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갑자기 온 손님

헤스톤 2023. 4. 7. 22:00

 

 

이렇게 11년 만에 이 손님이 다시 찾아올 줄 몰랐다. 봄과 함께 찾아오는 꽃 향기도 아니면서, 11년 전 봄에 왔던 것처럼 느닷없이 이렇게 찾아올 줄 전혀 예상을 못했다. 

물론 어느 정도 징조는 있었다. 일교차가 심한 날이 계속되면서 간혹 머리가 아프고, 이명현상이 심해졌으며, 시력 저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 제일 불편한 눈 검사를 위해 안과를 먼저 가볼까, 아니면 이비인후과부터 가볼까를 고만하던 중이었다.

 

사실 그것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의식이 혼미해지는 것을 최근 몇 차례 경험했다. 그럴 때마다 혹시 뇌졸중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면서 인터넷 정보로 누가 알려 준 STR을 해 보았다. 웃어보는 Smile, 말을 해보는 Talk, 두 팔을 올려보는 Raise를 해보니 안 되는 것은 없기에 큰 걱정을 내려놓곤 했다. 그렇다고 불안이 완전히 달아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이틀 전부터 왼쪽 눈으로 윙크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양치질을 한 후 물을 뱉기 전 오물거리는 것과 물을 안 새도록 가둬놓는 동작에서 불편함을 느꼈다.  순간 11년 전에 왔었던 안면마비 현상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거울을 보고 눈썹을 치켜올리니 불안하게 양쪽 모두 올라가는 것이었다. 당시 한쪽만 올라갔다면 차라리 심리적으로 더 안정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 경우 양쪽 다 올라간다는 것은 중추신경의 이상을 예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순 안면마비 이상의 다른 큰 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시 몰려왔다.

 

 

짐사람에게 말했더니 당장 종합병원으로 가보자고 한다. 역시 종합병원이라는 곳은 진찰을 받는데, 엄청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접수 후 2시간 이상 기다려서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고, 여러 가지를 간단하게 체크하더니 몇 가지를 조사해 보아야겠다는 것이다. 우선 뇌 MRI 검사를 제일 빠른 것으로 해서 당일 밤 8시 20분에 받기로 했다. 그리고 수일 후 얼굴의 말초신경 이상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근전도검사를 받기로 했다. 

 

걱정되는 마음을 안정시키며 종합병원에서 나온 이후 집 근처의 한의원에 갔다. 역시 얼굴 부위에 맞는 침은 많이 불편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11년 전에도 수개월동안 얼마나 많이 맞던 것이었던가. 어느덧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나는 침 맞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번엔 또 얼마나 오랜 기간 맞아야 될지 모른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안면마비는 조금씩 더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입을 오므려 부는 휘파람 소리를 내는 것도 힘들고, 매우 어렵게라도 윙크를 할 수 있었던 왼쪽 눈의 윙크는 아예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도 일찍 치료를 시작한 덕분인지 악화속도가 더딤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라도 내 얼굴이 버티고 있다는 것에 감사의 마음을 가졌다.

 

 

약 1주일이 지나 MRI 판독결과와 근전도 검사 결과를 들으려고 H 종합병원에 갔다. 천만다행으로 중추신경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다만 일부 구간에서 혈관이 좁아졌다는 소견을 들었다. 수년 전에 끊었던 고지혈증 약과 더불어 관련된 약을  40일치 처방받았다. 조금씩 악화되던 증상은 이제 멈춘 상태다. 이제 반환점을 돌아섰다고 본다. 꾸준히 치료하면 서서히 나아질 것이라는 소견이다.  

 

모든 결과엔 원인이 있다. 그동안 이렇게 바이러스가 침투하도록 관리를 잘 못한 탓이 크다. 나름대로 관리한다고 했지만 부족했다. 나 어렸을 적 할머니가 중풍으로 오른쪽 팔 다리가 마비되어 약 7년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불쌍한 우리 할머니가 장손자를 보살핀 탓으로 당신과 같은 상황이 되지 않도록 했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그저 이만한 상황이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도 난 한의원에 다녀왔다. 마비된 왼쪽 얼굴에 물리적 자극을 쥐야 된다고 하면서 선생님은 꼼꼼하게 최선을 다한다. 이런 의사 선생님을 만난 것도 고마운 일이다.  누구보다 제일 마음고생이 심했을 마누라도 이제 한숨을 돌리는 것 같다. 

 

갑자기 찾아온 이 손님을 나는 잘 다독거려서 빨리 보내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도록 나의 몸 관리에 좀 더 많은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입이 오른 쪽으로 약간 돌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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