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능력의 차이와 운명

헤스톤 2023. 11. 24. 03:19

 

 

한 때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띄어쓰기는 물론이고 맞춤법에 맞지 않는 글자를 보면, 그렇게 글씨를 쓴 사람이 우습게 보였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오는 카톡이나 문자메시지를 보고 있노라면 맞춤법을 엉망으로 쓴 경우를 자주 본다. 그런 글들은 지금도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물론 남의 글을 퍼 나른 글보다는 관심을 갖고 읽게 되지만, 그 사람이 쓴 내용에 앞서 그의 수준을 낮게 평가하였다. 당연히 신세대의 줄임말이나 재미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는 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즉, 어떤 단어를 선택하여 무슨 내용의 글을 어떻게 잘 썼느냐를 판단하기에 앞서 맞춤법에 맞지 않는 글을 읽노라면 피자를 김칫국물에 찍어먹는 기분이다. 맞춤법뿐만 아니라 오자나 탈자를 보내는 사람에 대하여도 수준 이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람이 아무리 많이 배워 박사학위를 여러 개 가지고 있고, 일류 학교 출신이라고 해도 우습게 보였다. 직업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교수나 의사, 판사 혹은 고위직 공무원 출신이라고 할지라도 수준 미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조용히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글을 쓰면서 수시로 오자나 탈자는 물론이고, 맞춤법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다른 것도 엉망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사람 자체를 그 한 가지로 재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글 없이 남의 글이나 퍼 나르는 사람도 우습게 보지 말고 그냥 그대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오늘도 수없이 카톡에 문자가 들어온다. 여러 단톡방에서 들어오는 글들이다. 그중에는 유익한 글들도 상당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도 많다. 특히 이미 다른 이가 보낸 글을 이중삼중으로 받아보는 경우도 많다. 즉, 남의 글을 그대로 퍼 나르는 것들로 일종의 공해이다. 되도록이면 자신이 쓴 글을 보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지만, 각도를 달리하여 생각해 보면 그런 글들도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우습게 보아서는 안된다. 어느 사람이 띄어쓰기나 맞춤법에 약하다면 그가 단지 그 방면으로만 약할 뿐, 다른 것도 약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즉, 맞춤법에 맞지 않는 글자를 쓰는 사람이라도 단지 그 방면으로만 부족할 뿐, 다른 방면에서는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각자 다른 재능을 보유하고 있다.  

 

 

 

제목도 생각나지 않고, 지은이도 생각나지 않지만, 오래전에 읽었던 글로 어렴풋이 기억나는 내용 하나를 써 본다.

모두가 다 아는 것처럼 토끼는 달리기를 잘하고, 새는 날기를 잘하며, 두더지는 땅파기를 잘한다. 따라서 이 셋 중에 달리기 시합을 하면 당연히 토끼가 제일 잘할 것이다. 땅파기 시합을 하면 두더지가 제일 잘할 것이고, 날기 시합을 하면 토끼나 두더지는 1m도 날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간혹 보면 사회는 달리기만을 강요하며 토끼 같은 사람만 높게 평가하는 경우도 있고, 날기만을 강요하여 토끼나 두더지 같은 사람은 아예 저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마다 다 개성이 있고, 나름대로의 능력이 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두더지 같은 사람에게는 땅 파기를 시켜야지 날기나 달리기를 시키면 안 된다. 토끼 같은 사람에게 달리기를 시키면 잘할 텐데, 날기를 시켜놓고는 못한다고 구박하고, 왕따를 시키는 것은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지 못한 자의 잘못이라고 본다.   

 

나의 은행원 생활은 행원 4.5년, 대리 8년, 차장 7.5년, 지점장 9년인데 그중 지점장 시절이 생각난다. 나 같은 경우 예를 들어 오케스트라에 비유하면 현악기를 다루는데, 출중한 능력을 가졌고, 그 외 타악기나 피아노 등도 잘 다루었지만, 금관악기엔 소질이 없었다. 특히 금관악기 중 트럼펫을 부는 것은 힘들었다. 그런데 나로 하여금 트럼펫만 계속 불게 하고는 실적이 미미하다고 고과를 밟는 바람에 지점장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은행 지점장의 역할은 영업이 거의 60% 이상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솔직히 난 내가 생각해도 영업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만약 기획이나 조정 능력이 탁월한 나로 하여금 본부 부서장 혹은 그 위의 다른 역할, 더 나아가 지휘자 역할을 맡겼다면 조직이나 사회에 엄청난 기여를 했을 것이다. 물론 나의 일방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편 생각하면 난 그래도 나은 편이다. 솔직히 이 사회에서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라진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시골에서 살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면 당시 머리 좋고, 공부 잘하던 동네 형이 있었는데, 집안 형편 등으로 중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하고, 농사일만 하다가 결국 존재가치를 잃어버렸다. 그가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가 만약 뒷받침만 제대로 받았다면 대학교도 다니고, 고시에도 합격하고, 나라의 큰 기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아버지의 강요로 적성에도 맞지 않고 소질도 없는 농사만 지으며 전전긍긍하다가 사라졌다. 어찌 보면 흙수저로 태어난 그의 운명이다. 

 

사람마다 각각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능력이 무엇인지 모르며 사는 이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또 가지고 있는 능력을 알면서도 여건이나 환경이 되지 않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그 사람의 운명일지 모른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능력을 잘 살리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하며 사는 것은 큰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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