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어디로 갔을까?

헤스톤 2023. 12. 23. 20:14

 

 

없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濟男學校(제남학교) 인장이 안 보인다. 그 인장은 언제나 책장 아래에 붙어있는 서랍에 놓아두었었다. 그런데 그곳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없다.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올 때 매우 중요한 귀중품이라고 종이에 잘 싸서 별도의 서류 가방에 따로 담아 놓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서류 가방들을 모두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찾을 수가 없다. 잘 보관한다고 별도로 취급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아무리 온 집안을 뒤져보아도 보이질 않는다. 누가 종이뭉치 쓰레기라고 버렸는지 모른다. 내가 지금 무슨 착각 속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잘못이다. 나의 큰 잘못이다. 

이 도장은 어차피 내가 주인도 아니기 때문에 濟原初等學校(제원초등학교)에 주려고 마음먹었었는데, 마음만 먹다가 이렇게 분실하고 말았다. "제남학교"는 "제원초등학교"의 전신이다. 제남학교의 설립자는 나의 고조부 朴恒來(박항래) 공이다.

 

 

 

고조부께서는 후학양성에 힘썼다. 종 2품 벼슬을 하다가 나라가 일본으로 넘어가는 을사보호조약이 있는 해 금산 제원으로 내려왔다. 당시 나이 만으로 52세이었다. 아직 더 일할 나이임에도 조정의 더러운 꼴 보기 싫었던 것이 한 원인이었으리라. 위의 사진에 있는 것처럼 1917년 4월 10일 개교를 하여 아이들을 가르쳤다. 당시 제원면과 인근의 아이들은 복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사립 제남학교는 공립 제원초등학교가 되었다. 지난 2017년 4월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하였다. 내가 어렸을 때 기억으로 당시 동네에서 존경을 받는 노인들 중 많은 이가 고조부의 문하생으로 큰 자부심을 갖고 계심을 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 귀중한 인장을 난 제대로 간수를 하지 못했으니, 난 죄인이로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고향의 초등학교를 생각하다 보니 어린 시절 가가대소하던 이들의 모습이 몇몇 떠오른다. 똑똑하고 공부를 잘하여 반장도 계속하던 3~4년 선배 되는 분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는 집안 형편상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자주 우리 집에 놉으로 와서 품삯을 받으며 일하던 기억이 난다. 우리 집이 제원을 떠난 이후 그를 만나본 적은 없다.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 공부를 계속 이어가게 했다면 아마 사회에 큰 동량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제원 새동네의 앞집에 살던 명순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단편소설인 "바가지 꿈"에 나오는 명순이다. 이젠 거의 60년 전의 일이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어떻게 되었을까?

 

그 후 제원면사무소 근처로 이사 온 후 그 인근에 살던 "김예순"이라고 나보다 4살 더 먹은 그녀도 참 아까운 사람이다. 동네에서 총명하기로 소문이 났었고, 공부도 매우 잘하였다. 그래도 그 집은 집 규모 등으로 보아 웬만큼 살았는데, 여자를 공부시켜 봐야 소용없다고 그녀의 아버지가 진학을 반대하였다. 그래도 울고불고 난리를 펴서 읍내에 있는 중학교엔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은 하지 못했다. 중학교에서도 성적은 탁월하였지만, 집안 반대로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성적이 그렇게 우수함에도 진학하지 못하게 막았던 부모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진학하지 못하고 우울하게 지내는 어느 날 내가 위로한답시고 몇 마디 건넸더니 다음 해엔 어떻게 해서라도 꼭 고등학교에 가겠다는 말을 하였다. 하지만 결국 그 누이는 갈 수 없었다. 그리고 수년이 흐른 후 그녀는 동네의 누구와 결혼을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고, 또 수년이 흐른 후 그녀의 남편이 그녀의 지병 관리를 방해함으로써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이 정녕 그녀의 운명이었을까?          

 

 

그나저나 "濟南學校(제남학교)" 인장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濟南(제남)은 나의 號이기도 하다. 이를 찾는 것은 골프 운동 시 잘 못 쳐서 사라진 공을 찾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 나는 많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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