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용서와 사랑

헤스톤 2020. 1. 20. 13:08


D지하철역 앞을 지나다 돈을 주웠다. 길 위에 5천원 짜리 한장이 얌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기에 허리를

굽혀 손에 쥐었다. 하필 그 돈이 왜 내 눈에 띄었는지 모른다. 큰 금액도 아니고, 동전도 아닌 지폐가 왜

하필 내 앞 길을 막았는지 모른다. 돈을 손에 들고 주변을 살피며 혹시 돈 주인이 주변에 있는지 살폈다.

아무도 관심이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무엇이 그리 바쁜지 5천원권의 지폐를 들고 있는 내 손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돈 떨어진 곳의 바로 앞에 길거리 분식 가게가 있길래 혹시 그곳의 손님과 관련이 있을지 몰라 가게

주인에게 말을 붙여 보려고 다가갔다. 하지만 도저히 말을 걸 수가 없다. 그 가게의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부인으로 보이는 아낙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언성을 높이며 거친 단어들을 마구

내뱉는다. 내 귀가 더러워진 탓도 있고, 그 욕들을 뚫고 주은 돈과 관련하여 물어볼 수가 없다.    

그나저나 사람들의 왕래가 이렇게 많은 곳인데, 아무도 줍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언제부터

그 돈이 그곳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도 그냥 지나갈걸 괜히 주웠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서 원래 있던 

자리에 돈을 놓아둘까 하다가, 손에 쥐고 있는 돈을 보니 그것도 적당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파출소나 경찰서라는 곳을 그려 보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이 그런 곳과 친하지 않은 탓인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곳에서는 본 적이 없고, 이곳을 관할하는 경찰서까지는 거리가 멀다. 만약

택시를 탄다면 주운 돈 이상의 택시비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주운 돈이 큰 금액이라면 그렇게라도

하겠지만, 소액인 돈을 처리한다고 왔다갔다 하기엔 여러가지로 비경제적이다.





돈을 잃어버린 사람의 속상한 심정이 나를 괴롭히긴 하지만, 그 사람에게 돈을 찾아줄 수 있다는 확신도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 호주머니에 넣는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돈을 소유할 목적으로 가져가면 "점유이탈물횡령죄"에 해당된다

고 한다. 그리고 유실물법에 의해 습득자는 유실물 가액의 100분의 5 이상 100분의 20 이하의 보상금을

지급받을 수 있으며, 6개월간 소유주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습득자에게 소유권이 귀속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러 정황상 6개월후 쯤 설사 나에게 소유권이 귀속된다고 하여도 별로 반갑지 않다. 우선 주운 돈의 몇

배에 해당하는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 것이다. 차라리 고액의 돈이라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경찰서로 가겠

지만, 그런 것도 아니기에 더 갈등이다. 적절한 방법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괜히 돈을 주워서 우왕좌왕

하며 고민하는 내 꼴이 우습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다. 돈을 잃어버린 사람이 불우이웃돕기 하는 것을 내가 도와

주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편해질 것 같았다. 돈을 잃어버린 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그도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까운  주민센터로 가서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금함에 돈을 넣었다. 그렇다고

찜찜함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나 자신을 다독거릴 수는 있었다.


주민센터를 나오며 머리를 떠도는 단어 하나는 라틴어인 "carpe diem(카르페 디엠)"이었다.

작년 가을 주민센터 자치회관의 L 강사가 프로그램 경연대회에 나간다고 하면서 팀명을 하나 작명해

달라고  했을 때, 내가 추천한 이름이 "카르페 디엠"이기도 했다. 영어로는 "seize the day"나 "enjoy the

present"될 것이다. 그렇다. 오늘을 즐겁게 사는 것이다.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자. 과거의 일(돈 주운

일)을 자꾸만 염두에 두지 말자. 미래의 일(돈 주인이 나타나는 일)도 생각하지 말자. 돈 주인이 나타나면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고 내 주머니에서 꺼내 주면 된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우습기도 하여

빙그레 미소지으며 "카르페 디엠"을 중얼거렸다. 내가 직접 좋은 일을 하기도 하고, 남이 좋은 일을 하도록

돕기도 하면서 사는 거다. 남의 돈을 내 맘대로 처리한 나를 용서하고, 불우이웃을 사랑한 나를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며 지금을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당초 계획한 "두 교황(The Two Popes)"이라는 영화를 보러 갔다.

보수와 진보로 대표되는 두 교황이 "교회의 정상화"를 위해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장면도 있고, 교황들의

인간적인 면과 함께 그들도 무결하지 않다는 것도 보여준다. 고해성사를 통해 서로의 잘못을 고백하며

그들도 서로 용서해주고 용서받으면서 산다. 어쩌면 용서와 사랑은 삶의 기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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