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直道(직도)를 바라보며

헤스톤 2023. 9. 25. 21:45

 

바지를 하나 샀다. 살 때 분명 내 허리치수에 맞게 샀고, 그 후 바지길이를 내게 맞는 길이로 줄였는데, 이상하다. 입을수록 뭔가 어색하다. 허리는 예상외로 넉넉하고, 길이는 짧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바지를 짧게 입는 것이 아무리 유행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는다. 다른 바지들과 비교하면서 제대로 길이를 잘 쟀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다. 사실 이런 착오가 바지 하나뿐이겠는가.

 

과거를 돌아볼 때 이런 경우가 허다하였다. 실제로 시행착오라는 것을 숱하게 거치며 사는 것이 인생이리라. 과거의 바름(正)이 곧 현재의 바름(正)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이런 이유 등으로 법이나 제도가 시대의 흐름에 맞게 바뀌기도 하고, 장소에 따라 적용되는 기준이 다르다고도 본다. 분명한 것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 다 맞는 것이 아니고, 자기 생각이 다 올바른 것도 아니다. 

따라서 좀 더 정확한 눈을 갖기 위해 수시로 독서나 경험을 통하여 자신을 갈고닦아야 한다. 또한 살아가면서 자신을 수시로 점검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당하다고 여기는 자신의 생각이 다른 잣대로 볼 때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좀 더 높은 곳에서 좀 더 넓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서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본다.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책을 읽고 성현들의 말씀을 새기는 것이야말로 바른 길을 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그래서 우리는 논어나 성경을 비롯하여 수많은 책을 읽는 것이리라. 

 

 

내 기억으로 2009년 봄이었다. 서울 근처의 C 골프장에서 라운딩 약속이 있었다. 티오프(tee off)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여 접수대에서 이름을 적고 로커룸(locker room)에 들어갔을 때이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니 낯이 익은 분이었다. 그 사람은  매스컴에서 자주 보던 "조경철 박사"였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부분 다 아는 사람으로 유명한 우주과학자이다. 그의 천문학에 대한 열정과 뛰어난 연구 업적은 국내외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는 것도 대부분 아는 사실이다. 또한 그는 천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그분은 옷을 다 갈아입고 잠시 쉬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도 나처럼 여유 있게 도착했던 모양이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로커룸에서는 금연 지역으로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그런 곳이 금연이라는 것은 일반 상식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곳 로커룸에 재떨이가 있는 것이었다. 사실은 재떨이가 아닌데, 꼭 재떨이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여하튼 이곳에선 흡연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당시 담배를 피울 때였기에 시간 여유도 많고 하니, 옷 갈아입고 여기서 한대 피우고 나갈까 하는 생각을 살짝 가지고 있었다. 그때 조 박사님이 담배를 꺼내 피우는 것이었다. 조금 있으니 로커를 관리하는 직원이 다가온다. 그 직원은 "조경철 박사"가 어떤 분인지 모르는 눈치다. 사실 TV에 자주 나오고 유명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아니~ 여기서 담배를 피우면 어떡합니까? "

"여기 담배 재떨이가 있어서 피워도 괜찮은 것으로 알고 그랬습니다."

"아니~ 이게 어떻게 재떨이로 보인단 말입니까? 그리고 설사 재떨이로 보여도 여기서 담배를 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미안합니다. 내 눈엔 재떨이로 보여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그 직원은 조 박사가 몇 모금 빨지 못하고 비벼 끈 담배를 비닐봉투에 담아 나가면서 투덜거린다.

"참말로 상식없는 인간이로군. 어떻게 여기서 담배를 핀단말인가~"

 

내가 옷 갈아입는 중에 일어난 일로 마침 로커룸엔 둘만 남아 있는데, 박사님은 약간 언짢은 톤으로 말씀하신다.

"이게 재떨이로 보여서 피웠는데.. 잘 못한 것은 맞지만, 상당히 인상을 쓰는군. 허~ 허~"

특유의 눈 웃음과 선한 인상으로 말씀하시는데, 들을 사람은 나밖에 없기에 조용히 대꾸하였다.

"박사님~ 신경쓰지 마세요. 제 눈에도 이것이 재떨이로 보입니다. 저도 한대 필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랬더니 박사님은 빙그레 미소 짓는다. 그로부터 약 1년 후(2010년) 박사님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정말 세상 일은 모른다. 착한 일 많이 하고 심성 고운 사람이 꼭 오래 사는 것도 아니다. 

  

사실 내 기준으로 볼 때 위의 상황은 재떨이로 착각하게 만든 골프장의 잘못이다. 담배를 핀 사람을 나무랄 것이 아니고, 왜 손님이 담배를 물었는지 그 원인부터 파악하는 자세가 아쉬웠다. 아마 모르면 몰라도 그곳에 그 물건이 있는 한 계속 유사한 일이 일어났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그곳 골프장 직원의 언행도 못마땅하다. 자신들의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면서  상식 어쩌고 하며 신경질을 내는 모습은 상당히 불쾌하였다. 우선 남에게 뭐라고 하기 전에 자신들의 잘못이 무엇인지부터 알았어야 한다고 본다. 어쩜 이것도 내가 잘 못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골프장이나 그 직원 입장에서는 아마 다를 것이라고 본다.

다만,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기준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어제도 直道(직도)를 생각하였고 오늘도 직도를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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