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에 1,700원이다."
아침에 자동차로 출근할 때마다 잠시 고민을 한다. 구리-포천 고속도로가 생긴 이후 새로난 길과 기존에
다니던 길 중 어느 길로 갈 것이냐를 선택하는 고민이다. 고속도로에서 이용하는 구간은 동의정부IC에서
소흘IC까지로 통행료가 1,700원이다. 대신 기존의 길로 가는 것보다 10분 정도 빨리 회사에 갈 수 있다.
그래서 10분에 1,700원이다. 양쪽의 거리나 기름소비는 거의 비슷하기에 비교할 필요가 없고,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거리대비 가격이 비싸다는 말이 많다.
시간이란 것은 소중한 것으로 '시간은 곧 돈'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시간이란 것은 고속도로를
이용함으로써 얻는 시간절약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비교를 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이 기준에 의해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1년은 약 9천만원이 된다. 만약 1년과 9천만원 중 한 쪽을 선택하라고 하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약 2년전 어떤 동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앞으로 살 날이 1년밖에 안남았다면 당신의 '꿈'을
이루는 것과 '5억원'중 무엇을 선택하겠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모두 당연히 꿈을 선택
한다고 하였지만, 그 학생들의 아버지들은 아니었다. 아버지들은 대부분 꿈을 포기하고 5억원을 선택
하였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보다 자기가 죽은 이후 돈을 물려주어 자식들이 돈 걱정없이 공부도 하고
남은 가족들이 좀 더 여유있게 살 수 있도록 돈을 선택한 것이다. 아버지는 가장으로써 자신의 꿈보다
가족을 더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할 때마다 아이들은
눈물지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란 것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1년이란 시간과 9천만원이라는 돈의 선택도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본다.
여하튼 나는 새로난 길이 생김으로써 최근 몇 개월동안 갈림길에서 고민을 하곤 했다. 10분 빨리 회사에 갈
것이냐와 1,700원이라는 돈을 아낄 것이냐의 선택이다. 그동안 나같은 경우 집에서 좀 일찍 나온 날은 기존
도로를 이용하고 그렇지 않은 날은 고속도로를 이용했던 것 같다. 언제나 선택은 어렵다. 그리고 선택한
길에서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면 가지 않은 길을 쳐다보게 된다. 어제같은 경우 기존 도로를 이용하였
다가 얼마나 고생을 하였는지 모른다. 앞 차량중에 사고가 있었던 탓으로 꽉 막혀서 평소보다 30분 이상 더
걸렸던 것은 물론이고, 신호를 무시하고 유턴하는 택시로 인해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 아찔했던 순간이
눈앞에 아른거려 새로난 길로 가지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고속도로로 갔다면 쉽게 갔을 텐데 말이다.
돈 1,700원 아끼려고 너무 힘들게 출근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처럼 어리석거나 잘못된 선택을
얼마나 하면서 살았을까? 내 인생에서 중요한 고비마다 잘 한 선택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삶이 힘들어지고 괴로울 때 마다 가지않은 길을 쳐다보게 된다. "부모님을 좀 더 힘들게 해서라도 내가
원하는 학교에 갔었더라면"이라거나 "인사고과 시점에서 그 상사와 다투지 말고 몸 한번 굽히는 길을
택했었다면"과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것은 되돌릴 수 없다. 우스개소리로 '만약'이란 약을
제조하는 제약회사가 있다면 아마 돈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벌었을 것이라고 한다. '만약'이란 것을 3번만
하면 누구나 대통령도 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만약'으로 이어지는 말은 현실에선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나마 나이를 먹으면서 다행인 것은 잘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부드러워지더니 이순의 나이를 넘어
서면서는 자신의 과거도 용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올라가보지 못한 산을 원망하지도 않게 되었고,
쳐다보는 일도 줄어들게 되었다. 산 정상까지 올라가지 못했다고 서러워할 필요가 없다. 산 중턱까지도 못
가보고 주저앉은 사람들도 있다. 서울의 부촌에서 살지 못했다고 슬퍼할 것도 없다. 서울에 땅 한평 가져
보지 못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10분이냐 1,700원이냐의 갈림길에서 시간을 선택했어도 상관없고 돈을 선택했어도 후회할 필요가 없다.
기존 도로를 가면서 교통흐름을 방해하는 차량들에 치이고 신호등에 계속 걸리다 보면 고속도로처럼 쭉
뻗지 못한 나의 지난 삶을 닮았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이만큼이라도 온 것이 어디냐고 자신을 토닥거린다.
어제같은 경우도 천천히 가다보니 조깅하는 사람도 보고, 길가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태극기도 만나고,
나뭇잎들의 지난 세월 이야기도 들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였다. 앞으로도 시간과 돈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상황에 따라 선택을 하겠지만, 이제는 무엇을 선택하였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