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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도 괜찮다

달력의 숫자가 커지면서 바람의 무게가 느껴진다. 산에도 찬바람이 쌓여있다. 그래도 이 계절에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 참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피기 바쁘게 떨어지곤 하지만, 그래도 한번 피워보겠다고 기어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들이 가상하다. 산 중턱까지 올랐다가 잡초들이 우거진 속에서 홀로 빨갛게 핀 조그만 꽃을 보았다. 지난번에 지었던 "작고 빨간 꽃"이라는 시를 읊조렸다. 작고 빨간 꽃 조용한 숲 속 잡초들의 자리다툼이 심한 곳에서 작은 꽃 하나가 고개를 간신히 내밀더니 바람 소리에 놀라 모습을 감춘다 억센 숨 고르는 산 중턱 더 이상 자라지 않는 키를 원망하며 파란 풀 속에서 빨갛게 숨을 죽여 구름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낙화를 독촉함에 서러움이 크지만 누구를..

나의 이야기 2021.11.19

낙엽을 밟으며

낙엽을 밟으며 서러워마라 서러워마라 밟히는 것이 어디 너뿐이더냐 밟힌다고 서러워마라 밟히면서 모두들 그렇게 살고 죽는다 나라를 세워도 밟히고 배불리 먹게 해 줘도 밟히고 국민을 주인으로 해줘도 밟히고 부자한테 돈 거둬도 밟히고 가난한 사람에게 돈줘도 밟히고 죽으면 왜 빨리 죽었냐고 밟히고 살아 있으면 왜 빨리 안 죽냐고 밟힌다 이렇게 저렇게 밟히고 밟히고 밟히고 또 밟히는 것이 자연이로다 그러니 서러워마라 결국엔 밟는 사람도 낙엽이 될테니

나의 시 문장 2021.11.09

시송개상(視松開想)

獨立門(독립문) 현판의 글씨가 매국노 이완용의 작품이라는 말이 있다. 정말 그의 글씨라면 당장 교체가 마땅하겠지만, 구한말 독립운동가인 동농 김가진(金嘉鎭) 선생의 글씨라는 주장도 있는 등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닌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이완용이 書藝(서예)에 능해 조선 후기의 명필가로 이름이 높았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행서와 초서에 뛰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글씨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없다. 글씨라고 하는 것은 잘 썼다고 무조건 좋은 글씨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글씨를 얼마나 잘 썼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글쓴이의 인품이나 평판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즉, 작품 자체의 가치보다 글씨를 쓴 사람 자체가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탓으로 수집가들도 이완용의 글씨에 높은..

나의 이야기 2021.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