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는 속물이다

헤스톤 2019. 5. 17. 16:12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속물이다.


지난 3월에 있었던 아들의 결혼과 관련하여 몇몇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탓으로 얼마 전에 있었던 그들 중 몇 명의 대사(大事)에는 어떤 축하나 애도의 표시도 하지 않았다.

나에 대하여 서운한 감정을 품게 한 그들에게 속도 없이 축의금이나 부의금을 준다면 내가 더 속상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 대하여 화가 난다. 역시 나는 군자가 아니고 속 좁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최근 몇 명에 대하여는 여러가지를 고려하여 마지못해 송금을 했지만, 솔직히 기분은 더러웠다.

 

아들의 결혼과 관련하여 받은 축의금 기록부를 보며 많은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

당연히 그 마음은 계속 간직할 것이지만, 분명히 있어야 할 이름이 보이지 않아 갖게 된 서운한 마음은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훌훌 털고 싶은데 인격수양이 덜 된 탓인지 마음대로 안 된다. 


특히 몇 명에 대하여는 과거 내가 보냈던 축하나 애도들이 후회된다. A나 B에 대하여는 괘씸한 생각마저

든다. 나는 그들의 부모상과 장인, 장모상, 자녀들의 결혼식 등 여러 번 부조를 했는데, 약 2년 전에 있었던

나의 장모상은 물론이고 이번에도 그 이름 석자가 보이지 않으니 왠지 서운함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그리고 나의 아들 결혼식과 비슷한 시기에 장모상이나 자녀 결혼이 있었던 C, D 등도 비슷하다. 아예

이름이 없다. 물론 몰랐을 수는 있다. 하지만 몰랐다고 그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모르는 것도 죄이기 때문이다. 즉, 무지는 무죄가 아니고 유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 대하여 화가 난다. 결국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라는 생각으로 슬퍼진다. 

사람에 따라 들이대는 잣대도 일정하지 못하다. 과거 직장 상사를 비롯한 어떤 이들에 대하여는 받는 것

없이 계속 주기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서 왜 학교 동창이나 일부 직장 동료이었던 자들에 대하

여는 서운한 마음인지 모르겠다. 사람에 따라 누구에게는 관대하고, 누구에게는 인색하여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으니 정말 나는 속물인 모양이다.

 

사실 돈과 관련된 것에 대하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언급하는 것 자체를 껄끄럽게 생각한다. 

대부분 속으로 삭일 뿐이고, 사실 나도 그런 부류이다. 속으로 삭이지 못하면 본인만 힘들 뿐이다. 따라서

빨리 잊어버리고 훌훌 털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사실 그들도 인간이니 어떤 착오를 저질렀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내 속이 좁은 탓인지

잘 안 된다. 그래서 나 스스로 소심한 복수를 하고 있다. 기왕 지나간 것은 어쩔 수 없고, 앞으로 닥치는

것에 대하여는 나 편한대로 처리하는 것이다.


 

 


올해 나의 아들 결혼식과 거의 비슷한 날짜에 대사를 치른 사람도 있었지만, 인간(?)도 몇 명 있었다.

만약 그들이 나의 아들 결혼식에 아무 표시도 없을 줄 알았다면 당연 나도 돈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대사가 나보다 앞서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들 외에 과거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였던 G는 우리집 혼사 바로 다음주이었고, H는 그 다음주이었다.

청첩장이 왔다. 거의 같은 시기이기 때문에 그들은 소식지나 SNS 등을 통하여 우리집 대사를 충분히 알고

있었을텐데, 남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나의 부친상(父親喪)을 포함한 대사에도 아무

표시가 없던 자들이다. 

나는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그들에게 송금을 하지 않았다. 축의금을 보내줘도 후회하고, 안 보내줘도

후회할 것 같았지만, 차라리 안 보내는 편이 내 마음을 좀 더 편하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기분은 더러웠다. 

 

얼마 전에 있었던 학교 동창의 딸 결혼도 마찬가지다. 소액이라도 축의금을 보낼까 하다가 나한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에게 송금하고 나면 내 속이 더 쓰릴 것 같아 참았다. 앞으로도 나는 내 마음이

더 편한 쪽으로 부조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즉, 상대가 나에게 어떤 부조를 했건 안했건 내 마음이 편한 쪽으로 선택할 것이다.

따라서 상대가 나에게 아무 표시가 없었어도 주는 것이 좀 더 편할 것 같으면 줄 것이고, 주지 않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으면 주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면서 역시 나는 속물인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마치 삼류가 된 기분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우선 내 마음이 덜 불편해야 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그릇대로 사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머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누가 <좋은 글>이라고 하며 스마트폰으로 보내준 글 중에서 

아래의 구절(句節)이 자꾸만 나를 부끄럽게 한다.


행복한 사람이란

누가 나를 섭섭하게 해도 그러려니 하면서 고마움을 생각하는 사람

받을 것은 잊어버리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것을 다짐하며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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