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무엇을 어떻게 해야 살아날 수 있을까?"
회사의 사업장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갔으니 이제 무엇부터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며 한나절을 보내
다가 늦은 점심을 먹고 회사로 들어오는데 건물 출입문 옆에 못 보던 거미줄이 넓게 펼쳐져 있다.
회사의 매출이 줄고 재정상태가 악화되면서 직원도 많이 줄고 청소하는 아줌마도 없다보니 이런 거미줄
까지 생긴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다.
거미줄 규모에 맞게 몸집이 큰 거미가 마치 주인인 것처럼 자세를 딱 잡고 있는 것을 보니 괜히 심사가 뒤틀
린다. 빗자루라도 가져와서 걷어낼까 하다가 방금 전에 공사(?)를 끝낸 것 같아 잠시 시간을 주기로 하였다.
이 건물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고 생각하니 깨끗하게 유지해야겠다는 애정이 엷어진 탓도 있겠지만,
이제 막 완성해 놓은 거미줄을 걷어내는 것은 거미에게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후 시간이 가면서 시계의 짧은 바늘이 제일 아래로 갈 무렵 그곳에 가보니 거미줄은 그대로이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거미줄에 먹이가 걸려있지는 않았다. 대신 어디서 날아왔는지 크고 작은 꽃잎들만
여기저기 걸려 있다. 아무래도 이 거미는 장소 선택을 잘못한 것 같다. 출입문 옆에 자리를 잡은 것도 바른
선택이 아니다. 아무리 청소하는 아줌마가 없다고 해도 지나가는 직원 중 누구라도 이를 본다면 가만히
놔둘리가 없다. 그나저나 지금 이 거미는 하루종일 굶은 듯 딱 버티고 있는 폼이 어떤 노여움을 드러내고
있는 듯 하다. 잠깐 보고있는 중에 거미줄이 크게 출렁인다. 거미가 잔뜩 기대를 하고 자세를 잡는다.
그런데 걸린 것은 또 꽃이다. 저쪽 언덕에서 잠시 쉬고 있던 바람 한 자락이 보낸 솜털같은 꽃들이다.
먹이는 걸리지 않고 꽃들만 여기저기 있는 거미줄을 보고 있노라니 회사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지금 가고 있는 길은 괜찮은 길일까?"
현재의 심란한 상황을 다독이며 사업장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다가 임원들이 자주 모임을 가졌던 회의실을
보니 회한으로 가슴이 미어진다. 이곳에서 많은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토론했던 광경들이 떠올라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자신도 정기적으로 이곳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환율 예측을 포함한 각종
금융관련 내용을 설명하였고, 구리가격이나 자재의 원가분석 등을 토대로 한 전략을 발표하던 곳이기에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약 20여개가 넘는 의자에 앉았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이 회의실은 내가 처음 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소이다. 각 자리마다 설치된 마이크는
물론이고 자료를 발표하기 좋게 만들어진 각종 장비들이 좋았다. 그런데 지금은 왠지 썰렁하다. 회사의
미래를 그리며 많은 임원들이 토론하던 광경이 떠올라 착잡한 마음을 가눌 수 없어 나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솔직히 회사가 겸손하지 못했다. 몸집만 키우면 만사가 형통될 줄 알고 수년 동안 내실없이 덩치만 키운
것이 오히려 화가 되었다. 단일 제품 매출로는 일본의 S사를 제치고 세계 1등이라고 우쭐대던 직원들의
모습이 슬프게 다가온다. 거미도 마찬가지이지만 회사도 몸집이 크면 먹는 것도 많이 들어가고 지켜야 할
것도 많아진다. 정상에 서면 밑을 내려다 보는 경치는 좋은지 몰라도 거래처가 요구하는 신제품 개발 등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알맹이없이 꼭대기에 있으면 부는 바람도 더 거세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고 다 상품화되는 것도 아니다. 거미도 마찬가지이다. 거미줄을 넓고 튼튼하게 펼쳐 놓았
다고 먹을 것이 걸려드는 것은 아니다.
때와 더불어 장소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거미줄도 마찬가지이지만 기업도 있어야 할 위치를 잘 파악해야
한다. 어느 곳은 아무 실속없이 바람만 지나다닐 뿐이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 가사 일부가 생각난다.
산정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과연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일까? 산정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이었다면 비록 썩은 고기를 먹을
망정 굶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굶어죽는 판국에 도대체 세계 1등이라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이 회사는
산정에 올라가 경치는 좋았을지 몰라도 결국 신제품 개발 실패 및 불량에 따른 적자경영을 견디기 힘들
었다. 정상에 올라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쾌감도 있고, 꽃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먹을 것이 없는
곳에서 오래 있다 보면 결국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거미도 그렇다. 매일 아침마다 청소하는 회사 출입문 쪽에 거미줄을 쳐 놓은 것은 잘못된 선택이다. 그리고
아무리 넓게 거미줄을 쳐 놓았다고 해도 바람에 날려 솜털 모양의 꽃이나 걸리는 곳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꽃은 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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