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닮아간다는 것

헤스톤 2018. 1. 17. 09:37


 

어머니 생신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 여동생 둘이 내 아들을 보며 말한다.

"어쩜 상철이는 커 가면서 그렇게 아빠를 닮아가니. 똑~같네. 똑~같아!"

"얼굴뿐만 아니고 서 있거나 앉아있는 자세가 똑~같아!"

그 말을 들은 나야 기분이 나쁠 리 없지만 아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내가 그 자리에 함께 있은 탓인지 아들은

빙그레 웃기만 한다. 내가 볼 때 외모는 잘 모르겠지만, 성격면에서 비슷한 점을 간혹 발견할 수는 있다. 우선

모나지 않은 성격이 닮았다. 나쁘게 말하면 나도 그렇지만 아들도 예리하지 못하고 순발력도 부족하다. 

근성도 부족하여 이것이 아니다 싶으면 포기도 빨리 하는 편이다. 그리고 사람을 대할 때 직선보다는 곡선이

많은 편이다. 즉, 아무리 주장하는 바가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적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좋게 말하면 

남의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으로 화합을 중시한다. 그렇다고 화를 낼 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웬만한 것은 그냥 웃고 넘어가지만, 그런 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크게 폭발하기도 한다. 다행인 것은

어지간한 것 갖고는 폭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겠지만 거짓말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 한번 약속한 것은 어떻게든 지키려고 한다. 

설사 일방적인 약속이라도 지키려고 하며, 약속 시간을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유사한 것은 아니다. 아들이 나보다 나은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내면적인 것들이 나를 닮아가는 것 같아 한편으론 좋기도 하면서 단점까지 닮아가는 것 같아 씁쓸

하기도 하다. 이럴줄 알았으면 좀 더 내가 용(勇)이나 의(義)의 모습을 보이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멋있게 사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나는 가끔 아버지의 옛날 사진을 보고 깜짝 놀라곤 한다. 그 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와

닮았다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 그 소리가 듣기 싫었다. 특히 외갓집에 가면 "아버지를 그대로 빼다 박았다"는

말을 그 동네사람들한테도 듣곤 하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책을 가까이 하였다. 글도 자주 썼다. 책도 몇 권 펴냈지만, 비매품으로 돈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어머니로부터는 많은 핀잔을 먹었다. 돈이 되기는커녕 쓸데없이 돈을 쓴다고 어머니는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도 아버지는 무엇인가 기록을 남기는 일에 열정을 쏟으셨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펜을 잡고 무엇인가를 썼다. 말년엔 뇌에 암이 완전히 퍼져서 삐뚤빼뚤하게 쓴 글씨들이 나를 무척

아프게 했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못 알아보게 쓴 그 글씨들이 나를 얼마나 울렸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생전에

국화꽃을 매우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당신이 죽은 후 제사는 필요없고, 산소에 국화꽃이나 갖다 놓으라고

하셨다. 그런 말을 많이 들어 연상이 되는 탓인지 아버지의 글 속에는 언제나 국화 향이 나는 것 같다. 나의 글

속에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 꽃 향기는 바라지 않고 지저분한 냄새만 없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시향만리(詩香萬里)라는 말이 있는데, 만리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십리만 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 본다.


  

(여기까지의 사진들은 20년 전의 사진들임)


부부도 오래 살면 닮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아는 결혼 전후의 남녀 차이는 이런 것 같다. 연애할 때와

비교하여 결혼을 하게 되면 여자는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변한다. 그에 비해 남자는 결혼해도 절대 안

변한다. 그래서 불만이다. 남자는 여자가 변해서 불만이고, 여자는 남자가 변하지 않아서 불만이다. 부부가

오래 살면 외모도 닮아가지만 성격도 닮아간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부부가 오래 살면서 서로 닮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는 의견에 나는 동의한다. 

그런데 희한하게 좋은 점은 잘 닮아가지 않고, 안 좋은 것을 닮아가는 것 같다. 물론 모든 부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모 성당의 ME(Marriage Encounter, 부부일치운동) 대표나 총무를 담당하면서 보아 온 많은 

부부들이 그런 것 같다. 

대개 부부들을 보면 나쁜 습관은 잘 바꾸지 못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보면 이런 것이다. 나는 소변을 볼 때

마다 변기 뚜껑을 열어놓고 그대로 둔다. 집사람은 잔소리를 한다. 즉, 뚜껑을 내려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 잔소리를 들어도 그게 잘 안된다. 이런 하찮은 것부터 바꾸기가 어렵다.

흔히 하는 말로 부부는 3주 서로 연구하고, 3달 사랑하고, 3년 싸우고, 30년 참고 견딘다고 한다. 부부가

행복하려면 서로의 차이를 잘 알아야 한다. 우스개소리이지만 부부가 행복하려면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남편의 말이나 행동을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반면, 남편은 아내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많이 사랑만 하면 된다. 분명한 것은 부부관계가 좋을수록 더 닮아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우리 부부는 얼마나 닮았을까?  지금 물음표만 찍게되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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