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막무가내(莫無可奈)

헤스톤 2020. 3. 6. 15:17


최근 코로나바이러스(COVID-19)와 관련하여 내가 거주하고 있는 N구의 구청으로부터 많은 메시지를

받고 있지만, 심심찮게 K구로부터도 메시지가 오고 있다. 당연히 서울에 K구라는 곳이 있는지는 알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과 반대편인 그곳에 몇 번을 가 보았는지 손으로 꼽기도 힘든 곳인데, 왜 이곳에서 

나한테 이렇게 문자를 보내곤 할까? 지금까지 살면서 그곳을 주소지로 한 적도 없고, 그 근처에서 

근무를 한 적도 없다. 아무래도 등록된 전화번호에 무슨 착오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오래 전 핸드폰 번호를 011에서 010으로 바꾸기 전에 있었던 K구쪽에서 받은 막무가내

전화들이 떠오른다. 무단주차를 한 사람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어느 일요일 집에서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이다.

"차 좀 빼주세요."

"차요? 무슨 차요?"

"여기 내 차 앞에 주차된 차 말입니다."

"주차라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내 차는 잘 세워 놓았는데, 무엇이 잘못됐나요."

"차를 빼 달라고 하면 미안해서라도 빨리 와서 빼 줘야 되는 것 아닌가요?"

"아니, 그게 아니고 지금 내 차는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있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여보세요. 당신 차가 여기를 가로막고 있잖아. 무슨 주차를 이 따위로 해놓은 겁니까?"

상대방은 화가 난 목소리이다. 신경질적인 말을 듣는 것이 나도 기분좋을리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

하다. 나는 분명 지하주차장의 주차구역에 세워 놓았는데, 차를 빼달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이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차의 어느 곳에도 번호를 적어 놓은 것이 없는데, 이런 전화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여보세요. 대뜸 이렇게 말씀하시니 황당하네요. 지금 거기가 어디입니까?"

"무슨 말이 이리 많아요. 여기 골목에 있는 에쿠스, 빨리 치워주세요."

장소는 서울 K구의 어느 골목이라고 하는데, 내 귀에는 매우 생소한 곳의 명칭이다.

"연락처를 잘 보고 전화하시기 바랍니다. 아파트 주차장에 있는 내 차가 언제 그곳에 갔답니까? 그리고 또

나는 그렇게 좋은 차를 소유한 적도 없습니다."

"빨리 안 빼 주실겁니까? 그리고 이 차가 무슨 좋은 차라고. 이름만 에쿠스지, 아주 오래된 똥차이면서.."

"아니 도대체 몇 번으로 전화를 하신 건가요?"

그 쪽에서 불러주는 전화번호는 내 번호보다 한자리가 더 있는 것 같다. 나는 번호를 잘 확인하시고 전화를

걸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런데 희한하다. 그 차 주인이 번호를 잘못 기재했는지, 아니면 어떤 통신상 

문제가 있는 것인지 그 뒤로도 약 2개월을 이런 전화로 시달렸다. 차 빼달라는 전화를 아마 당시 약 10번

이상은 받은 것 같다. 무엇보다 그 차 주인은 수시로 아무곳에나 주차하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이다.

불행하게도 주차 예의가 부족한 그런 사람과 전화번호가 비슷하여 당시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대부분 잘 확인하고 전화하라고 하면 알겠다고 하고, 또 걸려올 경우 다시 확인하라고 하면 미안

하다는 말이 들려오곤 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동차와 관련해서는 다른 것에 비해 예절 높이가 많이 낮은 편이다. 주,정차는 그렇다 치더라도 운전

중에 보면 쓸데없는 경적이나 상향등, 갑작스런 끼어들기 등을 종종 경험하곤 한다. 


주차관련으로 엉뚱한 전화를 받던 당시에 있었던 일이다. 운전을 하면서 2차선에서 1차선으로 차선변경을

하려고 깜박이를 켜니 한참 뒤에서 오는 차가 상향등을 켜고 속도를 갑자기 내기 시작한다. 상향등의 경우

유럽의 나라들에서는 자신이 양보할 때 깜박인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자기가 먼저 갈테니 

앞으로 끼지 말라는 신호이다. 나는 충분히 낄 수 있었지만, 그 차가 지나가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런 상향등은 경고나 도발의 불빛으로 기분 나쁜 신호이다. 교양있는 사람도 운전대를 잡으면

태도가 돌변하고, 성직자도 운전을 하다 보면 욕을 내뱉는다고 하는데, 내 입에서도 쌍시옷이 맴돈다.

여하튼 이로 인해 기분이 팍 가라앉았을 때 또 주차관련 전화를 받고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 차 좀 빼주세요."

비슷한 전화를 하도 많이 받은 탓으로 기분은 엉망이었지만, 목소리를 가라 앉혀서 설명하였다.

"아마 그 차 주인이 연락처를 어떻게 적었는지 모르지만, 제가 이런 전화를 많이 받아서 그런데, 저는 그 차

주인이 아닙니다. 번호를 다시 잘 확인하시고 거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건화를 건 사람은 목소리에 불만을 잔뜩 실은 여성으로 막무가내(莫無可奈)다.

"차를 빨리 안 빼려는 꼼수인 줄 모를까봐 그러세요. 지난 번에도 그러더니, 여자라고 사람을 이렇게

우습게 봐도 되는 거요? 도대체 당신은 주차를 왜 이따위로 하는 겁니까?"

"아~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그 차는 제 차가 아닙니다. 더구나 저는 지금 운전중입니다. 운전중인

사람이 차를 어디에 주차했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정말 이런 식으로 나올 겁니까?" 그러면서 자기 남편인 듯한 사람에게 전화를 건네주는 것 같다.

"지난 번에도 당신때문에 내 마누라가 출근을 늦게 했다고 하던데, 당신 차~ 이 따위로 주차하면 어떡

하라는거야!"

부창부수라고 똑같다. 아니면 자기 마누라 앞에서 무슨 폼을 잡으려고 그랬는지, 처음부터 상당히 화가

난 목소리이다. 장소는 역시 K구의 어느 골목이라고 하는데, 역시 난 잘 모르는 곳이다.

"아니 전화번호 좀 잘 확인하고 거세요. 그리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차를 빼달라고 하면서 함부로 말하는

것은 예절이 없는 사람이나 하는 짓입니다."

훈계조로 말하니 상대방은 목소리가 더 높아진다. 화가 잔뜩 치민 상대의 모습이 수화기를 통해 보이는

듯 하다.

"정말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요. 이 차 지금 당장 견인하도록 할테니 나중에 딴소리 하지마세요!" 

나도 막무가내인 그들을 상대로 더 이상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 "마음대로 하시오"라는 말과 함께 끊었다.  


문제의 그 차 주인은 다른 것은 몰라도 분명 K구의 어느 곳과 연관이 있는 사람임에 틀림다. 최근 

코로나19와 관련하여 K구로부터 많은 메시지를 받는 것도 아마 당시 그 차 주인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 후 앞번호를 010으로 바꾸면서 더 이상 불편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이

잘못됐는지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주차를 아무 곳에 하거나 막무가내로 떼쓰는 사람들이 없세상을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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