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수많은 인연을 맺고 산다. 짧은 인연도 있고 긴 인연도 있으며, 좋은 인연도 있고 나쁜 인연도 있다.
모든 인연들이 오래도록 지속되며 가연(佳緣)이나 선연(善緣)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어쩜 인간들의
운명인 모양이다. 나에게도 여러 인연이 있었고 지금도 이러저러한 인연을 계속 맺으며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차라리 맺지 않았다면 좋았을 인연도 있다. 악연을 생각하니 몇몇의 사람들이 지나간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나를 힘들게 한 인간들 몇 명이 지나간다. 혈연중에서도 그런 인간이 있고, 지금은
연락도 안하고 지내고 있지만 과거 직장에서 자신의 욕심을 위해 나를 밟았던 인간들 몇 명이 생각의 앞을
지나간다. 그러다가 얼마 전까지 근무하였던 회사의 사장이 잠시 내 생각을 점령한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그 사람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5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은행 퇴직후 약 4년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이후 약 3개월이 지났을 무렵이다. 물론 그 회사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렇게 빨리 무너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조금 더 버틸 줄 알았는데 내가 그만 둔 이후 급속하게 주저앉아 버린 것 같다. 어떤 이들은 나 듣기
좋으라고 내가 없는 그 회사는 끝났다고 보고 많은 협력업체들이 법적절차를 진행하는 바람에 그리 되었다
고도 한다. 하지만 내가 계속 그 회사에 남아 있었어도 이미 많이 망가져서 생명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체재로는 복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여튼 나는 이미 지나간 일이기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는데, 당시 회사의 대표이사라고 하는 자가 회사를
떠나면서 회사 자체가 공중분해상태로 될 무렵 지금의 사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의 집으로 찾아왔다.
이 사람은 오래전 이 회사의 해외 법인장으로 근무를 하였고, 이제는 중국에서 동종업을 경영하며 자리를
잡은 사람으로 어떻게해서든지 무너진 이 회사를 살리고 싶으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상당 금액을 그 회사에 투자하면서 사장이 되었고, 나는 CFO로 그 회사를 다시 다니게 되면서 그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 누구나 근로의 대가(對價)라는 것이 있다. 세상에 공짜라는 것은 없다. 무엇보다
내가 보는 그의 잘못은 정당한 대가없이 나를 이용하려고만 했다는 것이다. 다른 직원들에 비해 엄청난
불평등을 감수하길 바라는 그의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요사항에 대하여 결정을 못하는 그의 미지근한 태도와 의심스런 경영능력 등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고, 개인적인 상처를 받으면서 좋은 인연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참다
못해 이러저러한 것을 개선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제안을 하면 무시해버리는 행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지난 2017. 5월말로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여러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와의 인연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그는 지금도 함께 잘 해보자고 하면서 내가 요구하는 것에
대하여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회사에 나와 계속 같이 근무하길 원하면서 거의 봉사해주기
만을 바라고 있다. 솔직히 마음이 동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회사의 직원들과 관련 채권자들이 나의
복귀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는 것이 나를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한편 생각하면 그 사장이 고맙기도 하다. 2015. 10월에 함께 하자고 하면서 손을 내민 것도 고맙고,
지금도 나의 존재를 알아주면서 계속 함께 하자고 하는 요청도 고맙다. 다만 정당한 대가를 보장하지 않는
다는 것이 나의 결정을 힘들게 한다. 내미는 손을 마지못한 척 붙잡을 것인가, 아니면 뿌리칠 것인가를 결정
해야 한다. 그는 과연 나와 어떤 인연일까?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고 앞으로 좋은 인연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아니면 만나지 말았어야 할 악연일까?
결정 촉구 비
비가 내린다
왜 내릴까
사정하며 붙잡는 손을
뿌리치지 말라고 내리는 걸까
이젠 더 이상 후회를
만들지 말라고 내리는 걸까
어떻게 해야 하나
바른 결정은 무엇이고
좋은 결정은 무엇일까
비가 내린다
그만 그쳐도 될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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