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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을 밟으며

낙엽을 밟으며 서러워마라 서러워마라 밟히는 것이 어디 너뿐이더냐 밟힌다고 서러워마라 밟히면서 모두들 그렇게 살고 죽는다 나라를 세워도 밟히고 배불리 먹게 해 줘도 밟히고 국민을 주인으로 해줘도 밟히고 부자한테 돈 거둬도 밟히고 가난한 사람에게 돈줘도 밟히고 죽으면 왜 빨리 죽었냐고 밟히고 살아 있으면 왜 빨리 안 죽냐고 밟힌다 이렇게 저렇게 밟히고 밟히고 밟히고 또 밟히는 것이 자연이로다 그러니 서러워마라 결국엔 밟는 사람도 낙엽이 될테니

나의 시 문장 2021.11.09

시송개상(視松開想)

獨立門(독립문) 현판의 글씨가 매국노 이완용의 작품이라는 말이 있다. 정말 그의 글씨라면 당장 교체가 마땅하겠지만, 구한말 독립운동가인 동농 김가진(金嘉鎭) 선생의 글씨라는 주장도 있는 등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닌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이완용이 書藝(서예)에 능해 조선 후기의 명필가로 이름이 높았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행서와 초서에 뛰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글씨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없다. 글씨라고 하는 것은 잘 썼다고 무조건 좋은 글씨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글씨를 얼마나 잘 썼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글쓴이의 인품이나 평판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즉, 작품 자체의 가치보다 글씨를 쓴 사람 자체가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탓으로 수집가들도 이완용의 글씨에 높은..

나의 이야기 2021.10.16

小紅花(작고 빨간 꽃)

작고 빨간 꽃 조용한 숲 속 잡초들의 자리다툼이 심한 곳에서 작은 꽃 하나가 고개를 간신히 내밀더니 바람 소리에 놀라 모습을 감춘다 억센 숨 고르는 산 중턱 더 이상 자라지 않는 키를 원망하며 파란 풀 속에서 빨갛게 숨을 죽여 구름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낙화를 독촉함에 서러움이 크지만 누구를 원망하랴 이렇게라도 피었음에 고개 숙이며 다가올 이별에 눈이 시리지만 좀 더 버티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계절 지나가는 슬픔이 묻어난다 七言節句 漢詩(한시)로도 써 보았습니다. 小 紅 花 紅花小笑中雜草(홍화소소중잡초) 苦育險生着山腰(고육험생착산요) 驚風姿隱待雲通(경풍자은대운통) 季去哀感非落表(계거애감비락표) 빨간 꽃이 잡초들 사이에서 조그맣게 핀 것을 보니 힘들게 자라 온 험난한 삶이 산 허리에 붙어 있구나 비람에 놀라 ..

나의 시 문장 2021.09.17

엉터리 세상

아무리 생각해도 엉터리들이 너무 많다. 엉터리가 마치 진실인 것처럼 가면을 쓰고, 무지한 사람들은 그대로 순응하며 속는다. 더 나아가 그 엉터리를 진실이라고 선전하며 착한 백성으로 살기도 한다. 코로나에 대한 대응방식을 봐도 그렇다.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무서운 역병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대책이라는 것들을 생각없이 받아들이기에는 웃기는 것들이 너무 많다. 최근 오후 6시까지는 4명이 만나서 밥 먹는 것을 허용하고, 6시가 넘으면 2명으로 제한한 것도 정말 난센스 중의 난센스이다. 코로나가 6시까지는 4명까지 봐주고, 6시 넘으면 2명까지만 봐준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소가 웃을 정책이다. 2명이나 4명이라는 숫자도 그렇지만, 저녁 6시가 넘으면 전파속도가 2배로 빨라진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

나의 이야기 2021.08.30

손해가 편하다

나는 얼마 전에 5년 이상 타고 다니던 차를 팔았다. 요즘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차를 이용하지 않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그에 따라 아파트 주차장에 맥없이 세워놓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때는 일주일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괜히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과 더불어 차를 보유함에 따른 비용(자동차세, 보험료, 주차료 등)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 없는 불편이 차를 가지고 있음에 따른 비용 및 번거로움보다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삶의 역설이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날아오르는 연줄을 끊으면 연이 더 높이 날 줄 알았는데, 그 연은 땅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라거나 "철조망을 없애면 가축들이 더 자유롭게 살 줄 알았는데, 사나운 짐승에게 잡아먹히고 말았..

나의 이야기 2021.08.16

부질없는 인생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매년 그렇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 내 생일을 전후로 무덥지 않은 날이 없었다. 비가 시원하게 내렸던 경우도 별로 없다. 여름 중에서도 여름이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태양은 이글거리고 대지는 벌겋게 달아오른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태어난 날을 생각하니 무엇보다 우선 어머니가 생각난다. 이 삼복더위에 어머니는 얼마나 고생했을까. 그래도 딸을 낳은 후 아들을 낳아서 어깨를 스스로 조금은 폈겠지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들을 형편의 집이 아니었다. 가난한 살림에 시부모나 시동생 등 돌볼 사람만 많고 돌봐줄 사람은 없었다. 당신 스스로 땀띠로 고생하는 갓난아기를 위해 밤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그 어머니가 아흔 한 살이다. 최근 들어 귀도 잘 안 들리고, 무..

나의 이야기 2021.08.06

소심한 복수

회의실에 어떤 젊은 여자가 앉아 있기에, 누구냐고 직원에게 물어보니 오늘 면접 보러 온 지원자라고 한다. 회사는 며칠 전부터 자금 및 경리를 담당할 직원을 구한다고 하더니 그와 관련하여 면접을 보러 온 구직자였다. 그런데 회의실에 앉아 있는 그녀를 얼핏 보니 어디서 본 얼굴이다. 아무리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분명 어디서 본 것이 확실한데, 기억 회로를 열심히 가동시켜도 잡히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내 기억에 상당히 안 좋은 인상으로 박혀있는 사람이다. 그러다가 퇴근할 무렵 갑자기 떠올랐다. "그래! 맞아! 뒤로 묶은 머리!" 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뒤로 묶은 모습이 떠올랐다. 지하철에서 사람이 내리기도 전에 달려가서 자리를 차지하던 "..

나의 이야기 2021.07.22

삐빅인생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동 입구 현관문을 열려고 카드를 대면 "삐빅"이라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린다. 왜 그런 소리가 나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처음엔 그 소리에 거부감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 소리를 자주 듣다 보니 이젠 원하는 대로 통과해도 좋다는 신호로 인식된다. 조금 더 비약하면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이순(耳順)의 소리로 들리며 "네가 가고 싶은 대로 가라"거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도 괜찮다"는 소리로 여겨진다. 최근 나는 "어르신 교통카드"를 받았다. 주민센터에서 카드를 받으러 오라고 통지를 받았을 때만 해도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막상 카드를 받고 보니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우선 그냥 일반 교통카드가 아니고 "어르신"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 2021.06.30

냉담을 풀면서

냉담을 풀면서 고통없이 하느님을 볼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느님 보기 힘들다고 우기며 발길을 뚝 끊고 지냈더니 성당 가는 길이 잡초로 우거져 보여도 보이지 않았다 수없이 바뀌는 계절 속에서 십자고상을 보고도 못 본 척 기도서와 묵주를 서랍 속에 가둬두고 세심의 시간을 묻어둔 지 몇 해던가 하얗게 보이는 머릿속을 피 흘리며 문신으로 채우던 날 젊어졌다고 다시 보고 또 보며 고통없이 젊어질 수 없음을 안 그날 영세받을 때의 마음가짐으로 십자가 앞에 무릎 꿇었다 고통없이 하느님을 볼 수는 없겠지만 그 이상으로 기쁨과 영광 있기에 사랑의 모습으로 살지 못하는 바보보다 더 큰 바보는 없기에 굳게 닫아놓았던 빗장을 열고 당신의 모습으로 살리라고 다짐하며 두손을 가지런하게 모은다

나의 시 문장 2021.06.18

잠 못 이루는 밤

꿈속을 헤매는 중에 고기 굽는 냄새가 난다.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깊은 잠과 얕은 잠을 반복하다가 잠을 깼다. 도대체 얼마나 잤는지 분간도 되지 않으며, 내 몸이 침대에 있다는 것만 알아차릴 정도이었다. 절반만 깬 상태에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가 내 나이보다 더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올렸다. 시계의 시침은 2자를 가리키고 있다. "아니, 이 밤중에 뭐 하는 거야?" "깼어? 미안해요~ 저혈당으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마누라가 새벽 2시에 고기를 먹고 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마누라가 당뇨로 고생을 한지는 어느덧 30년이 훌쩍 넘었고, 이제는 무엇으로도 조절이 되지 않는다. 한때는 약이나 인슐린 주사로 조절이 가능했었는데 말이다. 무엇보다 혈당 수치가 춤을 춘다...

나의 이야기 2021.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