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명필은 붓을 가린다

헤스톤 2023. 2. 23. 07:56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말로 좋지 않은 글씨가 붓 때문이라고 억지를 쓰는 사람들에게 주로 쓰이는 말이다.  글씨를 제대로 쓸 수 있는 능력부터 갖추라는 꾸지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어 속담으로는 "A bad workman blames his tools"이다. 능력 없는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성찰하기보다는 도구 탓만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나는 최근 집 근처 자치회관의 문화 프로그램에 있는 서예에 등록을 하였다. 첫 번째 수업 날이었다. 사실 어느 곳이나 독특한 냄새가 있다. 즉, 수업분위기라는 것도 조금씩 다르고, 장소 나름의 규칙이라는 것도 있다. 여러 사람이 반갑게 맞아주어도 역시 새로 접하는 장소인 탓으로 샌드위치에 있는 김치처럼 많이 어색하다. 선생님이 지난주에 써 주었던 체본에 따라 연습한 것을 체크해 주고, 새로 체본을 써 주는 것은 다른 곳과 비슷하였다. 나는 예서체를 "史晨碑體(사신비체)"로 배우고 싶다고 하면서 가지고 있던 책과 함께 평소 쓰던 연습용 종이 2절지를 내밀었다.

그런데 몇 자를 쓰더니 약간은 불만 섞인 말을 한다. 종이가 너무 얇아서 붓을 빠르게 운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뜻대로 꼴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전의 다른 자치회관에서 사용하던 종이를 준 것인데, 아마 익숙하지 않은 화선지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글씨는 내가 보기에 괜찮았다. 나름 개성이 있고 거칠지만 멋이 깃들인 글씨이다. 글씨 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확실히 선생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체본 쓰는 것을 끝낸 선생님은 수강생들의 글씨체나 자세 등을 지도하다가 글씨를 쓰고 있는 나에게 오더니 내 붓을 위에서 잡고 시범을 몇 차례 보여준다. 다른 곳에선 듣지 못했던 붓놀림 등에 대하여 배웠다. 用筆(용필)에 대하여 새로운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러더니 내가 쓰고 있는 붓이 영 안 좋다는 식으로 말한다. 붓털이 제대로 꺾이지 않는다며 실망스러운 표정이다.

 

 

 

 

붓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으니 붓과 관련하여 안 좋은 기억들이 머리를 스친다. 현재 나는 어찌하다가 여러 자루의 붓을 갖게 되었다. 붓이 많게 된 이유는 필방에서 내가 직접 산 붓과 별도로 그동안 나를 가르친 선생들의 탓이 크다. 다니던 서예반의 수강생 초과 등으로 새로운 곳을 찾아 배우러 가기만 하면, 모두 기존에 쓰고 있는 붓을 안 좋게 말한다. 사실 그날 내가 쓰고 있던 붓도 모 교육원에 등록했을 때, 그곳 선생님한테 샀던 붓이다. 당연히 필방에서 구입하는 가격보다 많은 금액을 주고 샀다. 그리고 그 뒤 모 자치회관에서의 선생님도 붓 탓을 하면서 자신한테 붓 사기를 권유하여 또 하나 샀다. 그 외 그림 붓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번에 붓 구입을 권유받은 것은 아니지만, 오래 전의 안 좋은 기억들이 떠오르며 기분이 내려간다.

 

붓뿐만 아니고 종이도 그렇다. 내가 처음 서예를 접하던 시절 모 교육원의 선생님은 체본을 써줄 때, 연습용 종이를 주면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약간 비싼 작품용 종이를 선호했다. 그런 탓으로 그 후 체본을 받을 때, 연습용 종이가 아닌 작품용 화선지를 내밀었는데, 역시 종이가 너무 얇아 먹물이 잘 번진다며 또 안 좋다고 말한다. 예전의 모 자치회관 선생은 매우 선호하던 화선지인데 말이다.

서예 선생님들도 각각 자신의 글씨 모양만큼 연장 선호도가 가지각색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지난주에 가지고 갔던 붓이 안 좋다고 하여 집에 있는 다른 붓을 가지고 갔는데, 또 붓이 안 좋다고 한다. 한마디로 의도하는 글씨 모양을 내기에 힘든 붓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난 "명필은 붓 탓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더니, 그래도 어느 정도는 괜찮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지필묵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물론 비싸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글씨를 쓰는 사람마다 자신에게 좀 더 맞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좋은 종이일수록 번짐이 심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좋은 종이들은 대개 얇아서 적당한 번짐으로 글씨의 예술성을 높인다. 다만 사람에 따라 선호하는 종이가 다를 것이다. 

여하튼 내가 가지고 있는 붓이나 종이가 안 좋다는 소리를 들으니 심란해진다. 自慰(자위)를 하려고 산에 올라 소나무들을 한참 바라보면서 "명필은 정말 붓 탓을 하지 않을까"를 생각하다가 내려왔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을 한자로 하면 "能書不擇筆(능서불택필)"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명필들의 유명한 故事(고사) 하나가 떠오른다. 

당나라 때 서예의 달인으로서 우세남, 저수량, 안진경, 구양순 등이 있었다. 모두가 대단한 사람들이지만, 그중에서도 구양순이 조금 더 유명하다. 구양순의 서체는 솔경체라고 불리는데 힘찬 기세가 스승인 왕희지(王羲之)보다도 뛰어났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구양순이 글씨를 쓸 때 붓과 종이를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수량은 좋은 붓과 먹이 없으면 글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저수량이 우세남에게 물었다. '' 자네는 내 글씨와 구양순의 글씨 중 누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가?'' 우세남이 대답했다. '' 내 생각에는 구양순이 한 수 위인 것 같네. 왜냐하면 그는 어떤 종이에 어떤 붓을 가지고 쓰든 마음먹은 대로 쓸 수 있다고 하네. 그러니 자네처럼 붓과 종이를 가리는 사람은 아무래도 그만 못하지 않겠는가?'' 이에 저수량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는 고사이다.

 

그러나 이와 조금 다른 각도의 이야기도 있다. 만약에 書聖(서성)으로 불리고 있는 왕희지에게 좋은 붓이 없었다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난정서"는 없었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추사 선생과 관련된 이야기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 우선 추사 선생이 직접 했다는 말을 옮기면 이렇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은 어디에나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구양순이 구성궁 예천명이나 화도사비 같은 글씨를 쓸 때 정호(털의 품질이 아주 좋은 붓)가 아니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이 외에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추사가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을 동안 동생이 종이를 보내왔는데, 이런 후진 종이로 무슨 서예를 쓰라는 거냐고 편지를 보냈다는 말도 있다. 추사는 완벽주의자로 지필묵 선택이 엄청 까다로웠다고 한다. 추사의 장비빨(?)은 엄청났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는 매우 좋은 장비를 갖추고 서예를 했다는 것이다. 생전에 붓 1천여 자루를 몽당으로 만들었다는 추사 선생의 경우 '붓 탓을 하지 않는다'면서도 작품에 임할 때는 좋은 붓을 찾았다고 전해지는 만큼 글씨나 그림을 그리는데 붓의 선택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유능한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잘못된 말은 아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추사 선생의 말처럼 이 말이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주현종(周顯宗)의 "논서(論書)"에 나오는 글로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통설이라고 할 수 없다. 행서(行書)와 초서(草書)를 제외한 해서(楷書), 전서(篆書), 예서(隸書)를 쓰는 경우는 붓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붓을 가리지 않을 수 없다."라고 되어있다. 아마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서예 선생님도 붓이나 종이의 질에 대한 말을 했을 것이다. 내일엔 필방에 가서 붓 구경이나 실컷 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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