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569

悲慾(비욕) - 4

4. 권력다툼(1) 입사 첫날의 언짢은 기분을 가라앉히며 하루를 정신없이 보낸 다음 날이다. 무엇보다 회사현황과 업무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기에 첫날과 비슷하게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출근하였다. 어제 구이재 구매부장이 준 최근의 구매현황과 자재 재고 현황 및 현안문제들을 대학노트에 메모하다 보니 숫자의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사실 메모하는 이유는 자신의 글씨체가 눈에 더 잘 들어오면서 기억에 오래 남기 때문이다. 오랜 은행생활에서 몸에 밴 것이다. 새로운 업무를 담당하거나 새로운 지점에 발령받으면 언제나 직접 노트에 주요 사항들을 기재하며 파악하곤 했던 습관을 살려 이 회사의 구매와 관련된 현황을 직접 작성하며 머리에 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선 연결된 자료들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숫자들이 너무 ..

장편소설 2023.04.14

갑자기 온 손님

이렇게 11년 만에 이 손님이 다시 찾아올 줄 몰랐다. 봄과 함께 찾아오는 꽃 향기도 아니면서, 11년 전 봄에 왔던 것처럼 느닷없이 이렇게 찾아올 줄 전혀 예상을 못했다. 물론 어느 정도 징조는 있었다. 일교차가 심한 날이 계속되면서 간혹 머리가 아프고, 이명현상이 심해졌으며, 시력 저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 제일 불편한 눈 검사를 위해 안과를 먼저 가볼까, 아니면 이비인후과부터 가볼까를 고만하던 중이었다. 사실 그것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의식이 혼미해지는 것을 최근 몇 차례 경험했다. 그럴 때마다 혹시 뇌졸중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면서 인터넷 정보로 누가 알려 준 STR을 해 보았다. 웃어보는 Smile, 말을 해보는 Talk, 두 팔을 올려보는 Raise를 해보니 안 되는 것은 ..

나의 이야기 2023.04.07

悲慾(비욕) - 3

3. 실망스러운 첫날 오제원 상무는 자기 방으로 가면서 처음 출근했을 때의 일을 떠올려본다. 약 6년 전의 일로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깨끗이 하고 성모님 앞에서 기도를 올렸다. 기도 말미에 본인의 이름 앞 자를 넣어 중얼거렸다. "오늘도 제발 원하는 일이 모두 이루어지게 하소서!" 평소보다 좀 일찍 일어났더니 조간신문의 사설도 다 읽을 수 있었다. 새로운 직장에 첫 출근하는 날이다. 약간은 긴장된 얼굴을 풀면서 스스로에게 다짐을 한다. "그래. 잘할 수 있어. 제원이는 무엇이든지 잘할 수 있다!"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을 침착함과 자신감으로 눌러본다. 나름대로 어느 정도 설렘을 안고 집을 일찍 나선 오제원은 업무시작 1시간 전에 도착하였더니 아무도 없다. 처음 맞이하게 되는 분위기가 어색하다. 지난 ..

장편소설 2023.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