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어디로 갈까

헤스톤 2018. 3. 2. 13:51


매일 아침 출근시 덕릉터널을 지날 때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 그곳까지 가는 길은 똑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터널을 지나자마자 고가 밑으로 내려가서 왼쪽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오른쪽으로 갈 것인지

정해야 한다. 똑바로 가는 길은 없다. 딱 두갈래 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드는 생각은 지금까지 인생길

에서 어느 쪽으로 갈 것인지 선택하는 상황에 직면하여 올바른 선택을 했는가에 대한 것이다. 왜 자꾸 가지

않은 길을 쳐다보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세상을 살면서 언제나 똑바로만 간다면 좋겠지만,

때로는 이곳처럼 똑바른 길이 없을 수도 있다. 또 인생이란 직진으로만 가서는 목적지에 갈 수가 없다.

왼쪽으로 가기도 하고 오른쪽으로 가기도 해야 한다.

 

나의 출근길에서 좌로 가면 P시에 있는 Y사로 가는 것이고, 우로 가면 Y시에 있는 P사로 가는 것이다.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들을 말하는 것으로 영어 이니셜로 표기하다보니 공교롭게도 서로 반대이다. 회사

에서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자금의 수입과 지출을 점검하고 파악하는 일이다. 회사가 진행하고 있는 일에

조언을 한다거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기관 및 업체들과 조정을 하는 일도 있지만 거의가 모두 자금과

관련된 것들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돈을 만지지는 않는다. 어느덧 나는 실무의 중심에서 일하기에는 

한물간 나이가 되었다. 그렇다보니 이제 나에게 정상적인 월급을 주려고 하는 회사도 없다. 매일 출근

하기를 바라는 회사도 찾기 힘들다. 그래서 지금 나는 어느 날은 Y사, 또 어느 날은 P사로 출근하고 있으며,

수시로 가는 날을 바꾸기도 한다. 출근이 자유로운 만큼 회사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렇

다고 아예 원칙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달에는 무슨 요일에 출근하겠다고 말을 하지만 나의 상황에 따라

그 요일을 내 맘대로 바꿀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회사의 요구에 따라 바꾸기도 한다.

 

 

두 회사에서 주는 월급을 다 합해도 옛날 은행 퇴직하자마자 다닌 회사에서 받던 월급의 절반 정도밖에

안된다. 그래도 나 스스로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나이에 나에게 근무해달라고 요청하는

회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디인가. 돈보다도 우선 일을 한다는 자체가 대단하다. 월급이 적은 탓으로 

장점도 있다. 출근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이다. 오늘도 좌로 갈까, 우로 갈까 집을 나서면서 정한다. 그러

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나는 '좌파일까? 우파일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지금 생각하니 학생시절 나는 꽤 왼쪽에 있었던 것 같다. 당시는 3, 4공화국 시절이라 더 그랬던 것도

있지만,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들이 대부분 그런 분이었다. 어느 분은 감옥에 갔다 온 분도 있었다.

그 분은 얼마 안주는 강사료를 받으며 시간강사로 강의를 하러 오셨던 분이다. 당시 정권과 반대되는

입장이기에 정식 교수로 발령이 어려워 여러군데의 시간강사를 하면서 돈벌이를 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인간적으로 그 분이 너무 좋았다. 그 사람은 진보적 경제학자로 민주화 운동가이었다. 조정래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위대한 전사'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는데, 치열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당대 한국

사회의 이슈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신의 생각을 펴는 실천적 지식인이라고 하기도 한다. 당연히

상반된 평가도 있다. 그 외 성장보다는 분배의 정의와 사회구조개혁에 큰 관심을 가지시던 분들에게 배운

탓인지 나도 모르게 왼쪽편과 가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오른쪽에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꾸만 오른쪽

으로 이동하다가 이젠 멈춘 것 같은데, 직장생활이나 사회가 나를 그 쪽으로 인도한 것 같다.  

 

 

지난 일요일 등산을 하다가 의자에 앉으려고 하는데 나무의자에 쓰여있는 글이 나의 눈을 한참 붙들어

맨다. "曲則全"(곡즉전)이라는 글자이다. "굽어서 온전할 수있다"는 말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글로

지상의 길(道)이나 나무(木), 강(江)도 적당히 휘어져서 자신의 임무를 다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枉則直(왕즉직)"과 더불어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왕즉직은 휠 수 있으면 곧아질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한강도 여러번 휘어서 굽이돌아 흐르지만 결국은 바다를 향해 간다.

따라서 휜다는 것이 꼭 나쁘다고만 하기도 그런 것 같다. 강물이라는 것이 가다가 멈칫거리기도 하고 좌로

돌기도 하고 우로 돌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바다를 향해 곧게 가는 것과 같다. 따라서 가야할 방향과

목표만 올바르다면 굽거나 휜 것을 나무랄 필요가 없다. 어쩌면 유연성의 가치를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르고, 내가 본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나만이 옳다고 섣불리 판단

하지 말고 주변을 애정어린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사실 인간들끼리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보니까 단 몇 초 차이로 메달색깔이 바뀌고

인생도 바뀌는 듯 하다. 동계올림픽의 모든 속도경기에서는 영점 몇초로 등수가 확 바뀐다. 큰 차이가 아닌 

이런 미세한 차이로 사람의 운명이 바뀌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가의 무기들  (0) 2018.04.08
소금 좀 치자  (0) 2018.03.13
대구신문에 실린 나의 시  (0) 2018.01.23
닮아간다는 것  (0) 2018.01.17
이달의 작가  (0) 2018.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