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부질없는 인생

헤스톤 2021. 8. 6. 09:00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매년 그렇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 내 생일을 전후로 무덥지 않은 날이 없었다. 비가 시원하게 내렸던 경우도 별로 없다. 여름 중에서도 여름이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태양은 이글거리고 대지는 벌겋게 달아오른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태어난 날을 생각하니 무엇보다 우선 어머니가 생각난다. 이 삼복더위에 어머니는 얼마나 고생했을까. 그래도 딸을 낳은 후 아들을 낳아서 어깨를 스스로 조금은 폈겠지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들을 형편의 집이 아니었다. 가난한 살림에 시부모나 시동생 등 돌볼 사람만 많고 돌봐줄 사람은 없었다. 당신 스스로 땀띠로 고생하는 갓난아기를 위해 밤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그 어머니가 아흔 한 살이다. 최근 들어 귀도 잘 안 들리고, 무릎도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속이 안 좋아 무엇을 먹기만 하면 "끄억, 끄어억"하며 힘들어했다. 매일 아프다는 소리를 하며 힘들어했기에 건강하셨던 아버지보다 일찍 가실 줄 알았다. 어린 내가 봐도 병원이나 약과 거리가 먼 아버지와는 건강지수에서 큰 차이가 났다. 하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벌써 14년, 어머니는 지금 아흔 한 살이다. 

 

오늘 역시 무척 덥다. 특히 코와 입을 가린 마스크로 더 덥게 느껴지는 여름이다. 솔직히 사람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면서 살고 있는 세상, 이게 어디 사람사는 세상인가. 괜히 짜증이 나고, 불쾌지수가 올라가곤 한다. 그래도 여름을 보내기가 싫다. 낙엽 떨어지는 계절은 지금의 내 나이를 닮은 것 같아 막상 만나면 어색해진다. 아무리 짜증 나도 여름은 역시 젊음의 계절이다. 그냥 이대로 시간을 멈출 수는 없는 것일까.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볼 때 나는 분명 성공하지 못한 삶이다. 물론 그렇다고 실패한 삶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그냥 그저 그렇게 살았을 뿐이다.

김삿갓의 詩(시) 중에 아래와 같은 글이 있다. 

"萬事皆有定(만사개유정) 浮生空自忙(부생공자망)"

"세상만사 모두 정해져 있는데, 부질없는 인생은 바쁘기만 하구나"

지나고 보니 지금까지의 삶이 모두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이렇다 하게 사회적 지위를 가졌던 것도 아니고, 넉넉한 재물을 가졌던 적도 없고, 어디 내놓을 만한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하게 살아온 삶이다. 어찌 보면 고생만 많이 하고, 합당한 대우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면서 손해만 보며 그저 착하게만 살았다.

하지만 솔직히 제대로 평가를 받으면서 사는 삶이 얼마나 될까? 결국 선은 악을 이기고, 정의는 불의를 이긴다고 하지만, 언제나 이 진리가 통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불합리가 합리를 이기는 경우도 많고, 사기나 술수가 眞(진)과 善(선)을 덮어버리는 경우도 수두룩할 것이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으로 능력이나 업적에 비해 과소평가받은 이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반대로 진실과 다르게 과대평가받은 이들도 많을 것이다.

어쩌면 운명이란 것이 미리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성삼문은 충신으로 평가를 받고, 신숙주는 변절자로 역사에 기록된 것이나, 이순신은 나라를 살린 애국자로 원균은 무능과 부패의 인물로 그려진 것도 어쩌면 운명일지 모른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그려본다. 젊은 시절에 할 수 있었던 일을 지금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이제 와서 다시 국어, 영어, 수학 공부를 할 수는 없다. 시를 쓰고, 서예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그나마 좋은 선택이다. 누가 어떤 평가를 하든 말든 그냥 내가 가야할 길을 천천히 걸어가면 된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치고 귀한 대접을 받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좀 더 욕심을 내서 자기가 이룩한 것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알다시피 세상은 녹록지 않다. 권력과 부, 그리고 명예도 그렇지만 업적이라는 것도 그렇다. 아무리 높은 평가를 받고 싶고, 권력과 부를 갖고 싶어도 그 소원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다.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 것들은 이제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남이 알아주건 말건 좀 더 착한 일을 하면서 그냥 내 갈길을 가면 그만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할 것도 없다. 오래 산다고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반대로 짧게 산다고 큰 업적을 못 이룰 것도 없다. 그러면서 또 드는 생각은 다 부질없다는 것이다. 부질없는 인생,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이슬처럼 살다가 바람처럼 그렇게 가는 것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집 앞에 있는 대나무 숲길을 지나치는데, 대나무에게 "너나 나나 사는 게 별 차이가 없구나"하면서 말을 건네곤 한다. 오늘도 하루 종일 서 있는 너나 돌아다닌 나나 무슨 차이가 있냐고 하면서 대나무 잎을 툭툭 건드리니 팔락팔락거리며 대답은 없고, 자신의 곧은 줄기와 푸른 잎만 보라며 미소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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