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발인을 앞두고 장례식장에서 부의금을 정리하다가 누가 냈는지 모르는 봉투가 나왔다. 봉투 앞면에
"賻儀"라고 한자로 "부의"를 쓴 흔적만 있을 뿐 부조를 한 사람의 이름이 없다. "賻儀"라고 쓴 글자도 엉성
하다.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이 글자를 보고 정성스럽게 그려놓은 꼴이다. 무엇보다 봉투안에 들어 있는
금액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5만원짜리로 20장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큰 금액이 아니겠지만,
그날 정리한 금액 중 가장 큰 금액이다.
무엇보다 낸 사람의 이름이 없다는 것이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큰 금액을 낼 정도이면 이 사람은
분명 돌아가신 장모님이나 상주와 무슨 특별한 관계일 것이 틀림없다. 더구나 이름도 밝히지 않으면서
이렇게 큰 돈을 냈다면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름을 일부러 밝히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실수로 이름을 쓰지 못한 것인지는 분간이 안 간다. 처남들에게 물어보니 장례식장에 온 친척중에서도
그런 돈을 낼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봉투에 적혀 있는 "賻儀"라고 그려놓은 글씨를 보고는
황당하다는 듯 고개만 좌우로 흔든다. 그렇다면 이 봉투를 낸 사람은 장모님과 무슨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장모님 영정 사진을 보며 한마디 툭 던졌다.
"아파트 경로당의 장모님 애인일까요?"
"혹시 장모님에게 숨겨 논 자식이라도 있었던 건가요?"
나의 이 엉뚱한 말 한마디에 장례식장의 슬픔 분위기가 잠시 웃음 분위기로 바뀐다. 부의금 봉투를 정리
하는 사람으로써 누가 냈는지 모르는 답답함에서 나온 말이기에 모두 실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봉투에
쓰여 있는 글씨에 관심을 보인다. 물론 당연히 장모님에게 숨겨논 자식이나 애인이 있을리 없다는 것은
몇 십년을 가까이에서 지낸 내가 알고 집사람이 안다.
장모님은 33년 전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후 홀로 시간을 보냈다. 33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시간동안 자식들이 모르는 일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옆에서 지켜 본 바로는 친한 친구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또한 자식들이나 손주들이 자주 장모님 집을 들락거렸기에 누구와 데이트를 즐길 시간도
없었다.
장모님에게는 3남 3녀가 있지만, 나와 바로 이웃에 살았기 때문에 둘째 딸인 내 집사람이 주로 보살펴
드렸다. 장례식장도 우리집 근처의 병원인 관계로 장례식장에 오는 손님은 나의 손님이 많았다. 아무래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다른 동서들과 비교할 수는 없고, 특히 아랫동서와 관련된 손님은 거의 없었다.
그러는 중에 이름과 금액이 적혀 있는 '부의금 정리기록부'를 열심히 보던 처제가 갸우뚱거린다. 아무래도
자기 남편이 낸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랫동서가 보이지 않는다. 상을 당한 첫날만 보이고는
보이지 않는다. 아랫동서는 교직생활을 오래 한 사람으로 현재는 강원도에서 펜션을 운영중인데 나보다
나이도 한참 위이고 학교로도 선배이다. 그래서 나는 그와 대화할 때 존댓말을 쓰는 것은 물론이고, 호칭
으로는 이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장모님은 아랫동서가 참 고마운 사람이라는 표현을 하곤 했다. 처제 부부가 많은 나이 차를 뛰어넘어 행복
하게 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간혹 장모님은 사위들 모두 고맙다는 말을 하곤 했지만,
아무래도 처제가 더 아픈 손가락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동서의 나이나 성격상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던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장모님 상인데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지 않고 있는 것에 약간의 불만을 섞어 나는 처제에게 물었다.
"이 선생님은 왜 어디 가셨나?"
"펜션에 외국에서 오기로 예약된 손님들이 있어 내려갔고, 발인은 못 볼 것 같아요."
"아니 그 보다 처제는 남편 글씨체도 못 알아보나?"
"우리 남편이 주로 영어를 많이 쓰고 한자를 쓰는 꼴은 보지 못해서요."
몇 개월전 동서 부부들이 외국으로 여행갔을 때 외국인들만 만나면 신나게 대화하던 아랫동서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우리나라 말보다 영어가 더 편하게 느껴지던 모습이다.
"이 선생님이 이렇게 글씨를 못 쓸리가 없어! 아무리 한자(漢字)를 몰라도 선생님을 오래 하신 분이 '儀'자를
몰라서 몇 번에 걸쳐 고쳐 쓴 이 글자를 보고 어떻게 이 선생님이 낸 봉투라고 할 수 있겠나?"
처제의 말로는 분명히 아랫동서가 부의함에 봉투를 넣는 것을 자신이 보았는데, 부의금 기록부에 자기 남편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화로 확인해 보라고 하였더니 통화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당신이 어제 부의함에 봉투를 넣은 것으로 아는데 얼마 했어요?"
"비밀이야."
"아니 장난치지 말고 얘기해줘요."
"지금 네덜란드 손님들과 대화중이니 나중에 얘기 해. 그리고 금액은 비밀이라니까."
처제는 도저히 안되겠는지 핸드폰을 나에게 건넨다. 직접 통화하라는 것이다.
"저인데요. 봉투에 뭐라고 쓰셨나요?"
"음~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고 썼지."
"이름은 쓰셨나요?"
"글쎄~ 기억이 잘 안나는데요."
"금액은 얼마를 넣었나요?"
"창피하게 자꾸 묻지 마세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긴가민가 하면서 재차 물었지만 내가 확신할 수 있는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처제에게 스마트폰으로 봉투 사진을 찍어 맞느냐고 물어보라고 하였다. 처제는 밖에 나가서 한참동안
통화를 하고 오더니 맞다는 것이다. 조의를 표한다면서 잘 써 놓은 봉투가 있었는데, 술에 취해 한자를 연습
하던 봉투에 넣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발인을 앞두고 벌어졌던 해프닝은 종료되었다. 내심 어떤 기대를 가졌던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동서의 마음만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돌아가신 장모님은 지켜볼 것이다. 동서부부가 과거의 힘들었던
생활을 잘 딛고 일어서서 알콩달콩 사는 모습을 보았기에 가실 때 그렇게 평안한 모습으로 가셨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얼마나 예쁘게 사는지 계속 지켜볼 것이다. 어쩌면 이 말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