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창시절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대하여 배울 때 들은 예는 다음과 같다. 어떤 이가 햇볕이 쨍쨍 내려
쬐는 무더운 여름날에 길을 한참 걷다가 우물을 만났다. 이때 처음 마시는 물 한 잔은 만족도가 매우 높다.
그러나 그 다음 잔은 만족도가 떨어지고 거듭하여 물을 마실 경우 만족도는 더 떨어지게 된다. 이와같이 계속
해서 이루어지는 소비량은 만족도를 계속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이 법칙에 대하여 백과사전에 의하면
'소비량이 증가할수록 그 재화의 한계효용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한계효용이란 어떤
재화를 소비함에 있어 추가적으로 얻는 효용을 말한다. 즉, 어떤 상품을 한 단위 더 추가적으로 소비함으로써
소비자가 얼만큼 더 만족을 느낄 수 있는가를 말하는 것인데,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은 어떤 상품의 한 단위를
추가적으로 소비할수록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모든 재화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부인할 수 없는 법칙이다.
그러면 모든 재화에 대하여 이 법칙이 적용될까? 정말 그럴까?
무주택자를 예로 들어보자. 처음 주택 한 채를 가질 때 느끼는 만족도는 엄청 높을 것이다. 그럼 돈을 더 모아
두 채, 세 채를 가지면서 느끼는 만족도는 어떨까? 일반적으로 만족도는 떨어질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정말
만족도가 떨어질까? 그래서 수 채를 가지게 되면 만족도가 거의 제로에 가까워지고, 수백 채를 가지면
마이너스의 만족도가 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진 자가 더 탐낸다고 가질수록
만족도가 올라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양복이 한 벌도 없던 사람이 처음 양복을 구입할 때는 당연히 만족도가 높을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로 구입할 때는 만족도가 떨어질까?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로 가면서 만족도 더 떨어져
거의 제로에 가까워질까? 아니다. 천만의 말씀이다. 만약 그렇다면 양복이 수십 벌씩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는
어떻게 설명할까?
따라서 적어도 재물에 대하여는 이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듯 하다. 만약 돈(Money)을 많이 가질수록
만족도가 떨어진다면 백만장자나 재벌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돈에 대하여는 절대로
이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어느 사람에게는 오히려 "한계효용체증의 법칙"이 적용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지금 나는 "한계효용체증의 법칙"을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이는
돈에 그리 욕심이 없다. 어느 정도 몸 가리는 의복이 있고, 몸 누일 집이 있으며, 그냥 신체 유지할 정도의
음식이 있다면 크게 효용이 올라가지 않을 수도 있다. 즉,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이런 법칙이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갑자기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꺼낸 이유는 최근에 있었던 일 때문이다. 지금부터 약 5년 전 처음으로
"남양주 종합촬영소"라는 곳에 갔었다. 당연히 목 마른 날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는 것처럼 만족도가 높았다.
처음 보는 세트장이나 영화관람 등으로 시간을 보낸 그곳이 매우 좋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뒤 지인들과
또 그곳에 가게 되었다. 당연히 처음보다는 만족도가 떨어졌다. 그러다가 또 가게 되었고 만족도가 조금 떨어
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또 그 뒤에 무슨 모임이 있어 그곳을 갔는데, 그때부터는 이상하게 만족도가 떨어
지는것 같지가 않았다.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이유도 있지만 어쩌다 보니 간혹 그곳에 가서 심란한 마음도
가라앉히고 시의 종자를 얻기도 하였다. 추가적으로 얻는 효용의 정도가 매번 일정한 것은 아니지만 계속
그 정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사유로 만족도의 높낮이는 있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것들에
대하여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어느 수준까지는 이 법칙이 적용되지만, 그 수준을 초과하면 더 이상 효용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일정 수준 이후에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아니라 "한계효용
불변의 법칙"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혹 사람도 그런 것 같다. 온 라인상이건 오프 라인에서의 친구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만날 때는 호기심 등
으로 기대수치 내지는 효용도가 높다가 갈수록 한계효용이 떨어진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이후
에는 효용이 더 떨어지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배우자도 그렇다고 하면 너무 나간 것이
될지 모르지만, 수요곡선(Demand Curve)처럼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일견 그럴 듯 하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니 그냥 웃음만 나온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나처럼 이런 엉뚱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기존 법칙의 수정도 이루어지고, 경제 현상에 대한
새로운 법칙도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