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 다이셀프(Know thyself)

헤스톤 2023. 8. 5. 15:09

 

노 다이셀프

 

 

"너 자신을 알라(Know thyself)"는 말은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유명하다. 늘 겸손한 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의미로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고 강조한 말이다.

나의 지난 과거를 돌이켜볼 때 간혹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속세에서 흔히 말하는 출세를 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겸손해야할 때, 겸손하지 못했던 탓이 크다. 물론 나를 내세워야 할 때 내세우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낮춰야 할 때 낮추지 못한 탓이 크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겸손한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지만, 쉽지는 않다.

다만, 이러저러한 사람을 만나며 반면교사로 삼는다. 

  

자치회관엔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이 있다. 취미, 건강, 노래, 악기, 외국어 등이 있는데, 가장 큰 장점은 등록비가 매우 저렴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사들은 수많은 지원자 중에서 선발된 탓인지 대부분 해당 분야에서 우수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자치회관은 시간만 허락한다면 배우고 싶은 강좌에 등록하여 자신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좋은 곳이라고 본다.

물론 등록비가 싸고 강사가 괜찮다고 해서 모든 강좌가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모집 정원에 크게 미달하여 폐지되는 강좌도 있고, 회원 사이의 다툼으로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러저러한 강좌에서 개성있는 회원들을 보며 여러 가지를 보고 느낀다. 

 

함께 배우는 회원들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총무나 그런 역할을 하는 이에게는 박수를 보내지만, 얌체족을 보면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간혹 회원들이 단합 등을 명목으로 식사를 할 때 경비 부담에서 빠지려고 하는 사람을 본다. 모임에 총무가 있어서 부담 금액을 말할 경우는 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애매한 자리에서 그 모임의 특별한 사람(신입 혹은 선생님 등)은 제외하고, 대부분 십시일반으로 알아서 부담을 하거나 누가 자진해서 전액 부담을 하는데,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는 이를 보면 마음이 씁쓸해진다. 

더 나아가 술을 좋아하여 남에게 계속 권하기도 하면서 계속 추가로 술을 시켜 식대가 예상보다 훨씬 많이 나왔음에도 자기 지갑엔 손도 대지 않는 사람을 보면 껄끄러운 가마니를 쓴 기분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반복되는 경우는 자연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배려가 반복되면 당연한 권리인 줄로 안다"는 말이 떠오른다.

 

 

오래전 IBK 은행 S지점의 차장으로 부임했을 때 D 기업체의 사장이 생각난다. 당시 그 사장은 남편과 사별하여 업체를 물려받아 경영하는 40대 여성으로 미모도 있었지만, 약간은 독한 인상이었다. 여, 수신거래에서 은행에 큰 기여를 하는 업체가 아닌 탓으로 송금 수수료를 포함한 각종 수수료 면제 대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당시 나의 전임 차장은 그 사장을 예쁘게(?) 본 탓인지 그 업체에 대한 거래에서 각종 수수료를 모두 면제해 주었다. 실제로는 면제를 해준 것이 아니고, 섭외활동비로 지원을 해준 것이었다. 수일이 지난 어느 날 이상한 지출을 발견한 나는 담당자에게 이것은 어찌 된 것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직원은 전부터 있었던 사연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규정과 원칙에 위배되서는 안된다고 직원을 나무랐다. 지점의 비용을 아낀다기보다 규정에 어긋나는 업무처리는 옳지 않다고 본 탓이다. 

 

그 다음 날 그 사장은 눈을 크게 치켜뜨고 내 자리로 오더니 수수료가 찍힌 전표를 기분 나쁘게 던지며 말하는 것이었다.

"난 송금수수료 면제대상인데, 박 차장님이 나에게 수수료를 받으라고 했다면서요?" 

"수수료 면제대상이면 전표에 수수료가 찍히는 대신 면제라고 찍힙니다."

"난 지금까지 송금수수료를 내 본 적이 없는데, 왜 박 차장이 오시고 나서 내라고 변경이 되었습니까?"

"제가 변경을 시킨 것이 아니고, 본래 D 업체는 면제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잘 보세요. 본점에 오래 있어서 업무를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前(전)의 김 차장한테 인수인계 안 받으셨나요? 똑바로 일하세요."

이 사람은 막무가내이다. 자기는 못 내겠으니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그리고 지점장이 있는 2층 응접실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조금 있으니 지점장이 나를 부른다. 지점장도 오래전부터 그 여자분과 잘 알고 지낸 사이였는지 대화를 나누며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지점장은 나를 보더니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이 업체는 향후 거래 확대가 예상되고, 은행에 대한 기여도 상승이 예상되니 특별 대우해 주라는 취지의 말이었다. 

 

우울한 하루이었다. 그런 논리라면 다른 일반 고객들도 D 업체처럼 향후 기여도 제고가 예상되니 각종 수수료를 면제해 달라고 하면 어찌할 것인가? 솔직히 형평성 측면에서도 옳지 못한 업무처리이다. 무엇보다 수년에 걸친 은행의 베풂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그 사장이 괘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려가 계속되면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더니 바로 그런 경우이었음은 물론이고, 나에 대한 무례에 대하여 기분이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베풂이나 배려는 사람과 사람사이를 따뜻하게 하는 아름다운 마음이며,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삶의 모습이다. 하지만, 배려라는 것도 정의나 형평성 보다 앞설 수는 없다고 본다. 비행기를 탈 때 이코노미석을 끊은 사람에게 비즈니스석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있겠지만, 이코노미석을 끊은 이가 비즈니스석 서비스를 당연한 것처럼 요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공자의 기분을 더럽히는 일이다. 당시 D 기업체는 이코노미석의 업체이면서 기장이나 부기장과의 친밀관계를 내세워 비즈니스석, 더 나아가 퍼스트클래스(일등석)인 것처럼 서비스를 요구한 것과 같다. 

 

 

이러한 것들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자신을 수양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은 겸손을 가슴에 살포시 담아본다. 노 다이셀프(Know thyself)라고 지금 나에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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