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재수없는 날

헤스톤 2017. 12. 27. 12:52

 


정말 재수가 더럽게 없는 날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교통사고가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늘의 잘못은

있을지언정 내 잘못은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런 사고가 발생하였고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인 날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전날부터 나쁜 조짐이 있었다. 이틀 연속 송년모임을 한다고 밤 늦게까지 못 먹는 술을 마신 탓으로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감기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와서 머리가 아프고 코가 막혀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

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출근하지 말고 쉴까 하다가 의무감에 나갔다. 어쩌면 여기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억지로 출근을 했고, 출근해서는 처리할 일도 없는데 괜히 나왔다는 생각자체가 좋지 못했다. 

퇴근을 서두를 무렵에 무엇을 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사실 그날 처리하지 않아도 될 내용이지만, 일을

미결로 두지 못하는 성격탓에 처리한다고 시간이 좀 걸렸다. 그리고 이제는 가야겠다고  일어서는데, J이사가

시간 좀 내줄 수 없느냐는 것이다. 무슨 급한 일이냐고 하니 10분이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말을 하다보면

10분이라는 시간으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 급하게 협의할 내용도 아닌 것을 가지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이미 모든 직원들은 퇴근한 다음으로 제일 늦게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왔다. 눈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약 10여분 전만 해도 눈이 오는 듯 마는 듯 하더니 시야를 가릴 정도의 폭설이다. 길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 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간다. 시간이 갈수록 엄청난 양의 눈이 쏟아진다.

이럴 때 속도를 내서는 절대 안된다. 아니 낼 수도 없다. 눈이 많이 쌓여 옆 차선으로 차선변경도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아니 웬만하면 차선변경을 하지 않기로 했다. 고속도로에 올라와서는 되도록이면 

차들이 많이 지나간 가운데 차선을 선택했다. 앞차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천천히 갔다. 그런데 앞차가

천천히 가도 너무 천천히 간다. 답답하다. 그런데 왜 이날은 앞차만 따라갔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다. 천천히 가던 앞차인 스타렉스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잡으며 완전 느림보가

되더니 1차선으로 핸들을 확 꺾는다. 그때에서야 내 눈에 도로를 가로로 막고 서 있는 소나타가 보인다.

가운데 차선을 거의 90도로 꺾여서 딱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앞의 스타렉스가 소나타 앞 부분을 옆으로

크게 들이박고는 1차선에 서 버린다. 나는 얼른 브레이크를 잡으며 1차선으로 꺾었다. 길이 미끄럽다. 기어

변속을 하며 브레이크를 잡았는데도 주루룩 바퀴가 미끄러진다. 스타렉스 뒷꽁무니를 박고 말았다.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다. 완전 재수없는 날이다. 살면서 이런 일은 없어야 되는데 정말 나쁜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왜 하필 그 시각 그 장소에 내가 있었는지 여러가지가 원망스럽다. 회사에서 예정

대로 퇴근을 하였거나 10분만 일찍 나왔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정말 운 나쁜 교통사고가 났다. 그리고

그 뒤의 사고처리과정도 불쾌하기 그지없다. 

 

나는 조심한다고 엄청 조심했다. 안전거리도 많이 확보했고, 고속도로 제한속도인 100Km의 1/2인 50Km

이하로 운전했다. 갑자기 앞차가 속도를 확 줄인 상태에서 옆 차선으로 꺾었고, 그러면서 내 눈앞에 차선을

막고있는 차가 보였다. 내가 정면으로 그 차를 박았다면 아마 그 운전자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내 블랙

박스를 몇 번 보아도 나의 선택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3차선에는 다른 차가 가고 있었고, 2차선과

1차선을 막고 서 있는 차, 그리고 폭설로 인해 미끄러지는 도로의 상황에서 난 최선을 다했을 뿐이기에

억울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럼 왜 소나타는 2차선을 가로막고 서 있었던 것일까? 보험회사 보상팀의 직원한테 들은 이야기는

3차선으로 가던 소나타 앞의 SM5가 속도를 확 줄이며 비틀거리기에 소나타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잡게

되었고, 미끄러지면서 3차선에서 2차선쪽으로 꺾였다는 것이다. 내 앞의 스타렉스는 갑자기 3차선으로

가던 차가 2차선으로 들어와 정지를 해 버리니 1차선으로 피한다고 했지만 그만 부딪쳐서 왼쪽 벽을 박고

서 있게 되었던 것이고, 스타렉스의 높이나 폭설로 앞의 앞의 차가 보이지 않던 나는 스타렉스가 부딪칠

때쯤 차선을 막고 있는 소나타가 내 시야에 들어왔던 것이다. 

여러가지가 원망스러웠다. 먼저 왜 소나타는 2차선을 막고 서 있었냐는 것이다. 차가 돌아서면 가만히

있지 말고 빨리 대처를 하지 않았는지 원망스럽다. 그리고 스타렉스는 왜 그것을 요령있게 피하지 못했냐는

것이다. 만약 잘 피해서 빠져나갔더라면 나도 그 차를 따라 빠져 나갔을 것이고, 하다못해 조금만 더

앞으로 전진을 한후에 서 있기만 했어도 뒤를 박지는 않았을텐데 말이다. 도로상황을 감안할 때 모두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고, 모두가 내 맘같지 않아 무엇이라고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정말 재수없는 날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사고가 생기다 보니 정신이 없다. 사고즉시 자동차 상태를 확인하고 보험회사로 전화를 거는데 상대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통화가 안된다. 머피의 법칙인지는 몰라도 평소에 잘 되던 것도 막상 꼭 필요할 때는

안된다. 사고지점이 터널 입구이었기 때문에 터널의 안쪽인 탓이거나 자동차 블루투스와 연결이 된 탓이었

다는 것을 알기에는 몇 분이 걸렸다. 그 몇 분도 나를 힘들게 했다. 

 

보험회사 직원과 이야기를 마친 후 차를 몰고 집에 왔는데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 집에 와서 출동기사가

가르켜준 자동차공업사 위치도 파악할 겸 PC를 켰다. 그런데 뭐가 이리 꼬이는 것일까. PC가 먹통이다.

화면은 까맣고 커서만 움직일 뿐 아무 소용이 없다. 답답하다. 정말 이날은 모든 것이 머피의 법칙이 작용

하는 것 같다. 만약 핸드폰마저 없었다면 이찌되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어둠이 따로 없다. 이게 바로 어둠의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른다. 

 

보상과 관련하여서는 솔직히 많이 억울하지만 그냥 나는 내 차 수리비와 앞차의 뒷부분 수리비를  물기로

하였다. 살면서 이런 일이 있으면 안되는데 어쩜 뜻대로 안되는 것이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안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우선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고, 차가 크게 망가지지

않은 것도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그리고 누구 말처럼 나에게 다른 좋은 일이 있으려고 액땜을 했는지도

모른다. 원망을 접고 감사의 마음을 가지니 마음이 편해진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닮아간다는 것  (0) 2018.01.17
이달의 작가  (0) 2018.01.02
문학상 시상  (0) 2017.11.15
시간과 돈  (0) 2017.10.18
단편소설 당선소감  (0) 2017.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