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40

생각나는 숫자 인생

올해는 2023년이다. 새천년이 왔다고 환호성을 지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때로부터 벌써 23년이 흘렀다. 천을 두 번이나 지난 그 이천을 빼고도 스물셋~ 이렇게 숫자를 적으면 1년이 23번이나 지났으니, 시간이 빠르다는 것을 다시 실감하게 된다. 23년 전인 2000년에 난 종합기획부 차장으로 있으면서 국회출입을 열심히 했다. 은행생활 중 아마 그때가 나의 황금시대이었던 것 같다. 윗사람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며 생활한 시절이었다. 그 후 2002. 1월 여의도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았으니 은행에서 비교적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의 승진은 없었다. 은행 생활은 행원 4.5년, 대리 8.5년, 차장 7년, 지점장 9.5년으로 도합 29.5년의 청년과 중년의 시절을 보냈..

나의 이야기 2023.02.12

묵향에 젖어서

집사람은 나의 방을 청소할 때마다 투덜거린다. " 이 방이 제일 지저분해. 이 걸레 좀 봐봐. 아무리 닦아도 닦아도 시커먼 것이 묻어있어~" 거의 매일 붓을 잡고 글씨를 쓰기 때문에, 매일 먹을 갈지 않아도 방 이곳저곳으로 먹물이 날아다닌다고 볼 수 있으므로 다른 곳에 비하여 더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집사람은 청소를 할 때마다 불평을 섞어 말하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 또한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래서 수일 전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 우리 할머니 같으면 당신과 반대로 말했을 거야. 옛날에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방을 매일 청소하면서 걸레가 너무 뽀얗다면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지. '서방님~ 요즘 글공부를 너무 등한시하는 것은 아닌지요? 글씨도 별로 쓰지 않고 저렇게 붓을 팽개쳐 두어서야 되겠..

나의 이야기 2023.01.08

베로에 대한 추억

"우리도 강아지 한 마리 키워볼까?" 집사람이 은근히 나의 의중을 떠본다. "NO"라는 대답이 돌아올 줄 알면서 동물과 관련된 TV 프로그램을 보고 난 후엔 한 번씩 툭툭 던진다. 언제부터인지 TV를 켜면 동물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무척 많다. "TV 동물농장", "개는 훌륭하다"를 비롯하여 반려동물 관련 프로그램이 많은 탓인지 동물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했다. 불과 10여 년 전과 비교해 볼 때 엄청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이제는 동물을 함께 지내며 돌봐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음은 물론이고, 동물을 마치 자식처럼 보살피는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마치 자기 아들이나 딸 혹은 동생으로 여기는 것을 보며 이렇게까지 세상이 변했다는 것에 거부감도 든다. 어느 경우는 부모..

나의 이야기 2022.12.26

버킷리스트 추가

제일 마지막 달에서 거리를 보니 낙엽들이 열한 달을 쓸어버리고 사라진 풍경이다. 나무에 어린잎으로 매달려 초록으로 살다가 대부분 고운 빛깔을 보인 후 뒤처리를 남긴 채 가버린다. 잎 하나 남지 않은 앙상한 가지가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나무와 나뭇잎은 한동안 붙어살다 이렇게 헤어졌다. 인간들도 마찬가지다. 정이란 무엇이고 인연의 끝에는 무엇이 남는 것일까? 찬 바람이 얼굴을 스치니 그 냉기가 뼛속으로 스미며 어린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 얼굴이 떠오른다. 하루라도 안 보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붙어 다녔었는데, 성년이 된 이후 점점 소원해지더니 연락도 끊고 산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친구의 모습이 앙상한 가지 사이로 들락거린다. 겨울로 접어들면 지난 간 모든 것들이 그저 오랜 이야기가 되고 시가 된..

나의 이야기 2022.12.14

서예 횡설수설(5)

4. 서예와 나 좋은 글씨를 쓰려면 많이 써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다. 서예의 대가로 알려진 사람치고 엄청나게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서예와 관련 없는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왕희지나 추사, 한석봉 같은 인물들이 얼마나 글씨에 매진하였는지는 각종 기록에서 알 수 있다. 한 예로 추사 선생은 벼루 10개를 구멍냈고, 붓 천 자루를 몽당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타고난 재능도 있어야 하지만, 엄청난 노력없이 좋은 글씨를 쓸 수는 없다고 본다. 다음으로 많이 읽어야 한다. 서예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지 않으면 발전에 한계가 있다. 그 외 많이 보아야 한다. 다행인지 우리나라엔 서예와 관련하여 각종 전시회가 있다. 그런 곳에 가서 많이 보아야 한다. 서울에서는 인사동에 가면 거의 매일 미술관이나 ..

나의 이야기 2022.11.13

서예 횡설수설(4)

(4) 行書(행서) 행서는 해서와 초서의 중간적인 서체로 해서를 좀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글자를 쓰기 위해 등장했다. 해서에서 여러가지 종류를 말한 것처럼 행서의 종류도 다양하다. 행서의 종류로는 행압서(行押書)·진행(眞行)·행해(行楷)·초행(草行)·행초(行草)·소행초(小行草)·반초행서(半草行書)·선서(扇書) 등이 있다. 행압서란 행서의 초기 명칭이며, 진행은 진서에 가깝게 하되 흘린 것으로 해행(楷行) 또는 행해라고도 한다. 행해는 해서이면서 행서에 가까운 것을 말하며, 초행은 초서에 가까운 행서로 행초라고도 한다. 소행초는 글자가 작은 행초이며, 반초행서는 초도 아니고 행도 아닌 중간적 서체이며 선서 역시 반초행서식의 서체이다. 이와 같이 행서는 해서·초서와 함께 쓰기도 하며 나아가 해·행·초 3체를..

나의 이야기 2022.10.30

서예 횡설수설(3)

3. 서체 이야기 서예에 있어서 문자는 대상이며, 서체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서예에 발을 담그고 있거나, 담가보았던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지만, 한문서예의 서체로는 크게 5가지가 있다. 즉, 五體(오체)라는 것으로 만들어진 순서대로 나열을 하면 전서(篆書 ), 예서(隸書),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이다. 이에 대하여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을 비롯하여 학자들의 주장을 일일이 옮긴다면 자루해질 뿐만 아니라 쉽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간단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이하 서체에 대하여 인터넷, 백과사전 등을 참조하였다. (1) 篆書(전서) 먼저 전서는 한자의 고대문자, 즉 갑골문자를 토대로 한 글자로 대전(大篆)과 소전(小篆)을 아울러 칭한다. 대전은 주나라 선왕(기원전 827~782 재..

나의 이야기 2022.10.23

입꼬리를 올리며

"세움에 대한 단상"이라는 나의 제 2 문집을 이러저러한 사람들에게 보내준 후, 내가 들은 칭찬은 북한산보다 더 높다. 책을 받아 본 친구나 지인들이 보내준 문자 혹은 전화는 나의 입꼬리를 사정없이 올라가게 했다. "제남 친구~ 친구가 이렇게 글에 소질이 있는지 몰랐네~ 정말 전율을 느끼면서 잘 읽었어~" "지하철에서 작가님이 보내준 책을 읽다가 그만 내려야 할 곳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재미있게 쓰신 것입니까?" "너무 팍팍 와 닿는 글들이 많아 감사 표시를 드리지 않을 수 없구려." 대개 이러한 내용들이지만, 나를 아주 오글거리게 하는 문자나 통화도 있다. "소설 '바가지 꿈'은 창작의 진수를 보여주는군~ 노벨 문학상 감이네~" "우리 박 작가의 글은 너무 재미있어서 눈도 아픈 내가 한 번에..

나의 이야기 2022.10.09

파랑새는 가까이에

시계는 자정을 지나면서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어제 피곤한 탓인지 일찍 잠이 들었다가 벨 소리에 놀라 눈을 뜬 시각이다. 거실엔 불이 켜져 있고, 벨 소리가 나던 거실 탁자 위엔 마누라의 핸드폰이 얌전히 놓여있다. 그런데 마누라가 보이지 않는다. 집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아도 없다. 베란다에도 없고, 욕실에도 없다. 실없는 사람처럼 어디에 있냐고 불러보며 이불도 들춰본다. 마누라의 핸드폰이 이곳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전화를 걸어본다. 집에 없는 사람이 받을리 없다. 여지없이 귀에 익은 벨 소리만 울릴 뿐이다. 이 늦은 시간에 마누라는 어디를 간 것일까? 언제나 끼고 다니는 핸드폰을 두고 말이다.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집의 여기저기를 왔다갔다하다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

나의 이야기 2022.09.29

서예 횡설수설(2)

2. 서예의 본질 (1) 동양의 보석 중국의 노신 선생이 말하길 "서예는 동양의 보석이다." "그것은 시는 아니지만 시의 운치가 있고, 그림은 아니지만 그림의 아름다움이 있고, 춤은 아니지만 춤의 리듬이 있고, 노래는 아니지만 노래의 멜로디가 있다."라고 하였다. 이 말속에 서예의 본질이 모두 들어가 있다고 본다. 서예에는 시의 운치, 그림의 아름다움, 춤의 리듬, 노래의 멜로디가 있다는 것이다. 詩(시)에 노래가 있고 그림이 있는 것처럼, 서예도 비슷하다. 書藝(서예) 속엔 詩(시), 畵(화), 舞(무), 歌(가)가 있다. 이런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예라고 하면 일단 긍정적인 생각이 들며, 서예가도 시인처럼 좋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좀 더 확대해서 말한다면 서예에 무관심한 사람은 있어도 서예를 사랑..

나의 이야기 2022.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