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삐빅인생

헤스톤 2021. 6. 30. 16:22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동 입구 현관문을 열려고 카드를 대면 "삐빅"이라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린다. 왜 그런 소리가 나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처음엔 그 소리에 거부감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 소리를 자주 듣다 보니 이젠 원하는 대로 통과해도 좋다는 신호로 인식된다. 조금 더 비약하면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이순(耳順)의 소리로 들리며 "네가 가고 싶은 대로 가라"거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도 괜찮다"는 소리로 여겨진다.

 

최근 나는 "어르신 교통카드"를 받았다. 주민센터에서 카드를 받으러 오라고 통지를 받았을 때만 해도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막상 카드를 받고 보니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우선 그냥 일반 교통카드가 아니고 "어르신"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말이 "어르신"이지, 일반적인 말로 "노인" 혹은 "늙은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젠 법적으로도 "노인" 소리를 들어야 된다는 사실에 서글픔이 밀려왔다. 정말 왜 이렇게 기분이 묘한지 모르겠다. 벌써 국가에서 인정해주는 노인이라니 정말 말도 안 된다. 비록 매일 출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직장에도 나가고 있고, 운전도 잘하고 있는데 말이다. 지공선사의 나이가 이렇게 별로 힘도 들지 않게 다가올 줄 몰랐다. 그래도 카드엔 분명히 "노인 카드"라고 쓰여 있지 않고 "어르신 카드"라고 쓰여 있다. 그러면 "노인과 어르신"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우선 인터넷에서 떠도는 몇 가지가 떠오른다. 

 

노인은 늙은 사람이고, 어르신은 존경 받는 사람이다.
노인은 몸과 마음이 자연히 늙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자신을 가꾸고 젊어지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이다.
노인은 자기 생각과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상대에게 이해와 아량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다.
노인은 대가없이 받기만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상대에게 베풀어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노인은 이제 배울 것이 없어 자기가 최고인 양 생각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언제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노인은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그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노인이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어르신이 되시겠습니까?

 

당연히 누구나 노인보다는 어르신이 되겠다고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것이 왠지 미안해진다.

그런데 웃기는 것이 이 카드로 지하철을 탈 때 나는 소리가 "삐빅"이다. 그동안 교통카드를 대면 "삑"소리를 들으며 통과했지만, 어르신 카드는 다르다.

 

최근 이 카드로 출근하는 첫날의 일은 정말 충격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따라 내가 왜 노약자석으로 갔는지 모른다. 승객들이 덜 붐비는 곳을 찾다가 그곳으로 가게 된 것 같다. 그때 앞에 앉아 있던 어떤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것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그냥 앉아 계시라고 하니 아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내 눈으로 볼 때는 그 아주머니가 나보다 더 나이가 들은 것처럼 보이는데, 그 아주머니는 왜 그랬을까? 사람들은 대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떡은 남의 떡이 커 보이지만, 글이나 글씨는 내 글이나 글씨가 더 잘 쓴 것처럼 보이듯이 자기 얼굴은 더 젊게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나저나 그 아주머니 눈에는 내가 자기보다 더 나이가 들은 노인으로 보인 모양이다. 그렇잖아도 난생처음으로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게 되어 기분이 묘한데, 노약자석의 자리까지 양보받으니 퇴물이 된 것 같아 하루 종일 심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요즘 서예를 배우고 있는 자치회관의 수강생 중에는 나보다 더 어린 사람이 없다. 어르신 카드를 처음 이용한 날의 일을 서예반에서 이야기했더니 모두들 한 마디씩 거든다. 나보다 10살이나 더 연상인 어떤 분은 자기가 워낙 젊게 보이는 탓인지 자리를 양보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하면서 자랑한다. 반면에 다른 한 분은 "박 선생처럼 어리게 보이는 젊은 사람한테 자리를 양보한 그 여자의 눈이 삔 것 같다"는 말로 나를 위로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나도 "삐빅인생"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파트 동 입구 현관문에서 듣던 소리를 이제는 지하철에서도 들으며 통과한다. 좀 더 법규를 잘 지키며 조심하면서 살라는 신호이다.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양보받을 생각 말고, 오히려 자리를 양보하고 베풀면서 살라는 소리로 들린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질없는 인생  (0) 2021.08.06
소심한 복수  (0) 2021.07.22
잠 못 이루는 밤  (0) 2021.06.07
뒷산의 둘레길을 걸으며  (0) 2021.05.18
가슴졸인 46시간  (0) 2021.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