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신발과 등신

헤스톤 2015. 4. 7. 11:04

 

 

 

신발과 등신

 

 

지하철이나 버스에 무슨 물건을 놓고 내렸다는 사람을 보면 이해하기 힘들었다. 날씨가 꾸물거리는 날 우산들고

나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 그냥 빈손으로 왔다거나 저전거타고 나갔다가 그냥 걸어 들어왔다는 사람을 보면

정신나간 사람으로 등신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정신머리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속으로 업신여기며

등신취급을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나도 가끔 비슷한 일을 겪다 보니 보는 각도가 달라지기는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그런 사람들을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 달리 집사람이 그런 경우에는 들이대는 나의 잣대가 더 인색하다. 무슨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찾아 헤맬 때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20대 여성은 택시를 타자마자 문자 보낸다고 바쁘고 50대

아줌마는 타서부터 내릴 때까지 핸드폰 찾느라고 바쁘다"더니 30분전 쯤에 누구와 한참 통화하고는 안방과

거실에서 핸드폰을 찾아 헤매고 있다. 내 핸드폰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여기저기 뒤적거린다. 케이스 색깔도

다른데 내 핸드폰은 왜 만지작거리는지 모르겠다. 답답하여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 

"아까 저쪽 작은방에서 통화했었지 않아?"

"아~ 아! 그렇지. 맞다!"

"아~ 아? 등신 道(도) 터지는 소리하고 있네.."

 

물론 나도 수첩찾아 삼만리 한 적도 있고, 자동차를 지하주차장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한참 헤맨 적도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어쩌다 있을 수 있는 극히 드문 일이라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남들과 다른 잣대를 사용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런데 이런 나의 자세와 관계없이 나에겐 불명예스러운 것이 하나 있다. 나는 신발

잃어버리는 선수다.    

 

며칠전에는 직장 동료 몇 명과 저녁먹고 스크린골프나 한번 하자고 하여 근처 식당에 갔다. 이른 시간도 아닌데

최근 경기가 좋지 않은 탓인지 손님들이 별로 없다. 넓은 식당에 우리를 빼면 손님이 5명밖에 없어 홀에 있는

종업원 숫자와 비슷하다. 정말 텅빈 듯한 곳으로 내가 주인이라면 매우 심란할 것 같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쯤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내 신발이 없다. 손님도 몇 명밖에 없었던 식당에서 도대체 누가 내 신발을 신고 갔을까.

누군가 내 신발을 신고간 것이 분명한데 이게 도대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오래전부터 내가 신었던 신발에

무슨 귀신이 씌어 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자주 신발이 도망갈리가 없다. 

나는 지금까지 닳고 떨어져서 버린 신발은 거의 기억에 없을 정도이다. 왜 내가 신던 신발들은 잘 없어지는지

모르겠다. 내 발에 무슨 영험한 기운이 붙어 있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어렸을 때 친구들 따라 교회에 갔다가 신발을 잃어버리고 와서 어머니에게 혼이 났던 적이 있다. 그 뒤로 성년이

될 때까지 교회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수시로 운동화를 분실하였다.

직장에 다니면서부터 횟수가 줄기는 했지만 신발의 수난은 계속되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식당에 신발을 벗어

놓고 가면 분실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남아 있는 신발이 아예 없을 때가 종종 있었다.

헌 것이 되었건 발에 안 맞는 것이 되었건 무슨 흔적이 남아 있어야 되는데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무슨 경우

인지 모르겠다. 

 

그러더니 이번에도 없다. 따라서 누가 자기 신발로 착각하고 신고 갔다고 하기도 그렇다. 음식점 주인과 종업

원은 책임을 모면하려고 구두가 아닌 다른 것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중얼거리거나 그곳에 있는 무슨 슬리퍼를

신고 온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렇다고 음식점 주인에게 배상을 시켜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루 장사 땡 쳤다고 할까봐 언제나 내가 그냥

손해보고 만다는 심정으로 음식점에 배상청구는 하지 않았다. 상법에 의하면 손님이 업주에게 물건을 맡겨둔

경우 업주는 분실이나 도난시 책임을 져야 하며, 맡겨두지 않은 경우라도 업주의 과실이 인정되면 업주는 책임

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어떤 업소는 신발분실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안내문을 게시한 곳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공중접객업자는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런 것을 알고 있지만 이번에도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가진 것은 쥐뿔도 없으면서 이럴 땐 마치 장사가

안 되는 음식점이나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생각되는 자들에게 무슨 은혜나 베푸는 것처럼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사람처럼 폼 잡고 음식점 주인이나 종업원을 오히려 위로한다.

 

그들의 마음이 편할 수 있도록 "세상에 처음부터 내 물건이었던 것이 어디 있었는가"라고 말하며 허전한 마음을

툭툭 털어버린다. 조금 더 나아가 "내가 신던 구두가 누군가의 신발이 되어 그를 편안하게 하면 그만"이라고

말하면서 천사 흉내를 낸다. 설사 실수가 아니고 일부러 내 신발을 가져 갔다고 해도 잘 신어 준다면 그만이라

생각이다. 이런 나를 음식점 주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생각하는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멋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집사람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다른 곳을 보며 말한다. "등~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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