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소심한 복수

헤스톤 2021. 7. 22. 15:44

 

회의실에 어떤 젊은 여자가 앉아 있기에, 누구냐고 직원에게 물어보니 오늘 면접 보러 온 지원자라고 한다. 회사는 며칠 전부터 자금 및 경리를 담당할 직원을 구한다고 하더니 그와 관련하여 면접을 보러 온 구직자였다. 그런데 회의실에 앉아 있는 그녀를 얼핏 보니 어디서 본 얼굴이다. 아무리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분명 어디서 본 것이 확실한데, 기억 회로를 열심히 가동시켜도 잡히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내 기억에 상당히 안 좋은 인상으로 박혀있는 사람이다.      

그러다가 퇴근할 무렵 갑자기 떠올랐다. "그래! 맞아! 뒤로 묶은 머리!" 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뒤로 묶은 모습이 떠올랐다. 지하철에서 사람이 내리기도 전에 달려가서 자리를 차지하던 "그 싸가지!"

 

전날 퇴근할 때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가 플랫폼에 도착하자마자 열차가 떠난 탓으로 줄 서는 자리의 맨 앞에서 다음 열차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조금 있으니 내 뒤로 여러 사람이 줄을 선다. 무엇보다 바로 뒤에 어떤 젊은 여자가 서 있는데, 옷차림이 너무 가볍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뒤로 묶었다. 짧고 얇은 옷으로 배꼽을 비롯하여 몸의 많은 부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그냥 본인의 멋으로 친다 해도, 더워서 땀을 흘리고 있는 와중에 자꾸만 내 뒤에 바짝 붙어 서는 것이 거슬린다. 스크린도어에 비친 모습에 눈을 두고 있을 수도 없어서 엉뚱한 곳으로 눈을 돌렸다. 

예상보다 늦게 오는 열차가 엄청 길게 느껴졌다. 지연에 대한 체감 시간은 2배 이상 된 것 같다. 기다린 시간이 긴 만큼 도착한 열차에서 내리는 사람도 많았다. 대부분의 직장인들보다 일찍 퇴근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 퇴근하면서 자리를 못 잡고 간 경우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 날은 자리잡기가 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뒤의 여자가 갑자기 더 바짝 붙는다. 그렇게 잘 아는 사이도 아니고, 설사 가까운 사이라도 약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인데, 이 여자는 왜 이러는 걸까?

그 다음이 황당했다. 그녀는 갑자기 나를 제치더니 내리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내리는 사람들이 다 내리기도 전에 말이다. 열차 안으로 그렇게 들어가서 그녀는 하나 남은 빈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이도 젊고 건강한 것 같은데,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가엽다는 생각에 앞서 괘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맨 앞에 서 있었던 나를 제치고 자리를 차지한 것도 그렇지만, 무슨 승리자처럼 앉아 있는 모습에 약간 화가 치밀었다. 예의라는 것과 거리가 먼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레이저 눈빛을 의식했는지 그녀도 힐끔 쳐다본다. 그리고는 핸드폰에 눈을 고정시켜 버린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뒤로 묶은 똥 모양 머리가 그냥 똥으로 보인다.

 

물론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이 그 여자의 모든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리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또, 지하철을 이용하다보면 이런 "싸가지"는 자주 볼 수 있다.

 

며칠 전 찢어진 청바지 사이로 무릎 부분을 길게 보여주며 지하철에 앉아 있었던 젊은 애도 "싸가지"였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무슨 빠른 음악을 듣는지 고개를 끄떡끄떡거리며 주변 사람은 아예 의식을 하지 않는 눈치였다. 왜 그렇게 다리는 꼬고 앉아서 옆에 앉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지, 한마디 하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그런데 곧 다시 그가 보이는 것이었다. 그 싸가지가 환승하기 위해 같은 역에 내려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오는 것이었다. 미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었던 나는 버튼 옆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타기 전에 "담힘" 버튼을 꾹 눌러버렸다. 더 이상 그와 한 공간에 있기 싫었다. 정말 소심한 복수이다.   

 

여하튼 전날 똥모양 머리를 한 여자와 관련하여 지하철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면접관인 회사 대표에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싸가지와 함께 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사람 구하기가 아무리 어렵다 해도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사람을 채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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