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친절의 기쁨

헤스톤 2023. 7. 2. 10:17

 

 

기쁨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다. 합격이나 취직의 기쁨, 결혼의 기쁨, 임신의 기쁨, 승진의 기쁨 등등 다양하지만, 친절을 베푸는 기쁨 또한 작다고 할 수 없다.  

 

지난 목요일 서초동에 있는 회사 업무를 마치고 송천동의 자치회관으로 향했다. 자치회관에 등록한 모 강좌 시간에 맞춰서 가는 중이었다. 교대역에서 3호선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점잖게 생긴 노인 한 분이 내게로 다가온다. 어떤 중요한 자리에 갔다 오는 길인지 신사복에 넥타이도 매고 있다.

"종로 3가에 가려면 이곳에서 타는 것이 맞나요?"

"예~ 맞습니다. 이곳에서 타시면 종로 3가로 갑니다."

 

 

그런데 앞의 스크린도어에 적혀 있는 "2호선 왼쪽(<ㅡ) 서초 사당, 오른쪽(ㅡ>) 강남 잠실"이라는 표시를 보고, 다시 묻는다.

"이게 2호선인가요? 여기서 타면 사당으로 가나요?"

"아닙니다. 이 표시는 2호선으로 갈아 타실 분 중 사당 방면으로 가실 분은 왼쪽, 강남 방면으로 가실 분은 오른쪽으로 가라는 표시입니다. 종로 3가에 가시려면 이곳에서 타시는 것이 맞습니다. 최종 목적지는 어디신데요?"

"광운대역에 가는데, 종로 3가에서 갈아타면 된다고 하더군"

"예~ 맞습니다. 이거 타고 가다가 종로 3가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시면 되겠습니다."

"그렇군요. 나이가 들은 탓인지 자꾸 확인하게 되네요. 내 나이가 92라오."

나이가 아흔둘이라고 하니, 내 어머니와 비슷한 연세이다. 그 연세에 이렇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충무로에서 갈아타는데, 종로 3가는 저 내린 후 2 정거장만 더 가셨다가 내리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열차가 와서 탔는데, 빈 자리가 없다. 아무리 나이가 아흔이 넘었어도 지체 부자유자나 임산부가 아니면 자리 양보받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 다음 역인 고속터미널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는 바람에 함께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동행을 하였다. 그런데 열차가 설 때마다 무슨 역인지 자꾸만 확인을 한다. 그래서 저 내린 다음 두 정거장째 내리라고 다시 말씀드리곤 하다가, 충무로역에서 조심해서 가시라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92세라는 나이에도 저렇게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그분의 모습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무엇보다 조금이라도 친절을 베푼 나 자신의 뿌듯함으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 어르신과 헤어진 후 나는 충무로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탄 후 다시 성신여대역에서 우이신설 경전철을 탔다. 삼양사거리역에서 1번 출구쪽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이번엔 어떤 지체 부자유자가 꾸깃거리는 종이에 잘 쓴 글씨는 아니지만, 또박또박 쓴 주소를 내밀며 어떻게 가는지 어눌하게 묻는다.

"여기에 가려면 이곳으로 가는 것이 맞나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주 다니는 길에 있는 건물이라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면 잘 알지 못한다. 정성을 기울인 글씨로 "광희빌딩"이라고 한글로 적혀있다. 삼양사거리역 1번출구로 나와서 사거리 횡단보도를 지난 후 왼쪽으로 약 50M라고 쓰여있다. 빌딩은 몰라도 대충 어디쯤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예~ 맞습니다. 이 길로 쭉 가면 삼양사거리가 나옵니다."

지체 부자유자인 탓으로 걸음이 엄청 느리다. 내가 아무리 천천히 걸으려 해도 보폭을 맞추기 힘들다. 무엇보다 그 사람은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더 확신을 갖기 위함인지 뒤에서 다른 사람에게 또 주소가 적힌 그 종이를 내미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건물 이름을 아는 경우는 드물다. 종이를 보며 고개를 가로젓는 이를 볼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삼양사거리까지 가지 않고 그 전의 골목길로 접어들어서 자치회관에 가곤 하였지만, 수업시간에 늦더라도 확실하게 알려주는 것이 낫겠다 싶어 빠른 걸음으로 그곳에 그런 건물이 있는지부터 반대편에서 확인하고 돌아왔다. "광희"는 한글이 아닌 한자로 "光希"라고 적혀 있었다. 한자를 모르는 사람 같으면 아예 알지 못할 건물이었다. 그 지체부자유자는 걸음이 늦은 탓으로 아직도 사거리에 오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또 종이를 내밀고 있었다.

"저~ 제가 확인하고 왔으니, 이제 나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가고자하시는 그곳으로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예~ 알겠습니다. 姓(성)이 어떻게 되세요?" 그 사람은 왜 갑자기 성을 물어봤는지 모르겠다.

"朴(박)입니다."

"아~ 그러세요. 저도 박가입니다. 밀양 박가입니다."

같은 박가인 탓인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 사람의 보폭에 최대한 맞추려고 애쓰며 걸었다.

그렇게 그 건물에 함께 도착한 후 일 잘 보시라는 말을 하며 헤어졌다. 서초동에서 시간에 맞게 나선 탓으로 결국 수업 시간엔 약 10분 지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나 자신이 뿌듯하던지, 그날 수업에 참석 못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도움을 받는 것보다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것은 큰 기쁨이다. 다른 말로 한다면 따뜻함이다. 친절을 베푼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를 따뜻하게 하는 아름다운 마음이며, 보통 사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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