풍 속에서 보냈다. 허 회장은 법인과 별도로 개인적으로도 약 500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그러는 사이 회사의 자금 사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자재에 대한 구매 대금 지급의 지연 기간이 자꾸만 늘어났다. 주자재에 대한 대금은 무려 7개월 이상 밀렸다. 부자재 구매대금도 어느덧 3개월 혹은 그 이상 밀려있는 상태가 되었다. 협력업체들의 원성으로 회사는 계속 시끄러웠다. 자재 대금을 주지 못하니 당연히 자재 공급을 중단하는 협력업체들이 늘어나면서 생산은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되었고, 제 날짜에 납품을 못하는 사태로 발전해 나갔다. 오 상무가 담당하고 있는 구매 부문 직원들은 스스로 구매가 아니고 구걸 부문 직원이라고 자조 섞인 말을 주고받았다. 긴급한 필수 자재를 가져오기 위해서 부문 직원들은 협력업체를 수시로 들락거렸다. 구매자가 오히려 을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걸이나 읍소도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서는 아예 통하지 않았다. 

 

물론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직원들에 대한 채불 임금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역시 국세청과 관세청의 조사 전에는 평균 2개월 정도 지연되었었는데, 평균 4개월 이상을 못주는 상황이 되었다. 생산직을 제외한 사무직은 더 체불되었다. 그해 겨울이 되면서 임원들에 대한 급여 지연은 9개월 이상이 되었다. 허 회장은 노동청에 고발되었고, 수시로 들어오라고 통보가 왔다. 오 상무가 허 회장을 대신하여 고발한 직원들을 상대하기 위해 수시로 노동청을 들락거리며 변명을 하였지만, 결국 허 회장은 또다시 검찰에 불려다가 기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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